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일상보다 가벼운 이유는 때마다 마주하는 자잘한 걱정들과 실타래처럼 엉켜 드는 생각들을 잠시나마 접어 두거나 미뤄 둘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해결하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고개를 들고 기다리지만 잠시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시간을 얻는 다고나 할까?
여행을 다녀오니 병원은 병원 대로 집은 집대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다
식구대로 가방에서 꺼내 놓는 빨랫감만큼이나...
오랜만에 파리를 방문했다. 파리는 이제 막 봄을 지나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예전에 살았던 남부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유치원 꼬맹이던 막내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아마도 14년 만이지 싶다.
유럽에 살고 있고 프랑스는 독일과 인접한 이웃 나라 지만 그렇다고
이웃집 마실 가듯 자주 가지는 곳은 아니다.
다시 만난 파리에서 우리가 지냈던 곳은 예전처럼 파리 외곽의 어느 호텔도 아니고
파리 한복판의 캠핑장 오두막도 아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파리 시내에서 머지않았던 주택가였다
유럽에서 대도시 하면 복잡하고 정신없고 등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곳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아마도 관광객들이 집중되는 곳들을 벗어나 주로 현지인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곳들과 나란히 하고 있던 덕분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애용하는 사이트에서 찾은 숙소는 오래된 건물 안에 있는
누군가의 작은 보금자리였다.
찻길로 난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 가면 예전부터 있었을 박물관 같은 문양을 안고 있는
높은 천장과 긴 복도를 마주 한다.
그 복도 끝을 지나 다시 만나는 작은 골목길 에는 앤티크 같은 식물 화분들과 꽃 화분 그리고 세워둔
자전거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 왼쪽 건물에 열쇠를 넣고 문을 열면 길고 긴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걸어 올라가면 도착하는 오래된 곳.
이렇게 다른 이에게 빌려 주지 않을 때는 또누군가 일상을 살고 있었을 평범하고 작은 공간이었다.
재밌는 것은 오래된 건물 이여 그런지 5층 이어도 엘리베이터도 없고 층수도 적혀 있지 않아 온전히 감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층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보니 선 굵은 것들로 구분이 되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로 하면 2층에는 아이들이 있는지 문 앞 복도에 세발자전거와 유모차가 서 있고 그 위에 3층 즈음 에는 젊고 개성있는 누군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는지 에브리데이 향 짙은 음식 냄새와 춤추기 딱 좋은 활기찬 음악이 들려왔다.
"워메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 겨!" 하며 헉헉 거릴 때쯤 만나 지는 4층에는 누군가 무엇을 조립하거나 만들다
말았는지 문 앞에 작은 판자 떼기 같은 것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판자 떼기 들만 보면 어찌나 반갑던지... 4층이다 이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된다!
비록 오가며 수많은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이고야!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어쩐지 이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살짝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솔솔 했다.
그 덕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거리나 갈아타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곳들을 우리는 주로 걸어 다녔다.
30분이던 1시간이던 걷고 또 걷다 보면 수시로 만나지는 작은 골목들...
그 골목 안에는 딸내미가 미리 찜해둔 카페도 나오고 이름 모를 오래된 독립서점들도 나왔다.
예전처럼 지도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에 깔아 둔 길 찾는 앱으로 다니다 보니
사실 못 찾는 길도 없고 지나쳐 간 길도 없다
그렇다 보니 조금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고 빠른 대신에 왠지 깜짝 선물 같은 만남이 적어졌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에 만난 동네 시장은 기대하지 않은 선물 같았다.
우리 동네는 금요일마다 동네 작은 장이 서고는 한다.
아마도 이 동네는 토요일에 장이 서나 보다.
더운 날이였지만 상인들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손님들에게 과일과 생선을 권하고 있었다
밝고 높은 프랑스어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몸짓에서 마치 "싱싱한 생선이요! 다디단 딸기요! 입안 가득 체리요!
"라고 외치는 듯했다.
통통 튀는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소리같았다.
색색의 싱그러운 과일도 반짝반짝 예쁘고 비릿한 생선냄새 마저 생기 가득했다.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였지만 평소 우리 동네 보다 햇빛양도 많고
온도도 높은 편인 파리는 빨간 딸기도 굵은 체리도 단맛이 담뿍 배어 있었다.
마치 집에서 시장 가듯 골목길 걸어 내려사 현지인 들 사이에서 장을 보고 과일 사다 집에서 씻어 먹고 하다 보니 파리를 본 게 아니라 며칠 살다 온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파리를 만났다.
To 애정하는 독자님들
여름이 깊어 가다 어느덧 가을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 갑니다.
파리 이야기 시작 한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 쓰지 못하고 제목만 달아 놓은 이야기 들을 다시 다른
여행 가방에 담고 휴가 다녀온 김자까 인사를 드립니다.
여름휴가를 다녀오니 밀려 있는 병원일도 집안일도 그리고 글쓰기도
한참이나 남아 있습니다.
마음은 한 번에 다 해치우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 리가 없습니다 ㅎㅎ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파리 이야기도 여름휴가 이야기도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도
시간 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들고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여름의 막바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바라요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