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우 Apr 17. 2016

버스에서 내리지 마세요

헬싱키 버스 정류장 이론

James Clear의 블로그에서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를 번역해보았습니다. 


헬싱키 버스 정류장 이론


2004년 6월, 사진작가 아르노 라파엘 민키넨은 뉴잉글랜드 사진학교의 졸업식 연설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기대감에 잔뜩 부푼 졸업생들 앞에서, 민키넨은 자신이 여태까지 믿어온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아우르는 간단한 이론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이를 헬싱키 버스 정류장 이론이라 불렀습니다.


민키넨은 핀라드 헬싱키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큰 버스 정류장 하나가 있는데 민키넨은 이를 묘사하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광장에 한 스무 몇 개쯤 되는 승강장이 있지요." 


"각 승강장에는 21, 71, 58, 33, 그리고 19처럼 각기 다른 버스 번호가 적혀 있는데 모든 버스는 한 1km쯤 되는 같은 도로를 타고 시외로 나갑니다. 물론 도중에 역이 몇 군데 있습니다."


"자 이제, 각 정류소가 사진작가의 일생에서 일 년을 상징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세 번째 역은 3년간의 사진작가 경력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3년간 누드를 플래티늄 인화로 작업했다고 합시다. 이건 21번 버스라고 하죠." 


"지난 3년간의 작업 결과를 들고 보스턴 미술관에 가져가지만 미술관 큐레이터는 당신에게 어빙 펜의 누드 작업들을 본 적 있는지 반문합니다. 펜이 타고 있던 71번 버스도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던 거죠. 그래서 이번엔 파리의 어느 갤러리를 가보지만 그쪽에서는 58번 버스를 타고 있던 빌 브란트를 참고하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이미 다른 이들이 지나왔던 길이라는 걸 안 당신은 충격에 빠집니다."


"상심에 빠진 나머지, 당신은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습니다 - 인생은 짧으니까요 - 그리고는 다시 헬싱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다른 승강장을 찾습니다."


"이번엔, 당신은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컬러 스냅샷으로 담아내기로 합니다. 새로운 기법으로 3년간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작업물 또한 전번과 비슷한 반응을 얻고 맙니다. '리처드 미즈락의 스타일이군요?' 해변에 야자수를 담은 흐릿한 흑백 사진을 본 한 비평가는 야속하게도 샐리 만을 거론합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당신은 버스에서 뛰어내려 택시를 잡습니다. 다시 정류장에서 새로운 개찰구를 찾아서 말이죠.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경력은 이런 활동의 반복입니다. 항상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다시 다른 사람들과 비교당합니다."


여기서 민키넨은 잠시 멈춥니다. 학생들을 다시 주시하며 물어봅니다. "어떡하죠?"


"답은 간단해요."


"버스에서 내리지 마세요. 절대 내리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그 차이를 느끼기 시작할 겁니다."


"헬싱키에서 떠나는 버스들은 같은 도로를 타고 나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이에요, 아마 1km, 2km 정도. 그러고선 길이 나뉘면서 고유 번호에 맞는 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가는 거예요. 33번 버스는 갑자기 북쪽 도로를 타고 갈 수도 있고 19번 버스는 남서쪽으로 갈 거예요. 21번 버스와 71번 버스는 한동안 같은 도로를 타고 달리더라도 곧 갈리는 거예요. 어빙 펜은 다른 목적지가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모든 길은 갈림길이라는 겁니다." 민키넨은 거듭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작업과 자신이 동경하던 작업에서 차이가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자신만의 색을 찾아야 할 타이밍이에요. 당신이 그 승강장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나는 때에요. 그 순간 당신의 작업이 주목받기 시작할 겁니다. 그 순간부터 자신만의 작업을 하게 되고 처음에 영감을 주었던 작업과의 차이는 점점 커질 거랍니다. 햇수가 지나면서 작업의 완성도도 높아질수록, 비평가들의 관심도 끌 거예요. 그때쯤 되면 당신의 작업은 더 이상 샐리 만, 랄프 깁슨의 작품과 비교받지 않고 당신 초창기 작업과 비교받게 될 거예요."


"결국엔 버스 노선 전체를 보상받을 겁니다. 20년 전에 만들었던 빈티지 프린트들은 재평가받게 될 것이고 가격 또한 껑충 뛸 거예요. 버스 종점에 다다러서는 당신의 작업은 마무리되겠죠. 아티스트로서의 마무리일 수도 있고 생애의 마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종점에 다다르면 당신의 커리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거예요. 모작/습작이 대부분인 초창기, 자신만의 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과도기, 전성기, 슬럼프, 유작, 이 모든 과정들이 모여 당신만의 비전을 완성할 수 있죠."


"그 노선을 완성할 수 있던 이유는 하나예요."


"당신은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갔기 때문이에요."

작가의 이전글 맨손으로 벽을 기어올라서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