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레인보우 패밀리를 소개합니다, 짜잔
안녕하세요, 필리핀에 살고 있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회원 여기동입니다.
내 나이 52세에 남편 찰스와 동성결혼을 감행, 올해로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입양한 딸내미가 태어나 저희 품으로 안겨 이렇게 레인보우 패밀리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필리핀 중서부에 위치한 두마게티 옆 작은 도시 발렌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이민을 오기 전 모국에 살면서, 저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시기는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 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스와 남미 가톨릭의 해방신학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세계관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회주의자, 동시에 젠더퀴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구, 동인련, 이하 행성인)를 만났습니다. 행성인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이자 행복을 안겨주었고, 지금 먼 이곳에서 무척 그리운 친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소중한 행성인 벗들과 함께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퀴어 커뮤니티의 활동은 내 존재의 존엄성과 이를 지키려는 투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행성인 아우님들과 함께 있으면 너무도 재미있고 즐겁기만 합니다.
남편 찰스는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출신이었습니다. 저희는 2015년 5월 23일 많은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남편은 밀양의 새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때 저는 (간호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창원에 있는 대학에서 간호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우리는 주말 부부였습니다. “주말 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라는데, 우리 조상님들 덕분이었을까요(?) 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필리핀 이민생활 초기에 정말 사랑과 전쟁 100편 정도를 찍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결혼한 다음 해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비자가 만료되어 미등록 상태였는데,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에 가면 출입국 관리소의 체포를 무서워하여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지요. 가자, 필리핀으로.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동성결혼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 결혼과 배우자에 관련된 모든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어, 저에게 이 두 나라는 참 엿같은 나라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차별당해 억울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영어 이름은 레인보우이고, 한국 이름은 레인보우의 가운데 두 글자를 따서 인보(어질 인(仁), 보배 보(寶))로 지었습니다. 아이가 자신과 공동체에 어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그리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삐약이’입니다. 신생아 때 목욕을 시키다 보면 너무 작아 ‘꼬물이’라고 부르다, 점차 삐약삐약 말도 잘하고 이쁜 짓도 하여 ‘삐약이’라고 부릅니다. 저희 가족은 이렇게 세 식구가 되었습니다.
최근 남편이 삐약이를 데리고 고향 마을에 가서 혼자 지내다 보니 아이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잠자기 전 텅 빈 침대를 보면서 오늘 맘마는 잘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오빠, 언니들과 잘 놀았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이런 게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이제 4월 29일이면 첫 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동안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어서 고맙기 그지없지요. 많이 축하해 주세요.
다음에는 우리 아가 입양 전에 꾼 입양몽(夢) 이야기와 배냇저고리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필리핀에서 회원 여기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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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소속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의 웹진》에 기고한 (게재일: 2022년 4월 18일) 글입니다.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