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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May 22. 2024

괜찮은 척

내겐 두 명의 엄마가 있다. 길러준 엄마, 낳아준 엄마.

길러준 엄마는 나의 할머니, 낳아준 엄마는 나의 친엄마. 


결혼 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엄마는 시부모, 남편, 시동생까지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내가 들어섰고 엄마는 회사의 따가운 눈총에도 꾸벅꾸벅 졸며 만삭까지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집에 와서도 엄마가 집안일을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시댁 식구들이 눈치를 줬다. 엄마는 나를 낳고 거의 바로 일을 나갔다. 엄마가 일을 간 동안에는 할머니가 나를 봤고 엄마가 퇴근 후에는 엉엉 우는 나를 업고 골목을 다니며 겨우 달랬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은 할머니를 고생시킨다며 엄마를 미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아주 미웠나 보다. 내가 기억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게 넌 네 할머니와 똑같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입이 트인 나는 엄마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항상 같이 할머니 욕을 했다. 내가 엄마를 지켜주리라. 그럼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을까. 할머니는 자기애가 넘치는 분이었지만 대체로 나를 예뻐했고 엄마는 희생적이었지만 대체로 나를 미워했으니까. (아니 아기 때부터 직접 기른 남동생은 사랑했고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덜 사랑했으니까.


상담사가 말했다. 어릴 때 어른스러운 척하느라 제대로 성장을 못했다고. 

어른인 척, 괜찮은 척하느라 나는 그렇게 아는 척, 센 척을 했다. 그럴수록 모르는 나, 약한 나를 혐오했다. 아 저건 뭐야, 왜 저래. 나를 향한 악플을 매일 달았다.


절에 다니며 내 얘길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결혼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부모님과 분리가 되면서 점점 객관적으로 부모님과 나를 보게 되었다. 


무뚝뚝한 시골 여자. 중매로 낯선 남자랑 갑자기 결혼해서 20대에 뭘 해도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 여자. 그래, 덜 사랑하는 자식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생각해 보면 내게도 큰 사랑을 줬어. 이제 내가 목말랐던 사랑은 내 스스로 주면 되는 거지. 난 이미 부처님에게 중생으로서 사랑을 크게 받았고, 또 결혼을 해보니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친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엄마를 늘 미워했던 할머니도, 원치 않는 남자랑 결혼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집안일하고, 늘그막에 손주 기르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생이 있다면 할머니는 꼭 좋아하는 일 하고 마음껏 재미나게 살어.


괜찮은 척이 아닌 진짜 괜찮은 어른으로 뒤늦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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