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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Oct 16. 2024

남은 50번의 겨울 내내 포근할 것.

더 이상 삶에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지 않을 것.

턱밑까지 짧게 잘라냈던 머리가 서투르지만 빠르게 자라나 어느덧 등 절반을 지나고 있다. 지난하게 머무르던 더위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고 능청맞게 다가온 선선함은 부드럽게 열기를 앗아갔다.


인생은 빠르게 흐른다.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시간과 순간들로 이 빠른 시간들을 메꿔야 하는 걸까. 요즘따라 유독 많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리고 결론은 내려졌다. 모든 순간을 사무치도록 사랑할 것.


퇴근을 기다리는 삶이 싫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주말을 기다리는 삶이 싫어 스스로 시간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매일 정해진 한도 내에서 정해진 음식을 먹는 게 싫어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당연하게 처리해야 할 일상의 일들을 위해 기어이 휴가를 내야 하는 것이 어이없어 기어코 자유인이 되었다. 하루종일 나만 기다리고 있을 나의 강아지와의 남은 순간을 위해 이제는 옆에 강아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살을 맞댄 채 일을 한다. 무의미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하는 순간이 억울해 이제는 자유로이 엉덩이를 가볍게 한다. 


'더 이상 삶에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지 않을 것.'


퇴근 후의 삶과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만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일을 하는 순간에는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는 삶과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때에 먹을 수 있는 당연한 자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나의 삶의 방향성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이와 햇볕을 쬐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충분히 먹고 들어와 느지막한 4시쯤이나 돼서야 자리에 앉아 일을 했다. 작은 일에도 성의를 보일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낮에 쬐는 햇볕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선택에 대한 대가는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한의 책임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영겁의 자유와 사랑을 가져왔고, 길게 산다면 남았을 50번의 겨울 내내 나는 언제나 포근할 것이라 굳게 다짐한다. 

언제나 모든 순간이 포근할 것. 

그리고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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