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패밀리는 10월 26일과 11월 2일, 양일간에 걸쳐 '요즘 부모'를 주제로 '2022 부모탐구 미니콘' 웨비나를 개최했습니다. 요즘 부모 100명과 소통하며 세부 주제를 관계, 정답, 나, 혼란 등 네 가지로 선정. 각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관계'와 '정답'에 이어 세 번째 주제인 '나'에 대해서는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대표님께서 나눠주셨습니다. 김 대표님은 두 아이의 부모이자 발도르프 교육연구자로 부모님들과 함께 나누고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부모들이 '나' 중심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이기적이다? '나' 중심은 시대적 흐름
김훈태 대표님은 후기 근대사회인 우리 시대의 특징부터 짚어주셨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하나의 가치가 강력한 힘을 가지며 집단주의가 당연시되었지만 후기 근대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었으며 자본주의가 위력을 떨치고 있어요. 문화적으로는 가치 다원주의가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은 "개인주의가 강해졌다. 바야흐로 개인이 깨어나는 시대"라고 표현하며 "이제는 '나' 중심 사회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개개인이 자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며, 자기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흐름은 아주 긍정적"이라고도 말씀해주셨어요.
부모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 부모들도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고, 자기를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부모가 되었다고 이 욕구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다만 부모이기에 필요한 것은 있습니다. 김 대표님은 이것을 "사회적인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인간에게 '사회적 힘'과 '반사회적 힘'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힘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함께 하는 힘입니다. 내 주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힘이지요. 반사회적 힘은 자기를 주장하는 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생각을 정확히 말하는 힘입니다. '나' 중심 시대의 개인은 반사회적인 힘이 강합니다. 사회적인 힘은 약하죠.
'나'중심 시대의 부모 역시 반사회적인 힘이 강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를 돌보며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아이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갑니다. 사회적인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김훈태 대표님은 "부모가 되면 사회적인 힘을 키워 반사회적인 힘과 균형을 잘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갑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내 시간을 오롯이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냈을텐데'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나' 중심으로 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억울함이 올라오는 겁니다.
김 대표님은 부모여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무살이 넘은 어른이기에 자기중심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발도르프 교육의 인간학의 관점으로 설명해주셨어요.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만 21세 이후에 인간은 신체의 발달은 멈추지만, 영혼은 감각혼, 지성혼, 의식혼의 단계로 발달하며 자아가 점점 성숙해져간다고 봅니다. 전 생애적인 발달의 과정으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감각혼은 감각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감각을 자극하는 새로운 것들에 끌리고 감정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지요. 감정에 휩쓸려 비합리적인 결정을 할 때도 많습니다. 자아가 독립됐지만 조금 미숙합니다.
지성혼은 자기 인식의 단계입니다. 자기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을 자제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선택하려고 합니다. 보통 삼십대가 지성혼의 시기입니다. 직장에서는 승진을 위해 노력하며 차도 사고 집도 장만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이게 내가 원한 인생이 맞나?' 갑자기 삶이 무의미해 보이고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늙어가도 괜찮은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자꾸 의문이 듭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의식혼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감각혼의 시기에는 세상 일을 좋고 싫음으로 판단한다면 지성혼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합니다. 의식혼의 단계에서는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벗어나 진실함의 기준으로 사안을 보게 됩니다. 나를 넘어서서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전체와 함께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죠.
김훈태 대표님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배워야 하는 것을 두 가지 꼽으셨습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여 어른스러워지는 것, 다른 하나는 합리성을 키워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나다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여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을 '나' 중심을 내려놓고 아이를 우선 하라는 메시지로 잘못 알아듣기 쉽습니다. '나' 중심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아이를 우선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인간은 평생 발달하는 존재이니 부모도 아이도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게 잘 발달해가자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이도 성장합니다. 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성장을 하지요. 아이는 자아가 성장해가는 단계이고, 어른인 부모는 자아가 확립되었습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아이의 자아가 잘 성장하도록 돕는 동시에 자신에게 필요한 발달도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발달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진짜 어른은 자기중심(자기철학, 자기원칙)은 확립하되 자기중심성을 극복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로하는 만큼 제공하며 아이가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독립할 수 있게 돕습니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틀에 아이를 가두고, 부모가 주고 싶은 것을 주면서 아이에게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내 기준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죠.
김훈태 대표님은 "처음부터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부모는 없다"고 하시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스럽지 못한 내 모습에 놀라고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으셨습니다.
"화가 많고, 참을성이 없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에 대해 배운 거죠.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자아를 성장시켜 왔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외치는 '나' 중심은 감각혼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의 단계로까지 성장해 나갔으면 합니다. 진정으로 '나다운'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전설문에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려면 부모는 어떤 자세로 아이를 바라봐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김훈태 대표님은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 상황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답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내가 무얼 잘 하니까 아이에게 이런 걸 가르쳐줘야겠다'는 방식으로 다가가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나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취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부모가 모두 다 채워줘야 하는 건 아닙니다. 모두 채워줄 수도 없을 뿐더러 부모에게는 부모의 삶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할 수 있는 만큼을 후회없이 해주면 됩니다.
물론 아이는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래는 건 아이의 몫입니다. 부모에게 사회적인 힘과 반사회적인 힘의 균형이 필요한 것처럼 육아에는 부모의 몫과 아이 몫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오늘, 부모인 나는 내 몫과 아이몫의 균형을 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자기 중심성'을 넘어선 어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