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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Sep 06. 2023

천변을 걷는 사람들

_햇빛 반짝이는 오늘의 천변

요즘은 기상할 때 마음이 바쁘다.

얼른 일어나 산책가자, 하는 생각에.


어제도 오늘도 비슷한 시각 오전 6시반 즈음에 집을 나섰다.

매일 5킬로미터이상을 찍는다.

걸음수로 하면 대략 6천보 전후가 되는 듯하다.

좀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될까싶어 어제는 매우 빨리 걸었다. 그랬더니 절반정도 코스를 돌았을때는 발목이 아팠다. 그래도 속도를 늦추기 싫어서 참아가며 속도를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엔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산책 외에는 하루종일 하는 일도 없는데...


비가 오지 않고 한낮의 폭염뒤 새벽녘에는 무덥지 않아서 천변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제 앞에 놓인 길을 걷는다.

오늘 하루,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계획하고 시간표를 짜거나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예상하거나

지나간 날들, 부질없는 과거의 어느 시점을 문득 떠올리며

아쉬워하거나 기쁜 추억을 되새기거나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가끔 어른들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길을 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그때마다 왜 저러나 싶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엔 가끔 내가 그런다...

문득 길을 가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과거의 어떤 인상깊었던 혹은 후회스러운 상황이 바로 지금인 듯 펼쳐지면,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했던 말을, 혹은 그 당시 하지 못했던 말을 불현듯 지금 중얼거릴 때가 있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가지만, 나에게 흔적을 남기고 간 기억들은 그렇게 느닷없는 추억처럼 떠오른다.


가끔은 아주 사소하고 설명하기조차 불가능하게 터무니 없이 하찮은 찰나의 기억이 스냅사진처럼 머리속에서 폭발하듯 펼쳐진다. 그보다 더 자주는,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발작처럼 떠오른다.

무성영화의 낡은 필름같은 그 장면들은 빠르게 감기 혹은 멈추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어머니에게 거침없이 대들고 심술부렸던, 철딱서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시절의 나의 모습들도 객관화된 타자처럼 머릿속에서 일렁이는 것이다.

그럴땐 정말 나 자신을 참을 수가 없다...저런 쓰레기가 나였다니...지금도 거기서 얼마나 달라졌을까마는....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런 걸까...깊은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온다.

오래된 필름은 마구 뒤엉켜 수세미처럼 풀어헤쳐진다...


어느덧 산책은, 천변을 걷는 시간은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걷는 시간이다.


걷다보면 가끔 한숨이 나온다.

그것은 꼭 힘들어서 나오는 거친 숨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도 강아지들도 선선한 아침 천변을 상쾌한 걸음으로 걷는다:어제의 천변
어제의 하늘, 어제의 나팔꽃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의 퇴원소식이 도착했다.


월요일 면회를 갔을 때 어머니는 다시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노인 당장 내일은 어떻게 될지모른다는 말이 맞다.


오늘의 하늘, 구름한점없이 쨍쨍하다/오늘의 산책기록


주말동안 염증수치가 치솟으며 피똥을 싸가며,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져가며, 지켜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했던 증상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오늘 아침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에서는 내일 퇴원을 이야기한다.

염증수치를 확인하니 2점대라고 한다. 항생제도 끊었다고 하니 호전추세가 맞는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면 퇴원은 하루더 지켜보고 금요일에 퇴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요양원에서는 이미 어머니를 맞을 준비가 끝났다.

언제든 그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가족들이 우려하는 점들을 최대한 반영하여 돌봐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우리는 그곳을 믿을 수밖에 없다.


오늘의 희소식이 내일 또다시 위급상황이라는 알람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저 티없이 맑은 하늘처럼,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화창하게 이어졌으면 한다.


오늘의 면회가 퇴원전 마지막 면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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