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 고독이라는 창작의 재료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켭니다. 검색창에 단어를 넣거나, 이제는 AI에게 묻습니다. 답은 0.1초 만에 나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비서와 24시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왜 나만의 생각은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 들까요?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질문의 답을 외부에서 찾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검색창이 닫혀야 비로소 생각이 열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삽니다.
#1 AI는 고독을 모릅니다
AI는 태생적으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수억 개의 데이터와 노드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야만 작동합니다. 챗GPT가 내놓는 답변은 수많은 타인의 데이터가 모인 ’집단지성의 합(Sum)’입니다. 즉, AI에게는 ‘혼자’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창작은 근본적으로 ‘분리’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의 생각, 유행하는 트렌드, 쏟아지는 소음에서 떨어져 나와 철저히 홀로 남겨질 때, 비로소 ‘나만의 것’이 고개를 듭니다. 세상 모든 데이터가 연결된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상태, 그것은 바로 ‘완벽한 단절’입니다. 고독은 AI에게는 에러(Error)지만,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기능(Function)입니다.
#2 입력(Input)을 멈춰야 소화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를 먹어 치우는 ‘과식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뉴스, 영상, SNS 피드가 쉴 새 없이 뇌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다고 다 내 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먹은 것을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아이디어가 책상 앞이 아니라, 멍하니 산책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순간에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왜 그럴까요? 뇌가 외부 입력을 차단하고, 내면의 정보를 정리하고 숙성시키는 ‘소화 모드’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이 아무런 신호도 내 뇌에 가져다 주지 않을 때(혹은 그 영향이 작을 때), 우리의 뇌는 잠시 ’마법의 순간’으로 우릴 초대합니다.
창작의 질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넣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보를 차단하고 곱씹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보 과식은 사유의 소화불량을 낳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알지만, 점점 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더 많은 ‘심심함’과 ‘지루함’입니다. 그 텅 빈 여백에서 비로소 창조성이 자라납니다.
#3 고독, 안목을 기르는 작업실
저는 이 지점에서 다시 ’안목(眼目)’을 생각합니다. 타인의 취향과 알고리즘 추천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진정한 안목은 “좋아요” 개수나 “조회수”에서 눈을 돌려, 오직 내 눈과 내 마음이 반응하는 것에 집중할 때 길러집니다. 남들이 다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건드리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는 힘. 그 힘은 시끌벅적한 광장이 아니라, 고요한 독방에서 길러집니다. 곡 작업을 하다가 보면, 늘 마주치게 되는 순간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어할 것 같은‘ 이야기 사이의 지점 어딘가. 바로 그 순간에 ‘고독‘으로 잠시 맘을 쉬러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외로움(Loneliness)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생산적인 ’홀로 있음(Solitude)’입니다.
#4 로그아웃은 신뢰의 행위입니다
AI 시대의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용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접속하지 않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디지털 금욕이 아닙니다. 로그아웃의 본질은 **자신의 내면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외부의 즉답이 아니라, 내면의 느린 응답을 기다릴 줄 아는 것. 검색창을 닫고, AI에게 묻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것. 그 불편하고 더딘 과정을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내가 모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내 안에서 답을 찾을 능력이 있는가?” 로그아웃은 그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내 생각의 속도를, 내 감각의 예민함을, 내 직관의 정확성을 믿는 행위입니다.
AI는 당신이 질문을 던지기 전, 산책하며 그 질문을 다듬던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샤워하며 문장을 굴리던 그 순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생각이 숙성되던 그 침묵을 흉내낼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이야말로 당신만의 것이고, AI 시대 창작자의 진짜 경쟁력입니다.
24시간 깨어있는 AI와 속도로 경쟁하려 하지 마십시오. 대신 기꺼이 로그아웃하십시오. 스마트폰을 끄고, 산책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십시오. 그 침묵과 심심함 속에서, 검색되지 않는 당신만의 문장이 태어날 것입니다.
잠시 연결을 끊으세요. 당신의 영감과, 그리고 당신 자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AI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창작자만의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