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3월 31일 본인의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 덧붙여서 쓴 포스팅입니다.)
LG가 G5라는 새로운 폰을 내놓았습니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 사이에서 고민하던 소비자에겐 전혀 다른 전략을 택한 G5는 새로운 희망으로도 보입니다. 바디의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을 가진 카메라를 장착한 건 분명 좋은 제품임을 보여주지만 이건 기본입니다. 만일 G5의 가치에 이러한 요소들에 좌우될 것이었다면 갤럭시 S7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G5의 가능성은 아이폰과 갤럭시가 가지고 있던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데 있습니다. G5가 추구하는 차별화 전략은 탈착식, 그리고 확장 가능한 배터리 모듈, 그리고 폰과 연동 가능한 주변기기 ‘프렌즈’ 시스템입니다. 폰을 더 이상 폰이 아닌 확장 가능한 기기로 재정의한 LG의 전략은 정말 획기적이지만 너무나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 설익은 아이디어를 급하게 출시한 나머지 LG G5는 그냥 또 다른 고성능 폰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G5에 대한 비전이 그만큼 크지 않았던 걸까요? G5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분명 뛰어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구글이 시도했던 조립식 폰 Google Ara 보다 더 집중돼있고 완성도가 있습니다. 구글폰이 여러 부속품들의 교체로 성능과 기능의 강화를 노렸다면, G5는 모듈 하나만 바꿉니다. 대신 바뀔 때마다 폰은 카메라가 되고, 스피커가 되고, 전혀 다른 전문기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LG의 마케팅 팀은 자신들의 제품과 사랑에 빠진 나머지 이 기기를 사용할 소비자보다 제품 그 자체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제품이 얼마나 잘났는가 홍보하는 모습은 삼성이 갤럭시폰을 홍보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 기기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이만큼 빠르고, 용량도 크다고 홍보하지만 그래서 정작 누가 이 폰을 쓰면 좋겠다는 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진부한 비교지만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노력해왔습니다. 그 유명한 Think Different 캠페인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애플은 자신들의 제품을 괴짜들, 창의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다고 홍보합니다. 애플 광고에선 폰을 사용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에 초점을 둡니다. 자신도 창의적이기에, 아니면 창의적이고 힙해 보이고 싶기에 아이폰을 너도나도 사는 겁니다. 갤럭시폰이 아이폰보다 점유율이 훨씬 높고 보편적이라고 역설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 사용자들은 자신이 쓰는 폰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도 큽니다. 큰 특징 없이 객관적인 스펙으로 승부하는 갤럭시이기에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G5는 콘셉트 자체가 너무 튀고,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모든 이가 아닌 특정 사람들의 폰일 수밖에 없습니다.
LG가 G5로 노리는 건 플랫폼 구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높이 삽니다. 핸드폰 디자인은 어지간해서 크게 변하기 어렵고 스펙만으로 도토리 키재기 하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건 어려울 것입니다. 핸드폰과 주변 기기들로 구성된 플랫폼은 새로운 제품군과 유저 그룹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심 차게 내놓은 8개의 ‘프렌즈’지만 이렇게 자회사에서 만든 동네 친구들로 얼마나 큰 세계를 정복하려는지는 의문입니다. 뱅 앤 올룹슨과 이뤄낸 콜라보레이션을 다른 모듈과도 이뤄냈어야 합니다. 탈부착형 모듈의 매력은 핸드폰이 전혀 다른 전문 기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 그만큼 그 모듈들의 제 가치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나 신기해서 몇 번 이 모듈 저 모듈 바꿔보다가 나중엔 귀찮아지면 G5는 그냥 배터리나 바꿀 수 있는 폰으로 전락합니다.
다른 기기 회사들과의 협력에 실패한 건지, 출시 일정에 떠밀려 성급히 결정을 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LG는 덕후들을 위한 최고의 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다른 기기 회사들을 참여시켰다면 G5는 아이폰과 갤럭시폰에 대한 치명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확장 카메라라면 캐논이나 폴라로이드 같은 회사가 G5용 모듈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디카 덕후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폰이 될 수도 있었을까요? 소니나 닌텐도에서 확장 컨트롤러 모듈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요? 일단 LG에서 만든 모듈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제품들일 테고 이미 그 회사 제품들을 사용하는 충성스러운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G5 출시 이후에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한다면 늦습니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들과의 협력으로 8개의 프렌즈를 출시했다면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더 용이했을 겁니다. G5의 플랫폼이 불확실성이 큰 시장인만큼, LG 측에서는 어떻게든 브랜드들을 입점시켜야 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을 만들지 않겠다고 단언하던 닌텐도도 최근에서야 스마트폰을 위한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그 어떤 디지털 기기 회사에게도 모바일 환경은 탐나는 영역일 테고 G5가 그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LG도 살고, 협력회사도 사는 윈-윈 전략일 뿐만 아니라 양분화되고 포화됐다고 생각한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플랫폼은 확실히 새로운 트렌드이고 LG는 이 점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생태계란 그 호스트만을 위한 게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여러 생물체들이 자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돼야 번영할 수 있습니다. 앱스토어가 소프트웨어들의 생태계라면 G5와 프렌즈는 하드웨어의 앱스토어가 될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바입니다. 이번 G5와 그 동네 ‘프렌즈’들은 Gimmicky 한 느낌이 커서 조금 관심을 끌다 말 것 같지만, 빠른 시일 내에 LG가 글로벌 ‘프렌즈’들을 사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