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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Feb 28. 2019

#48, 영국 그들이 만드는 시트콤

 Fortune of War, Smile longboards

 잉글랜드. 비싼 물가와 비가 자주 오는 날씨, 어찌보면 여행가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해도 무리없을 듯한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나라로 한 손에 꼽는 그 곳. 알랭 드 보통이 일주일간 머물며 글을 썼던 히드로 공항을 통해 들어갔다. 이곳에서 나를 반겨준 이들은, 런던 근교 브라이튼에 있는 스마일 롱보드 팀이었다. 그리고 나를 반겨준 하늘은 부정할 수 없는 영국 하늘, 흐린 날씨의 비였다.


 날 초대해준 쿨리바를 만나, 집에 짐을 두고서, 친구들이 모여있다는 바닷가에 위치한 포츈 오브 워 라는 펍에 찾아갔다. 모두들 영국의 전형적인 날씨를 보며, 영국스러울 때 왔다며 웃으며 환영 인사를 해주었다. 비가 안오면 여행하기 좋긴 하겠지만, 영국은 내게 정말 영국이 어떤지를 느끼기를 바랐나보다.



 포츈 오브 워. Fortune of War.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무운(전쟁에서의 행운)이라는 타이틀이 신박했다. 늦은 오후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려고 친구들이 모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바 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그 시간에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놀고 있던 이들도 그 시간이 일하지 않는 시간일 뿐, 친구 무리들이 전부 포츈 오브 워에서 일하고 있었다. 스마일 롱보드 샵 오너 역시도 한 때 이 곳에서 이들과 함께 일했다고 한다.


 스마일 롱보드 팀, 이 팀 보통이 아니다. 롱보드를 좋아해서 같이 타던 친구들 중 한 명이 샵을 오픈했는데, 그게 스마일 롱보드. 특이한 것은 매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가게로 쓰는 것이다. 온라인 판매로 수월하기에 가능하지만, 집을 꾸며 매장으로도 쓰는 것이 신기했다. 이 팀은 영국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뿐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도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포츈 오브 워에서 일하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 함께 롱보드를 바닷가에서 즐긴다. 남자, 여자들이 섞여있어서 그런지, 커플들도 생기고, 심지어 결혼에 골인을 한 커플도 있었다.



 무언가 외국 시트콤에 들어와있는 느낌이었다. 각각이 가진 캐릭터들도 독특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포츈 오브 워에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옆 길가에서 보드를 탄다. 비가 쏟아지면, 펍으로 도망간다. 이미 가족같은 느낌을 가진 이들은, 쉬는 날 비가 오는 날이면 함께 집에 모인다. 아! 몇 명은 한 집에서 산다. 나 역시 그 집에서 지냈다. 쉐어하우스는 유럽에서 흔하기에. 집에서는 인도 보드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프리스타일 랩을 뱉어내기도 하고, 카드 게임도 한다.


 Head of shit 이라는 게임이 메인이었는데, 한 번 질 때마다 SHIT (똥) 의 한글자씩 머리에 그리는 게임이었다. 역시나, 게임은 벌칙을 당하면서 배우는 거겠지? 엄청나게 당했다. 어느 날은 한 번 쉬는 날이 있는 친구들끼리 같이 런던을 무박으로 여행했다. 기차를 타면 넉넉잡아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기차에서도 카드게임을 했는데, 이때 난 이 게임을 기념하기 위해서 질 때마다 이마가 아닌, 내 보드 그래픽 있는 아랫면에 쓰면 안되냐고 제안했다. 친구들 역시 좋아했고, 게임에 적응한 나는 Shit 을 적을 필요가 없었지만, 보드에 새겨넣었다.



 런던에서는 여왕이 사는 버킹엄 궁전 앞에서 보드를 탔다. 당연히 경비병에게 쫓겨났지만, 우리는 간단한 영상을 남기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날씨가 좋은 시간에는 잔디가 앉아 피크닉을 즐기러 온듯 싸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영국은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바뀌고 또 바뀐다.) 유명한 포인트들을 구경가기도 했지만,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보드를 타며 다녔다. 괜찮겠다 싶은 곳에서 영상을 찍으며 놀다보니 어느덧 하루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 기차에서 모두가 골아떨어졌으니 우리는 분명히 방전될만큼 즐겼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루하루 웃고, 떠들고, 즐기다보면 떠날 날이 찾아온다. 그리고, 역시 영국임이 틀림없었다. 비가 내렸다. 마지막까지 영국은 내게 날씨 진상을 부린 것이다. 환전했던 파운드가 거의 떨어져, 친구들이 동전들을 십시일반해서 내 택시비를 만들어줬다. 스마일 롱보드 친구들의 배웅으로 우리는 서로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번에도 Head of shit 게임을 하며, 보드를 타며, 하하호호 웃기를. 


P.s. 내 인생 첫 팝셔빗은 브라이튼에서 스마일 롱보드 친구들과 함께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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