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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Oct 20. 2022

페트병, 세상의 끝에 오다

몰디브에 갔더니


한산한 인천공항, 나는 캐리어를 끌고 고무줄 바지를 입은 채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돌아보니 얇은 머리숱에,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몸이 비쩍 곯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편이었다. 코로나 확산, 재확산이 반복되는 지난 4월이었다. 


우리는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가 풀리길 기다렸고 때가 왔다. 접종한 지 6개월 이내면 자가격리 면제였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3차 접종까지 억지로 맞았다. 드디어, 결혼식 후 네 달 만의 신혼여행이었다. 이 2주간의 여행을 위해 지난 몇 주간 일을 몰아서 하느라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항공노선이 대폭 축소되어 그런지 인천공항 출국장은 귀신 나올 듯 텅 비어 있었고 많은 매장이 기한 없는 휴점 상태였다. 우리는 어슬렁거리며 기다리다가 에미레이트 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랜만의 출국에 대한 들뜸도 잠시, 마스크를 낀 채 열 시간 가까이 이코노미석에서 버텨야 했다.


화면에 나오는 영화가 세 개쯤 돌아갔을 때, 환승지인 두바이에 도착했다. 두바이 공항에서 다시 6시간 뒤 몰디브의 수도인 말레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무실 의자보다 작은 듯한 이코노미석과 음식과 음식 쓰레기의 중간지점 같은 기내식, 종일 귀를 짓누르고 있는 마스크에 진절머리가 날 무렵, 푸른 바다 위 발자국같이 납작한 몰디브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탑승객은 혹독한 격리를 겪었을 유럽인이 대다수여서 그런지, 말레공항에 착륙할 때는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끔찍한 비행이 마침내 끝났다 싶었는데 버스는 우리를 다시 반대편 비행장으로 데리고 갔고, 미니버스만 한 수상비행기를 타고 리조트로 향했다. 10명 정도 승객이 가득 들어찬 수상비행기는 이정표도 없는 몰디브 바다 위를 한참 날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고도를 낮추더니 바다 위 리조트 직원들이 기다리던 뗏목 같은 부표 옆에 착륙해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리조트 직원들과 지붕이 있는 나무배를 타고 리조트가 있는 섬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도착지가 몰디브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손들고 도망치고 싶은 여정이었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몰디브는 살아서 천국에 온 듯한 곳이었다. 빵가루 같은 흰모래 해변을 지나 나무데크를 따라가면 얕은 바다 위에 위치한 방갈로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의 방이었다. 방에서는 커튼만 열면 바로 바다를 향한 발코니가 보였고, 발코니에서 계단을 타고 바로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갈로 바로 밑은 산호가 가득한 무릎 높이의 얕은 바다였고 2분 정도만 더 나아가면 갑자기 절벽이 시작되며 무서울 정도로 깊은 바다였다. 수영을 못하는 우리 부부는 구명조끼를 입고 수면에 둥둥 떠서 깊은 바다로 가는 경계 부분에서 물고기들을 관찰했다. 매일같이 바다에 나갔는데도 매번 새로운 모양과 색의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칼처럼 하얗고 뾰족한 녀석, 두툼한 초록빛에 덩치가 몹시 큰, 하지만 얌전히 이끼를 뜯던 녀석, 날쌔게 헤엄치던 작고 붉은 녀석 등. 물고기들은 크기가 꽤 큰 녀석들도 많아서 더럭 겁이 났지만 눈을 도르륵 굴리며 수면 위에 둥둥 뜬 인간을 조심스레 쳐다보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가끔 용기를 내 깊은 바다 쪽을 살펴보면, 마치 '니모를 찾아서'에서처럼 긴 대열을 이루어 어디론가 향하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었다.


물고기가 워낙 많으니 해변에는 항상 왜가리 한두 마리가 햇살을 쬐며 동상처럼 서있다가 가끔 느리게 정어리 떼를 사냥하곤 했다. 방파제에는 검고 큰 게들이 이었는데 한국에서 본 앙증맞은 게와는 달리 집게를 높이 세우고 호전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꽤 위협적이었다. 다리도 무척이나 빨라서 조금이라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방파제를 뒤덮은 커다란 게들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했다.


식당에는 끼니마다 전 세계의 갖은 구이, 튀김, 쪄낸 요리들과 디저트, 과일이 진열되어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는 아침에는 빵을 구워 먹거나 오믈렛을 주문했고, 저녁에는 갖은 종류의 스테이크나 찜을 먹었다. 저녁에는 돌고래 투어를 나갔다. 유럽인 노부부들과 함께였다. 어느 방향인지 모를 수평선을 한참 달리자 저 멀리서 돌고래 떼가 배를 향해 정면으로 헤엄쳐왔다.매끈한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가끔 돌고래들이 몸을 비틀며 뛰어오를 때마다 배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영국에서 왔다는 부부는 퇴직 후 한 달을 쉬기 위해 왔다고 했다. 1박에 100만 원이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나 오래 묵을 수 있다니 신기했지만, 이렇게나 멀리 왔으니 원 없이 머물다 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정신없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눈에 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한국으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며 점차 의문이 들었다. 물고기와 돌고래를, 맑은 바다와 모래와 하늘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멀리 와야 했을까? 이런 원시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인간 세상의 끝으로 와야 했고,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가능했다.


한국에 도착한 뒤, 시댁이 있는 영덕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시부모님에게 몰디브 바닷속 영상을 보여드렸다. 물속에서 포즈를 취하는 우리 옆으로 물고기들이 겁 없이 지나다녔다. 영상을 보신 아버님 말로는 당신이 어릴 때만 해도 동해 바다에 물고기가 가득해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바다가 언제 이렇게 빈 도시처럼 폐허가 된 걸까.

그 아름답던 몰디브도 사실은, 죽어가고 있었다. 리조트 해변에는 가끔 빈 페트병이 떠내려왔는데, 보는 순간 화가 솟구쳤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몰디브의 바다도 다른 바다와 한 몸이었기에 홀로 청청할 수 없었다. 숙소 바로 앞 해안의 산호는 하얗게 변해가고 수도인 말레는 큰 배와 비행기가 오가며 바다에 흘리는 기름들은 악취가 났다. 10년 뒤에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 앞바다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제주의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해녀들의 인터뷰가 네이버 일면에 올랐다. 제주 바다의 성게들은 더 이상 새끼를 까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불과 2,050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지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염된 공기에 지구는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멸종의 위기에 처하고, 오염에 내성이 있는 일부 인류가 영양 캡슐을 먹으며 생존해나간다.


나는 굳이 몰디브를 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동해 바다는 다시 물고기로 가득하고, 하늘은 맑고 푸르러 붉은 노을이 끝없이 번져가는 모습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혼자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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