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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21. 2023

돈 되는 글쓰기가 헛헛한 이유

이제 좀 대개 막 그런 인터뷰를 합니다.  

브런치에 글 쓴다고 돈이 되나. 일단 돈 되는 글부터 써야지.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나에게 돈 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도 책임을 지고 써야 하는 글이다. 대개는 기고글이나 계약으로 써야만 하는 글들인데 요즘은 계속 인터뷰 원고를 쓰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는 시민과 연구자들을 인터뷰하고 글로 정리하는 게 현재 주어진 글쓰기 과업이다.


인터뷰 글쓰기는 인터뷰 질문을 상대방에게 미리 공유하고, 약속 날짜와 시간, 장소를 잡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조용한 공간을 섭외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몇 번의 인터뷰는 사무실이자 공유 공간으로도 쓰는 개인 작업실에서 진행했고, 몇 번은 연구자들의 연구실 또는 손님이 드문 동네서점과 조용한 카페 등을 찾아 진행했다.




인터뷰는 대개 상대방과의 편안한 분위기 형성을 위해 차를 마시거나 안부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된. 인터뷰이와의 대화가 부드럽게 물꼬를 트면 본격적인 인터뷰 질문을 건네는데 인터뷰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경청하며 리액션도 취하고, 예상했던 깊이나 방향의 답변이 잘 나오지 않으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세부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내내 고도로 집중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명 정도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날은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진이 빠진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해야 할 일은 녹음한 대화를 녹취록으로 만드는 것이다. 앱을 이용해 녹취록을 생성하고 나면 노트북으로 파일을 옮긴다. 그리고 질문과 맞닿은 핵심적인 답변 내용들을 정리한다. 내가 건넨 이야기나 세부질문들은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하고 삼천포로 빠지는 답변들은 모두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녹취록의 70% 정도가 잘려 나간다. 가장 먼저 편집되는 내용이 인터뷰 주제와 동떨어지는 불필요한 이야기들이라면, 그다음은 의미 전달을 가로막는 과도한 부사들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마다 자주 쓰는 부사가 다른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이제, 막, 좀, 그냥, 되게, 이런, 그런, 어떤, 사실..'과 같은 어휘들이다. 강조하고 싶을 때마다 '막'이나 '되게'를 수시로 쓰는 이도 있고, 자기 확신이 없어 '좀'이나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어떤', '이런', '그런'과 같은 추상적 언어로 퉁 치는 사람들도 많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면의 무엇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와 자신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계속 '사실'이라는 단어를 말머리에 붙이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한다. 이이제제 막 그

냥 되게 좀 그런 이제 막 그냥 되게 좀 그런 이

한 인터뷰이는 대화 내내 '좀 그런 느낌, 약간 이런 분야, 어떤 그런 모색, 이제 그런 개념'과 같은 표현을 자주 썼는데, 이렇게 잦은 부사의 사용은 자기 스스로 정리가 덜 된 내용을 말한다는 인상을 준다. '좀 그런 느낌'이 정확히 어떤 느낌을 말하는지, '약간 이런 분야'라는 건 어떤 분야를 뜻하는지, '어떤 그런 모색'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한 모색인지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자주 듣다 보면 인터뷰를 하는 나도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그냥 막 되게 좀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되게 좀 그런 것 같은 인터뷰를 이제 막 그냥 되게 좀 그런 것 같은 인터뷰를

그럴 땐 현장에서 추가 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명료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다. 결국 녹취록을 곱씹으며 상대방이 앞이나 뒤에서 한 말에서 맥락을 유추하여 문장을 재구성해보는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인터뷰이의 말을 예로 들면,  불필요한 부사부터 지우고 의미가 뚜렷한 명사를 중심으로 문장을 재구성하고 어미나 조사도 문법에 맞게 고친다.


"이게 좀 중간중간 어떤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있으니까 시간을 좀 두고 좀 그 안에서 좀 정리를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것도 되고."

(이 정도는 아니어도, 대화를 녹음한 후 들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사를 자주 사용하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중간에 공유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시간을 두고 계획적으로 정리할 수도 있고.


이런 방식으로 원고지 200매 분량의 녹취록을 원고지 35매 정도 분량으로 다듬는다. 글자수로는 공백을 제외하면 2만 자가 넘는 글자를 6천 자 내외로 줄이는 작업이니 70%의 분량을 덜어내고 30%만 남기는 과정인 셈이다. 인터뷰는 두어 시간이면 끝나지만 원고로 다듬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리기 때문에 인터뷰보다 글 쓰는 일이 훨씬 고되고 지루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인터뷰 글쓰기가 어려운 점은 온전한 나의 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말을 편집하고 재구성하지만, 그 안에 담긴 스토리와 메시지는 그들의 것이다. 진행자와 구술자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상호작용했다 하더라도 인터뷰이의 말을 중심으로 글이 정리되기 때문에 설사 진행자가 답변에 영향을 미쳤다한들 그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글을 완성한 뒤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글을 썼지만, 내 글이 아니라는 헛헛함. 그게 어찌 보면 돈을 받고 인터뷰 글을 쓰는 대가인지도 모른다.(글쓰기 작업을 떠나서 생각해보면, 인터뷰 자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 꽤나 즐겁다!) 


인터뷰 글쓰기에 장점이 있다면, 최소한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글을 써 내려가는 막막함을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화면 속 가득한 글자들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만을 던져줄 뿐. 빈 화면에 한 단어, 한 단어 골라가며 써야 하는 브런치와는 정반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런치 글쓰기가 돈과 그리 관련이 없다는 것도 지금 쓰는 인터뷰 글쓰기와는 다른 점이다. 


물론 브런치에도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졌고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아무리 출간을 한 작가라도 글쓰기나 책 쓰기로 생계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 그게 뭘까, 대체. 


강의 제안이나 셀프 브랜딩 때문에 브런치가 필요한 작가들도 있겠지만, 내가 궁금한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구독자수가 많지 않아도, 조회수가 폭발하지 않아도, 공모전 수상이나 출간 경력이 없어도, 오늘도 담담히 일상을 써 내려가는 이들. 나에게 그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이지 묻고 싶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설사 책이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유명해지거나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플랫폼에 자기만의 서사를 쓰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언젠가 브런치 작가님들과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진짜로요. 제 작업실이든, 작가님들이 글 쓰는 곳이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말고, 브런치 작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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