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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Feb 04. 2021

유채꽃 보러오는 이가 없네.

2020년 3월의 일기. 개구리발톱

 비가 오더니 봄이 함께 왔다. 봄비가 촉촉 내리자 하루 만에 유채꽃의 색도 쨍해지고, 연둣빛 새순들이 움을 텄다. 며칠 동안 버썩 말라 있던 숲의 향이 살아나는 걸 보며 봄이 오는 소리는 ‘톡톡’이 아닐까 싶었다. 숲 끄트머리에서 작고 빨간 동백꽃이 툭툭 떨어졌는데, 검은 돌담길과 어우러져 그 모습조차도 예쁘다.


  “지난겨울 심어 놓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네.” 같이 숲 해설을 하는 엄마의 넋두리에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람들이 침묵의 시간을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다. 이렇게 예쁜 봄날인데 여행객이 안 와도 걱정되고, 여행객이 와도 걱정되는 요즘이다. 단체 관광객들과 수학여행, 봄 소풍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겨서 숲도 덩달아 썰렁해졌다.


  지금은 숲 해설마저도 쉬고 있지만, 지난달 손님들을 대할 때에는 눈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곤 했다. 사람은 목소리로 말을 한. 당연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마스크를 쓰며 해설하기 시작하니 표정으로도 많은 말을 했고, 입 모양 또한 중요했음을 새삼 느낀다. 마스크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바이러스 걱정으로 사람들이 경계심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다 보니 날이 서게 되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해설사님의 해설을 지나가다 들었다. 손님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눈이 초승달이 될 만큼 크게 웃을 때가 아니면 모두 무표정하게 보이는 것이다. 해설하는 사람부터가 뚱해 보이니 듣는 이들도 감동을 얻고 가지 못한다.


  이튿날부터는 손동작을 크게 하고 입꼬리가 아플 만큼 눈웃음을 지으며 해설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한결 밝아졌다. 바로 눈으로 보였다. 이렇게 서로 간의 벽이 생길 때는 좀 더 커다란 제스처가 필요했음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일상이 소중했음을 모두가 깨닫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중요시하는 시기이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안부 문자라도 하며 서로 힘이 되어줘야 할 때 같다. 지금의 사태가 너무 길어져서 지치지 않길, 많은 사람이 아프질 않길 바라본다.

  코로나로 숲길과 표지판들을 정비하고 묵었던 자료들을 정리하는 시기가 생겼다고 혼자 위안해본다. 그러며 손님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들도 차곡차곡 읽어본다.


  “동생과 걷다 보면 사락사락 나뭇잎 소리, 쿵쿵 발걸음 소리, 짹짹 동물 소리까지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그럴 땐 자꾸 마음을 졸입니다. 언제 또 어떤 작은 생물들이 희생될지요. 그 나무들은 우리를 위해 열심히 눈물 삼키며 자라겠지요?” 또박또박 초등학생의 글씨체인데 그 마음이 맑고 곱다.


  그래, 숲의 생명도 이 봄에 조용히 쉼을 갖기를. 유채꽃은 지고 있지만, 수국이 필 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활기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났으면 한다.

숲에서 만난 생명 – 개구리발톱

  봄에 숲 안내를 하다 보면 꼬마 아이들이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며 나를 부를 때가 있다. 작고 하얀 꽃을 피운 것이 개구리발톱이다. 내가 볼 때는 전혀 다른 것 같은데, 책이나 영상을 통해 식물을 접한 아이들은 비슷해 보이나 보다. 사실 이 식물을 잘 알긴 하나 이름은 최근에야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희귀종류 식물들의 이름은 달달 외우면서 이렇게 어릴 적부터 늘 보고자란 들풀들은 ‘검질’이라고만 불렀다. 해설가이기 이전에 농부에 딸이 맞나 보다. 그런데 한번 이름을 듣고 나니 잎 모양이 꼭 개구리의 물갈퀴 같은 게 귀엽다. 꽃은 또 얼마나 소박하고 앙증맞은가? 어떻게 보면 쓸모없는 검질(잡초)이고,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야생화인 것이다. 꽃 뒤편에 있는 꿀주머니가 날카롭고 안으로 오므라든 모양이 꼭 매의 발톱 같아서 ‘매발톱’, 꽃대가 꿩 다리처럼 늘씬하게 생겼다고 ‘꿩의다리’,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노루오줌’ 등 참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이 있다. 멀리 나가기 조심스러운 시기이다. 집 앞 공터의 피어나는 잔잔한 야생화들을 찾아보고 이름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아스팔트나 시멘트 틈에서도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를 잘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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