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눈물, 알함브라 궁전

따뜻한 남쪽나라 안달루시아 이야기 6

by 글쟁이 써니

1월 9일 여행 기록

네르하에서 5시 버스를 탔다. 차창으로 노을 지는 코르타 델 솔(태양의 해안)을 마음껏 보다가 피곤했는지 잠들었다. 8시 다 된 시간에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그라나다에서 숙소로 선택한 에어비앤비는 이틀에 7만원 정도로 가격은 괜찮았지만 간판도 없고 후미진 골목에서 막상 찾기가 힘들어서 고생했다. 하지만 예쁜 방과 거실을 보고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손님이 없어서 거실과 화장실도 혼자 쓸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 유명하다는 타파스 골목으로 갔지만 집마다 사람이 꽉꽉 차 있어 자리가 없었다. 겨우 하나 자리를 찾아서 앉아 맥주와 함께 빠에야를 먹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커피를 마신 후 숙소에 와서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그라나다에 온 목적인 알함브라궁에 갔다. 알함브라궁으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갔다. 헤네랄리페는 낙원의 정원, 과수원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참 어울리는 곳이었다. 사이플러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맑은 하늘, 오렌지 나무, 그 사이로 새소리와 속삭이는 듯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코르도바 알카사르에서 느꼈던, 마치 천국의 한 때와 같은 인상을 역시 받을 수 있었다.

하트 모양을 그리는 사랑스러운 분수. 속삭이는 듯한 맑은 소리를 낸다.

알함브라궁에 입장했을 때 두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나스르 궁 입장 시간이 세 시 반이다. 시간을 맞춰서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따라서 들어가니 수십 명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이미 나스르 궁을 점령하고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다. 나스르 궁에는 시간 맞춰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덜 붐비고 좋을 것 같다.
대사의 방을 거쳐 두 자매의 방으로 갔는데 천정과 벽면의 우아한 레이스 같기도 하고 별 같기도 한 무늬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특히 천정은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

천정에 가까이 창문을 내어 저 별 같은 장식 사이로 햇빛과 달빛이 비치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아라야네스 안뜰을 봤을 때 아름다움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것을 이해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한 장소에서 한 번은 그 여행을 온 이유가 되는 시공간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낙원이 이런 곳일 게다. 나스르 왕조의 이슬람 왕들은 이 곳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냈을 것이다. 두 자매의 방에 기거했던 사랑받던 후궁들도.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인도 타지마할궁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사자의 중정을 사이에 두고 두 자매의 방과 아벤세라헤스의 방이 마주하고 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에는 슬픈 이야기가 얽혀 있다. 북아프리카의 강력한 귀족 가문 아벤세라헤스의 한 젊은이가 보아브딜 왕의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헤그 사실을 알고 분노한 왕이 연회를 연다고 하여 가문의 남자 36명을 불러들여 모두 죽였다. 젊은이들의 피가 흘러나와 사자와 수로까지 물들였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방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하고 섬뜩한 광경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나친 아름다움은 정상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을 담보했을 수도 있다. 한 명의 남자에게 저당잡혀 갇혀살던 미인들의 삶은 어땠을까? 한숨과 눈물의 세월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자가 일족과 함께 무참히 도륙당하는 광경을 보아야 하는 후궁의 심경은?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이 저주스럽지 않았을까?

알카사바의 꼭대기에도 올라가 보고, 카를로스 5세 궁전에도 들어가 보니 어느덧 해질 무렵이 다 되어 간다.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꽤 가팔라서 우린 헉헉대며 겨우 도착했다. 다행히 해지기 직전 니콜라스 전망대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전망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도 잡았다. 옆에서 집시들이 흥겨운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른다. 집시의 고장, 그라나다에 온 것이 실감난다. 집시의 노래에는 스페인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열정, 그리고 흥겨움과 뭔지 모를 구슬픔.

해는 서서히 지고 우리의 오후를 황홀하게 해준 알함브라궁에 불이 켜진다. 노을이 지고 불이 켜지니 마치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이 세상의 잡다한 일들이 모두 아득히 멀리 느껴진다. 노을지는 하늘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알함브라궁, 그리고 나만 있는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알함브라 궁은 더욱 밝게 빛난다. 마치 까만 드레스에 장식된 커다란 보석처럼.

알함브라궁은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이곳은 그저 아름다움의 결정체같은 곳이다. 무어 사람들은 알함브라궁을 에메랄드 사이에 박힌 진주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라나다는 스페인 이슬람 왕조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의 기독교 군대는 마침내 그라나다를 함락시켰고 레콩키스타(스페인 내 이슬람 세력 축출, 기독교도의 고토 회복 운동)를 완료했다. 이는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패배와 몰락을 의미했다.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패색이 짙어지자 눈물을 흘리며 북아프리카로 도주했다 한다. 그리고 그 1492년 이후,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열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리고 전 세계에는 기독교 왕국의 시대가 펼쳐진다. 기독교를 앞세운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시대가.
알함브라 궁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으로 인한 눈물이 스며있는 곳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일생을 저당잡힌 미인들의 눈물과 한 때 왕조와 궁의 주인이었으나 쫓겨가는 처지로 전락한 왕의 눈물. 이사벨 여왕은 알함브라궁을 매우 탐냈고 보아브딜 왕은 궁을 훼손하지 않는 조건으로 궁전을 내놓고 퇴각했다 한다. 나라를 빼앗기는 것보다 궁을 빼앗기는 것이 더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이사벨 여왕에게 그라나다궁의 열쇠를 넘기는 보아브딜 왕의 모습이 담겨있다.

미의 극치 앞에서 아름다움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눈을 감으면 천국의 한 부분같던 정원과 분수, 연못과 거기 비친 궁의 그림자가 선연히 떠오른다. 이 땅에서 천국을 재현하고 누리길 원했던 인간들의 소망과 욕망이 담긴 곳.

언젠가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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