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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 Feb 14. 2023

새해, 그리고 안녕.

펫로스의 해결방법을 알려주세요.


2023년도 벌써 한달 반이 흘렀다. 부부로 맞는 첫 새해에는 집 앞 학교 캠퍼스에서 해돋이도 챙겨봤다. 잘 살아보자, 다짐하고 즐겁게 새로운 한 해를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새해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이 되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끌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며칠 간은 그렇게 어떻게든 잘 버텼다.


2명 몫을 한 명이 하는데다 학기말이라 일이 많아지긴 했어도 그만큼은 각오를 했으니 어떻게든 잘 흘러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야간 선생님이 떠나가신다고 했다. 2.5명 몫을 내가 맡게 되었다. 인력 충원이 언제 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캄캄하고, 막막했다. 그래도 머물러 있던 내게 발전하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거라 생각하려 했다.


일이 많아 힘든 것보다는, 일이 많다는 걸 감안하고 다독여줄 줄 모르는 윗사람이 더 힘들었다. 본인이 더 힘들다며 찡얼거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될 업무까지 하나 더 얹어주는 그런 사람 때문에, 꾹꾹 눌러참는 마음에 자꾸만 화가 올라왔다. 그래도 잘, 버텼다. 아무리 짜증나고 눈물이 나도, 집에 가면 오롯한 내 편이 늘 나를 꼭 안아주었으니까.


그렇게 설도 보냈고, 남들은 힘들다는 명절에도 나는, 잘 챙겨주시는 양가 부모님들 덕에 창원과 대구, 서울을 오가는 시간 외에는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내고 왔다. 돌이켜 생각하니 힘낼 일만 있는데 왜 이렇게 자꾸만 힘이 빠지는지 모르겠다. 매번 돌아오는 우울함의 구간에 빠졌나. 나약한 녀석이로다. 그래도 1월 내내는, 나름대로 잘 견뎌냈다.


그런데 2월은 참 숨쉴 틈 없이 몰아친다. 학년도 회계는 마감에 이르렀고,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변동이 많아졌고, 일은 늘어났고, 놓치는 것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큰 일을 놓칠까 두려워졌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우리집 막둥이가 떠나갔다.



만으로 20살, 햇수로 21년을 꽉 채운 우리집 막둥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치매로 2년 가까이를 고생했고, 엄마가 눕혀 재워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뱅글뱅글 바닥을 돌기만 하던 우리 막내. 떠나보내야 하는데, 엄마와 너무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엄마가 차마 놓지 못했다. 스스로 편히 가기를 기도했는데,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되어 결국 병원에서 보내주었다. 엄마는 차마 따라가지 못해 아빠가 병원에 갔다가, 장례식장까지 같은 날 다녀오셨다.


그 순간 이후로 엄마가 운다. 한없이 운다. 전화를 하면 한없이 같이 무너져서 엄마를 다독이는 게 잘 안된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엄마 곁을 지켰던 막내라, 엄마는 매일을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을 낸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어야 하는데, 보내주었다는 죄책감이 엄마를 짓누른다. 엄마의 눈물에 이번엔 나의 죄책감이 나를 짓누른다. 


이 아이가 엄마에게 준 따스함과 사랑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건 내가 그 긴 시간을 엄마와 함께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당장에 달려가 그 고통에서 끄집어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내 물기에 젖어 저 깊숙히 잠겨버린 목소리로 '엄마 괜찮아' 하는 말에 너무 힘들지 말자, 사랑해, 말밖에 못하는 내가 감히, 20년을 매일 한몸같이 곁에 있어줬던 우리 막내의 빈 자리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나와 내 동생과, 내 아버지가 학업이며 일로 엄마 곁을 떠나 있던 그 긴긴 시간과 온기를.


학생 때였다면, 당장에 내려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엄마 옆에 붙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생각이라도 잠시 잊게 해줄텐데 지금의 나는 나의 가족도 책임지지 못한 채로 회사에 묶여있다. 내가 며칠 없어도 잘만 굴러가던 곳이, 하필 내가 없으면 엉망진창이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던 회사일들을 다 집어던지고 싶은 건 결국에, 나의 죄책감 탓이다.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엄마가 이대로 자꾸만 삶의 방향을 잃으면 어쩌지.

나의 이 죄책감이 평생 풀지도 못할 끝없는 죄책감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지금 내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끊임없이 생각은 굴러가는데, 제대로 가질 않고 헛돌기만 한다.

말도 자꾸만 헛돌아서, 글도 자꾸만 방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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