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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Sep 28. 2021

자가 격리 해제


17일 정오, 장장 14일에 걸친 자가 격리가 끝났다. 그것이 겨우 2주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말이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2주였다. 개 나이에 7을 곱하면 대충 사람 나이라고 하던데, 격리 3일 차 정도부터 기분이 아주 개같았으므로 심리학적으로 따지자면 한 80일 정도 갇혀 지낸 거나 다름없었다. 요컨대, 길고 긴 세월이었다.


날 이곳에 격리시킨 채 생활 치료 센터로 이송됐던 앞 방 사람은 4일 전에 다시 이곳으로 복귀했다. 나는 그의 복귀 소식을 듣고 그럼 나머지 4일은 자기 방에서 격리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알고 보니 확진자가 완치 판정을 받으면 그 즉시 격리가 해제된다고.. 난 애초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이거야 부조리한 세상이었다.


앞방 사람 덕분에 아직도 방에 격리되어 있던 나는,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심술보가 아려왔다. 급기야 이틀 전에는 극심한 심술통에 119를 누르고 저기요.. 제가 급성 심술염인 것 같은데 앰뷸런스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라고 물었고, 119 측에서는 선생님 스물아홉이나 드셨으면 정신 차리실 때도 됐잖아요. 헛소리 마시고 재취업 준비나 하세요, 라고 대답하셨거나 말거나, 시간은 착실히 흘러 나에게도 해방의 날이 다가왔다.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둔 밤, 나는 설레는 마음에 혼자 실실 웃으며 방 안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방이 작아 여섯 발자국을 걸으려면 세 발 자국을 걷고 뒤돌아 다시 세 발자국을 걸어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도 이 난리인데 내일이 되면 얼마나 큰 기쁨과 환희가 휘몰아칠지 기대가 됐다. 나는 자가 격리가 해제되는 순간에 밀려올 거대한 기쁨과 환희의 대홍수를 통해 그동안의 무기력증을 수장시켜버리고선 새롭게 태어날 작정이었다. 격리 해제 시간은 내일 정오였다. 나는 다음 날 하루의 시작부터 자유인으로 눈 뜰 수 있도록 새벽 4시까지 유튜브를 보다 침대에 누웠다. 지난날들과 달리 장시간 유튜브 시청에 대한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내일이면 이 한심한 생활도 안녕일 테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대망의 격리 해제 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눈을 떴다. 매일 정오까지 앱으로 내 상태를 보고해야 했는데 좀 늦었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핸드폰의 자가 격리 모니터링 앱을 열어 마지막 문진표를 작성했다. 그리곤 홈 화면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모니터링 앱을 정조준했다. 앱을 길게 꾹 누르자 어제까지 위풍당당히 나를 감시하던 녀석은 바들바들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목숨을 구걸하는 녀석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미련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놈은 단말마의 짧은 진동을 남기곤 저장 용량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눈을 반만 뜬 채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격리 기간을 버텨낸 내가 응당 받아야 할 것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간의 무기력증을 쓸어버릴 기쁨과 환희의 대홍수, 그리고 그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나. 그러나 지금은 너무 졸렸기 때문에 일단 조금 더 자야 했다. 나는 그것들을 잠시 후에 맞이하기로 하곤, 다시 침대에 곱게 누워 잠을 청하며 빌어먹게 길었던 지난 2주를 되돌아봤다. 그동안의 답답함. 그동안의 무력감. 그동안의 우울감. 그리고 앞선 것들이 뭉쳐져 만들어낸 지긋지긋한 무기력증. 나는 초반의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그것에 잠식당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까스로 생업을 마치고선 축 늘어져 한심한 일들로 남은 시간을 채워댔다. 그렇게 그저 시간이 얼른 지나가버리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이제 자가 격리는 끝났다. 드디어 빌어먹을 2주가 지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멈춰서는가 싶던 생각이 돌연 다시 엑셀을 밟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2주가 지났다. 2주나 지나버렸다. 이따위로 2주씩이나 보내버렸다. 2주를 내다 버려놓고, 이게 기뻐할 일이 맞나?


오던 잠이 확 달아났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기쁨과 환희를 기다리던 나는, 문득 엿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격리 동안에도 나는 충분히 엿같은 기분이었다. 2주간을 이 방 안에서만 있어야 하는 건 참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침대에 곱게 누워 있는 나를 휘감은 건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그것이었다. 격리 동안의 그것이 뭘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이 엿같은 기분은 그동안 내가 뭘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요컨대, 후회가 됐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어째서 자가 격리만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을까. 응당 기쁨과 환희가 휘몰아치며 마법처럼 바람직한 인간이 돼버릴 거라 생각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저절로. 물론 나는 격리 이전으로 돌아왔다. 외출 제한 등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돌아감은 내가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격리 해제가 무슨 시간을 거꾸로 돌려내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한심하게 보낸 2주는 내 과거에 오롯이 존재하며 영 좋지 못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격리 해제 후에 뭘 할지 생각해두지도 않았다. 그런 주제에 격리 스트레스에 정신이 나갔었는지 그저 격리만 끝나면.. 격리만 끝나면.. 공염불만 외우고 있었다.


내가 지난 2주간 자행해온 일들은 격리가 해제된 나에게 날개를 달아줄 만한 일들이 아니었다. 나는 2주 전에 비해 나아진 게 없었다. 일을 더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푸쉬업도 하루 이틀 하다 포기해버렸고, 미라클 모닝의 경우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를 똑 떼어내 격리 시작일에 붙여놔도 딱히 이질감이 없을 것이었다. 요컨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불철주야 성장해내도 남들 발끝이나 따라잡을지 모를 판에, 이것은 사실상 후퇴이자 자발적 도태였다. 격리 때문에 짜증 나니까 그래도 돼, 라는 사이비적 믿음 아래 엑소시스트마냥 갖가지 복된 일들을 악령 취급해대며 격리 해제 이후로 죄다 쫓아내왔다. 정작 퇴마당해 마땅한 놈은 나였는데.


2주간 내가 힘을 쏟은 건 자기 계발 카테고리 외의 모든 것, 그러니까 지극히 쉬운 일들이었다. 예컨대 유튜브 보기라든가, 각종 중고 장터 및 커뮤니티 순회, 그리고 이건 기면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잦은 수면 등, 다시 말해 뇌를 반쯤 꺼두고도 눈을 뜨거나 감고 있기만 하면 저절로 이뤄지는 일들. 생업을 마친 후엔 그런 킬링타임 류의 일들로 시간을 죽여댔다. 타임라인 곳곳에 선혈이 낭자했다.


격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운영하던 시간 암살 업체는 불타는 활황을 맞이했다. 이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때그때 적절한 타임 킬러를 파견해 나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것이었다. 나의 직원들은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야근까지 불사해가며 굳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했다.


푹. 복면을 쓴 유튜브가 멋진 대흉근이 됐을 시간의 복부를 찔렀다. 억.. 니 정 사장이 보냈제.. 대흉근의 시간은 구멍 난 배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그의 이름답지 않게 배는 상당히 말랑했다.


몇 시간 뒤 양복을 차려입은 낮잠들이 파워 블로거가 됐을 시간을 둘러쌌다. 놔! 놔 이 새끼들아! 아직 블로그 소개글도 다 못 썼단 말이야! 파워 블로거의 시간은 어느 공사 현장의 시멘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평소에도 자주 이런 짓을 저질렀다. 잠깐 머리나 식힐까, 하고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머리가 식다 못해 빙하기에 접어들고서야 정신을 차려냈다. 나름 꾸준히 잘해나가고 있던 일도 미루고 싶단 마음과 간편한 즐거움의 게릴라를 당해내지 못한 채 그 일을 내일로 또 모레로 미뤄버렸다. 나는 그런 식으로 갖가지 쉽고 재밌는 일들에 못 이기는 척 야금야금 함락당해냈다. 동시에 뒷문으로는 실력 좋은 킬러를 파견해 일기가 됐을 시간을 담그고 엄마의 자부심이 됐을(지도 모를) 시간들마저 때려눕혔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미뤄대다 때마침 자가 격리처럼 괜찮은 핑곗거리까지 등장하면 이때다 싶어 냅다 퍼져버렸다. 말하자면 전 직원 총출동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곱게 누워 있었다. 이젠 갇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 더 답답해진 기분이었다. 좁은 방에서 나가지 못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그랬다. 그때의 나는 어쨌든 앞 방 사람이라든가, 나가지 못하는 상황 등 탓할 외부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이 개같은 기분으로 이끄는 건 온전히 과거의 나였다.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습관처럼 후회를 해댄다. 잘하는 건 별로 없지만 후회만큼은 무형문화재 급이었다. 흥청망청 흘려보낸 시간을 돌이켜보며 그러지 말걸.. 이라고 후회를 하고, 그러지 말걸.. 이라고 후회하고 있을 시간에 뭐라도 할걸.. 이라고 후회마저도 후회한 뒤, 그러지 말걸.. 이라고 후회할 시간에 뭐라도 할걸.. 이라고 후회만 하고 있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뭐라도 할걸.. 이라고 후회의 후회마저도 후회해낸다. 나는 거의 후회의 화신이었다. 보통 후회의 끝에선 좀 전의 후회거리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의 회상과 함께 소설 속 서사가 멈추듯, 후회의 끝엔 여태 한 발짝도 옮겨내지 못한 내가 서 있을 테니까. 후회만으로는 후회를 끊어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늘 후회처럼 쉬운 일만 하려 들곤 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다. 이 방에서 나갈 수 있게만 되면 모든 게 다 술술 풀려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때가 되니 내게 남은 건 후회뿐이었다. 여전히 엿같은 기분으로 침대에 널브러져 후회나 하고 있었다. 이거야 한심했다.


등 뒤로 한기가 전해져왔다. 정면에서 육박해오는 자기 계발 류의 일들을 피하려 물러서고 물러서다, 결국 막다른 벽에 닿아버린 모양이었다. 돌아서 높다란 벽을 올려다보니 맥이 탁 풀렸다. 이제라도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고 내 앞의 저것들을 감당해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 생각이 내 게으른 마음에 첫눈처럼 내려앉았다가 또 금세 녹아내렸다. 그것은 고된 일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쉬운 일, 그러니까 뭔가를 해내기보단 되어버리고만 싶었다. 이대로 저 두터운 벽에 그저 눌려 죽어버렸으면. 한 순간에 찍 하고 꽥. 고됨을 견디며 헤쳐나가기보단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 더 편할 테니까.


익숙한 무기력. 이 침대의 매트리스가 이대로 나를 먹어줬으면. 아프긴 싫으니 씹진 않아줬으면. 바로 꿀꺽 삼켜져 소화돼버렸으면. 무기력에 익숙해지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다.


침대에 널브러진 채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그대로 유튜브, 인스타, 커뮤니티를 차례로 돌고 당근마켓 아이쇼핑에 인터넷 서핑까지 거행했다. 무기력행 ㅠㅠ, 이 지랄 하면서 핸드폰은 잘도 해대고 있는 걸 보면, 이젠 내가 과연 무기력한 게 맞나 싶어진다. 아니면 그냥 너무 쉬워져버린 걸까. 두터운 무기력마저 통과해낼 만큼, 터치 몇 번으로 뇌에 투여하는 간편한 자극들. 주사기를 구비하고 혈관을 찾아댈 필요도 없다. 카레도 이론상 3분은 걸리는데, 핸드폰으론 몇 초면 깔깔 유머나 몇십 분짜리 도파민 수라상이 대령된다. 나는 그것들에 눈을 고정한 채 해야 할 일들을 손쉽게 외면해냈다. 그것을 잘했다. 빌어먹을 핸드폰. 더 빌어먹을 나.


나는 그렇게 한참을 시체처럼 누워 핸드폰 액정 위로 엄지손가락만 움직여댔다. 그러다 용케 숨이 붙어 있던 양심의 불호령을 듣곤, 핸드폰을 침대(의 가장 푹신한 곳)에 집어던졌다. 그리곤 베개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뒤져 웅비야! 그냥 뒤져버려! 나는 힘껏 숨을 참으며 방금까지 또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을 후회했다가, 후회만 하고 있던 걸 후회했다가, 후회만 하고 있던 걸 다시 후회만 하고 있는 것을 또 후회했다. 그렇게 산소가 부족해질 때쯤,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찾으려 팔을 뻗어 이불 위를 더듬거렸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아니, 이쯤 되면 중독이라고 불러야 할까.


핸드폰 잠금을 풀고 이번엔 또 어떤 앱을 켤지 고민했다. 이미 한참 동안이나 핸드폰만 해댄 뒤라 딱히 켜야 할 앱은 없었다. 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구글을 눌렀다. 사실 검색할 것도 없었다. 그저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르는 것처럼, 핸드폰이 손에 들려 있기에 일단 어떤 앱이든 켠 것이었다. 나는 텅 빈 검색창을 가만히 노려봤다. 그러다 문득 자가 격리 좆같아, 라고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ㅈ. ㅏ. ㄱ. ㅏ.


글자를 입력할 때마다


ㄱ. ㅕ. ㄱ.


추천 검색어가 등장했다가


ㄹ. ㅣ.


사라졌다.


ㅈ.


어?


ㅗ. ㅈ.


방금 뭐지?


스쳐 지나간 추천 검색어를 향해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자가 격리 조, 에선 자가 격리 조기 해제, 등이 떴다. 이게 아니었다. 한 번 더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커서가 자가 격리 ㅈ, 에 이르자 드디어 유턴을 촉발했던 추천 검색어가 다시 떴다. 그것은 무려.. 


자가 격리 지원금, 이었다.


나는 이 한눈에 봐도 복된 단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즉시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쏴아아!


기쁨과 환희의, 자가 격리 지원금, 대홍수가 마침내, 1인 가구, 몰려왔다, 45만원.


나는 잠깐 동안 언어를 잃은 채 검색 결과가 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 세포 깊숙한 곳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꽉 잡아! 내가 반문했다. 응? 미토콘드리아가 액셀 페달에 발을 올리며 다시 외쳤다. 쏜다!


돌연 에너지가 샘솟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빠져나왔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늘진 반지하로 한 줌의 햇살이 들이닥쳤다.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고 여기저기 모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했다. 보건소에서 받아온 무시무시한 주황색 쓰레기봉투가 금세 가득 찼다. 뜨거운 물로 오래오래 샤워를 했다. 뽀송뽀송해진 채 두 번째로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었다. 지원금 신청 서류를 프린트해 각 항목을 또박또박 채워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집을 나섰다. 


간만에 운동화를 신고 걸으니 발바닥에 생경한 느낌이 일었다. 그 느낌에 새삼 밖으로 나왔구나 싶었다. 세상은 싱겁게도 여전했지만 또 더없이 반가웠다. 그러나 발바닥의 생경한 느낌도 세상에 대한 반가움도 몇 발자국만에 무심히 사그라들었다. 나는 일상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밀어내며 동사무소로 향했다.


동사무소에 도착해 지원금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담당 직원분이 대상자가 맞는지 확인해보겠다며 서류에 적힌 내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하지만 내 이름은 대상자 목록에 없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앗, 억 같은 소리를 냈다. 직원분도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셨다. 대상자도 아닌 놈이 이렇게 당당히 지원금 신청서를 들고 오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직원분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혹시 격리 언제 해제되셨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어.. 오늘이요.. 라고 대답했다. 직원분은 헉 되게 빨리 오셨네요, 라며 그러면 아직 명단에 추가가 안 돼서 검색이 안 되는 걸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왠지 돈에 미친 젊은이가 된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아무튼 나는 무사히 45만 원짜리 신청서를 접수하고 동사무소를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거킹에서 통새우와퍼주니어를 포장해 왔다. 오랜만에 먹은 햄버거에선 자유의 맛이 났다. 격리 기간 동안 생업까지 놔버리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통새우와퍼주니어 정도는 종종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세트까지는.. 모르겠다.


햄버거의 잔해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곤 습관처럼 유튜브에 접속했다. 수십 개의 썸네일들이 모니터 가득 펼쳐졌다. 너무도 익숙한 화면. 어제의 나, 그리고 그제의 나도 걸었던 즐겁고 쉬운 길. 나는 문득 어떤 위기감에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나를 쉬운 길로만 이끈다 탓하던 무기력증은 이제 없었다. 그러나 역시 저절로 바람직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일도 없었다. 어쩌면 애초에 무기력증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매번 쉬운 길을 택하려 드는 내가 있었을 뿐.


익숙한 길 끝에 서 있을 익숙한 나.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브라우저를 닫았다. 까맣고 텅 빈 바탕화면에 보였다. 마우스 커서를 노려보며 내뱉을 언어를 골랐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후아, 열심히 살아야지. 메모장을 켰다. 자가 격리 해제, 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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