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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a Dec 01. 2018

하루키를 향한 '커밍 아웃'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동아리 후배에게 정말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 게다가 하루키의 에세이라니, 정말(x2) 오랜만이다. 책 이름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진정한 신사는 헤어진 여자와 이미 납부해버린 세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 라고 하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와 같은 말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면, "건강법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 역시, 신사의 조건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라는 문단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아- 이런 느낌 너무 좋다!


생각해보니 대학생 때는 하루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나름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였다.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해요’ 혹은 ‘필립 K 딕의 팬이에요’라고 말하는 것과 하루키 팬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상당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 지닌 취향의 얕은 깊이를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굳이 같은 시대에 영화로 비유를 하자면, 왕가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스탠릭 큐브릭이나 허우 샤오시엔의 지지자들 앞에서 진지한 썰을 푸는 꼴이라 할까. 뭐.. 이 모두 세기말에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신경쓰던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나는 공공연하게 하루키가 좋다고 ‘커밍 아웃’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검열이 작동하여, ‘일본 (사)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나츠메 소세키나 다자이 오사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본 것 같아요’라고 표현한다. 세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은 것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미안하게도 앞의 두 작가는 (특히 나츠메 소세키는 내가 끔찍하게도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된다.

쓸데없는 수식을 붙이지 않게 된 것은, 더 이상 하루키의 책이 TV광고에 인용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Q84>가 준 충격이 거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 나간거 아닌가 자기 검열이 또 작동하기도 하지만, 내 머릿속 책장에서 이 작품은 <죄와 벌>과 같은 높이에 모셔져 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이후에 처음으로 잡은 하루키의 에세이는 역시 술술 읽힌다. 개인적으로도 매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주에 한 두번은 달리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runner’s high’의 매력에 대해 가끔씩 설파하는 부류이기에 공감가는 내용도 많다. 후배는 내가 달리기를 하는지 까지는 몰랐을 것 같은데, 적어도 나에게 어떤 책을 주면 안전할지는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말(x3) 오랜만에 3호선에서 책을 펴놓고 졸면서 내려왔다. 상쾌하진 않지만 피로는 풀리는 느낌이다. 나름 괜찮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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