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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 Jun 22. 2020

사랑해 마지않는 잔인한 당신께

엄마와 딸, 우리는 사랑과 상처 그 사이에 있다


나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줬으면 좋겠으니까.

- 디어 마이 프렌즈


나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는 게 맞을까. 우리 엄마도 아닌데, 엄마의 이야기를 한 발치 떨어져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기사도 대충 흘려 읽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방송이 종영된 지 4년이나 되어서 대사 하나 때문에 정주행을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만 무서운 줄 알았더니, 넷플릭스마저 시기 좋게 디마프를 추천한다. 이 대사를 본 게 이틀 전이었는데. 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이야기이자 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와중에 대사 하나로 나는 드라마를 짐작한다.


나에게 엄마는 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자 세상에서 나를 제일 상처 주기 쉬운 사람이었다. 가장 도망치고 싶었으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꾸만 과거형이 되는 건 이제는 그냥 심플하게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서일까. 엄마와 나는, 서로가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힘든 관계였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줬으면 좋겠으니까.’ 이 대사 한 마디가 모든 심정을 대변한다. 내가 아니라도, 부디 제발 행복했으면 하는 내 소중한 사람.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그럼에도 깨어지고 또 깨어지면서 붙이고, 다시 붙이길 반복하며 살아온 내 당신. 그런 당신에게 받아온 사랑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키웠다. 만들었다,라고 하려다 키웠다,라고 다시금 써본다. 만들었다기엔 나는 당신의 세상과 별개로 좀 더 많은 것을 겪었고, 이제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벗어나고 싶은 당신에게 내 모든 고통을 전가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당신을 탓하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한 발치 떨어져 내가 나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이제는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내 블로그가 아닌 이곳에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내 사랑하는 당신이 내 관점으로 써내려 가는 나의 이야기에 괜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서다. 기침 한 번에도 자식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당신께, 내 묵은 상처로 새로운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열심히 아닌 척을 하고 싶어 발버둥 치지만, 나는 어쩌면 늘 엄마 탓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 나약함을 당신의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지우고 싶었다. 허나 그러기에는 나의 찬란한 당신이 너무 소중해 내 상처를 보일 수 없다. 내 이야기는 사실 누군가에겐 너무 아무렇지 않을 이야기이고,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건 내 이야기니까, 이제는 내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글로 늘어놓아 본다.


아아, 사랑해 마지않는 내 잔인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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