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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선생 Oct 25. 2017

서울로 가지 못했어도

#006

 '서울로 가라.'에 대한 후속이다.

안 읽었다면 먼저 읽어 보시기를.

 

 아내는 과학고를 졸업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함께 대구에서 학원을 차리고 수학 수업을 하기 전까지는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제외하고 어떤 학교가 더 커트라인이 높은지 하나도 몰랐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할 때에도 주위에는 온통 언급한 학교 출신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필요해야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알게 되는 것 아닌가. 그냥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내의 대학교 동기중 한 명이 자기 동생은 공부를 잘 못해서 서강대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그런가 보다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랬던 아내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앞서 언급한 수준의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요즘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놀라워했던 것은 제자들 중에 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합격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 고, 연'에 합격하는 학생이나 '서, 성, 한, 중, 외, 경, 시'에 가는 학생들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 레전드 급 아이들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머리에 피나는 노력을 더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핵심은 누가 더 열심히 했느냐 일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천적인 '똑똑함'이 절대로 아니었다. 독한 마음먹고 재수해서 수능에서 대박치는 사례는 많지 않던가.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렇지 않다가 재수하는 1년 사이에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독하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생이 되면 고3 때의 성적 차이는 대학교 이름으로 구체화된다. 스무 살.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경험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뛰어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발적 열등의식.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무서운 것이다. 전공별 전국 모의고사 같은 것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아도 그런 생각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졸업 후 커트라인 높은 대학교의 석사과정이라도 입학해보면 그제야 별 차이가 없음을 조금 인식하게 된다.


 몇 해 전 비수도권의 어느 사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아내의 대학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어떻냐는 질문에 "똑똑한데, 자신감이 없어요."라는 답을 주셨다. 그러면서 한 제자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서울에 있는 소위 '커트라인'이 더 높은 학교에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처음 올라가서는 많이 쫄았는데, 같이 공부해보니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한 것이 좋은 계기였다고 했다. 그 학생처럼 확실한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 틀을 깨기가 어렵다. 그러니 독자 중 학생이 있다면 진심으로 부탁하건대 수능성적을,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름을 자신의 능력의 한계라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또, 부모라면 적어도 "그 학교 나와서 뭐할래.", "그 학교 나오면 취직도 못해." 같은 기를 꺾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어딜 가서든 네가 열심히 하면 돼."와 같이 긍정적인 말을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있었던 '자율주행차 경진대회'에서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등을 제치고 지방 사립대인 계명대학교가 우승했다는 소식에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사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율주행차 경진대회 소식 기사 바로 가기>

< 자율주행차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계명대학교 BISA 팀, 출처 : 중앙일보 >

 이 학생들이 대회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우승 트로피와 상금이 아니라 '자신감' 일 것이다.

 

 운영하는 학원이 위치한 동네에 나도 살다 보니 가르쳤던 제자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기회가 닿으면 해주는 말이 있다. "선배를 따라 하지 마라." 이전 글 <서울로 가라>에서 비수도권 대학교에서는 수도권의 학교보다 다양한 친구, 선후배를 만날 기회가 적다고 했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도 큰 것이다. 다양성이 부족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선배가 가는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안정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남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선배를 찾아보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학벌은 기초 체력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딱 맞는 말이다. 스무 살에 가졌던 기초체력이 좋다고 해서 20대 후반, 혹은 3, 40대에도 체력이 좋을 이유는 없다. 그때의 체력은 그동안 어떻게 단련했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좋은 학벌이 더욱 필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점점 학벌이 파괴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에는 '들은 사람'과 '읽은 사람' 그리고 '해 본 사람'이 있다. 대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사회 초년병은 앞의 두 범주에 대부분 속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수년 이 지나면 '해 본 사람'으로서 평가받는 시기가 된다. 평가의 기준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봤냐.'지 학창 시절 '뭘 읽고 뭘 들었냐.'가 아니다.

  

 그러니,


서울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쫄지 말고,

선배를 무작정 따라 하지도 말며,

무엇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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