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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주철 Oct 12. 2017

오늘 엄마는 또 단식을 한다

노조지도부와 엄마, 그 사이

친구가 카톡으로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할 일은 없지만 내일이 두려운 직장인으로서 답을 애매하게 했다. 


“딱히. 무슨 일 있음?” 

“오늘 서울시교육청 앞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서울시 교육청? 뭐함?” 

“A가 어머니 뵈러 간다던데 같이 갈라고” 


나는 그제야 느낌이 왔다. A의 어머니는 전국 학교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 중 한 분이셨다. 친구 B는 내가 투쟁하는 자리에 많이 가봤으니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들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기사를 검색해보니 오늘이 단식투쟁 12일 차였다. 단식투쟁이라니, 투쟁의 끝판왕이 있다면 그중 하나 아니겠는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단식 투쟁하는 자리에 가본 적은 없었다.


“향수나 섬유유연제 같이 냄새가 짙은 건 최대한 피하고 식사는 각자 하고 2시 반에 만나자” 


그리고는 나와 B는 먼저 만나서 계양역에서 A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A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에선 내가 A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투쟁의 자리는 때로는 사활을 걸기도 하며, 때론 일상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카메라를 들고 갈까도 생각해봤다. 사실 일상 스냅을 최대한 찍으려고 요즘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이 자리에 카메라를 가져가면 나는 ‘아들 친구’로서 응원을 가는 것보다 취재를 하러 가는 기분이 (스스로) 들까봐 카메라는 두고 갔다. 집을 나서서 B를 만나고 계양역에서 A를 만났다. A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정작 내가 더 오바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A는 어머니의 단식투쟁이 벌써 세 번째라며 이미 몇 번 봤다고 말했다. 그래도 직접 가보는 건 처음이라며 한편으론 떨림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평소와 똑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일 이야기나 스타크래프트,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그러다가 잠시 접어놨던 이야기 처럼 툭 “(집회 장소에) 가면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서대문 역에서 조금 내려가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서울시 교육청이 있다. 가는 길에 있는 플래카드를 보며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주철아 근데 왜 투쟁하는 곳은 다 빨간색이야?” 

“그래서 빨갱이인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
"...." 


친구들은 성공회대식 개그에 엄격했다. 


농성장에 가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전국여성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 3개의 연대체가 함께 투쟁을 하는 곳이었다. 가보니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장의 맞은편에는 삭발한 지 한 달 남짓 지나 머리카락이 우툴두툴 난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A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동요의 성격보다는 담담한. 그저 복잡한 그것뿐이었다. 시장이 자리를 떠나고는 우리 셋은 어머니께 다가갔다.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분들은 “어머 누가 아들이야?”, “셋 다 닮았네”라는 말과 함께 반겨주셨다. 어머님은 퉁명스럽게 ‘어떻게 왔냐’며 엄마와 아들 사이의 말을 나눴다. 짧았지만 어머니의 눈 밑이 촉촉해짐을 볼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우린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눴다. 말수가 적어진 A를 대신해 어머님께 말도 걸고 그 자리의 짧은 사회자가 됐다. 교섭은 어찌 돼가고 있는지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게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사실은 ‘어머니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어머니 너무 멋있으세요’ 등의 위로와 뜨거운 존경을 담은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해와 위로의 말이 때로는 폭력이듯, 그저 빈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방문한 것으로 대신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리를 떠날 때 짧지만 어머님과 포옹을 하고는 우리는 언덕을 내려갈 채비를 했다. 내려오면서 “왜 이렇게 덥지?”라는 B의 말에 “마음이 뜨거워서 그렇지 뭐”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는 투쟁의 가장 앞자리에 있는 노동자이자 내 친구의 어머니를 10년 만에 만난 자리였다. 어머님과 나눴던 대화중에 “싸워야지 바뀌지 않겠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2017년 10월 8일. 오늘은 단식 12일 차다.


장미가 시들기 전에 /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장미가 시들기 전에 / 한겨레 박종식 기자

- 한겨레, '[포토] 장미가 시들기 전에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132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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