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존재할까?
11년만에 <진격의 거인>이 완결되었다. 정말로 201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억이 남을 것 같다. 그동안 엄청난 충격의 연속이었기에 결말이 다소 밋밋하다는 평도 있지만, 평행우주 같은 편법으로 도망치지 않고 저 방대한 이야기를 무난하게 마무리지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작품은 굉장히 일본적인 특수성에서 시작하여 점점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한다. 초반에 이런저런 논란도 있었지만, 결국은 일본인이었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모순을 바탕으로 전쟁, 차별, 학살, 사상, 신념 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1:1로 매칭하기엔 워낙 여러 비유들이 들어가있지만 개인적으로 즉각 연상이 되거나 연결시키고 싶은 사건들도 많이 있다. 주 무대가 되는 파라디 섬부터 일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유미르의 민족은 패전 후 일본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한 때 세계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자숙, 혹은 반성을 강요받으며, 전후 체제에 대해 순응하거나 혹은 반발하는 모습은 벽 안의 인류와 오버랩된다. 부전의 맹세는 평화 헌법에 해당하고 이를 깨고 넓은 세계로 나가려는 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지만, 결국 또 다른 큰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평화 헌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에겐 자유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침략이 될 수 있고, 또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정의롭다기보단 현 체제가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들일 뿐이다.
거인에 대해서도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었지만, 메이지 시대에 일본인들이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 열강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공포감이 연상되기도 한다. 후반부에 벌어지는 전투는 누가 봐도 러일전쟁 때 뤼순 공방전의 양상 그대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2.26 사건이나 나치의 게토에 대한 직접적인 차용도 있고, 20세기 초의 다양한 역사적 비극을 섞는다.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가깝다. 옳고 그른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국 자신의 좁은 시야로 원하는 바를 추구하기 때문에 전쟁과 같은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상징하는 인물이 지크이며, 지크의 정치적 입장은 극단을 오가지만 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종말에 가깝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좁은 시야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꿰뚫는 통시적 관점을 가진 진격이 거인이 내린 결론이 다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엘렌도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20세기 역사의 큰 동력이었던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는 전례 없는 세계 대전과 대학살로 연결이 되었으며, 지금도 인종 청소는 계속 되고 있다. 진격의 거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라는 속성은 아마도 이 모든 것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로써 또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에반겔리온> 이후 이렇게 떡밥들에 열광하고 상징들을 분석한 적이 있냐 싶을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 작품을 또 이렇게 떠나보낸다. 정신차려보니 벌써 202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