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완성했던 <당신의 십자가>:나만의 십자가/ 오른쪽, 낮은 장식장 위쪽 빛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완성하고 보니 서명이 빠졌다. 서명을 해서 액자에 다시 넣었다.(오른쪽 사진)
그로부터 십자가시리즈를 두 작품 더 완성했다.
첫 번째 작업은 조각들을 최소한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린 상태이다. 그대로도 만족스럽게 여겼으나, 가만히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미흡한 점이 발견되었다. 조각들이 너무 작아서 미싱으로 박아 연결하는게 쉽지 않을 것같아 단순하게 고정시키는 것만 했는데, 아무래도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이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는 저 작고 연약한 조각들이지만 조심스레 박음질을 해보았다.
의외로 잘되었고, 박음질로 연결하고 보니 좀더 정돈되고 마무리가 된 느낌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십자가 조각이미지 작업과정을 기록해본다.
작업에 심취하다보면 짬짬이 과정을 기록하는 걸 잊는다.
어쨌거나 만들어둔 패턴에 따라 원단을 자르고 순서대로 배열한다.
처음에는 왼쪽처럼 뒤집은 상태(뒷면)로 배열을 해봤고, 두 번째부터는 오른쪽과같이 완성상태로 조각을 배열해보았다. 뒤집은 상태로 완성형태를 예상하며 원단을 배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른쪽처럼 완성될 상태로 조각을 배열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조각들이 자꾸 움직이고 섣불리 풀칠을 해서 고정을 시켰다가는 위치를 조정해야할때 곤란할 것이므로 주의해야한다.
오른쪽 사진은 한두 장씩 연결하여 박음질을 한 상태이다. 자세히 보면 미싱 바늘땀이 보인다.
가운데사진:세 번째 십자가/ 오른쪽: 두 번째 십자가 작품
한두 조각씩 연결해 자리를 잡고, 풀로 고정시키고 박음질을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다음으로, 실제 완성될 사이즈로 테두리를 자르고 실밥을 마감하면 오른쪽 사진처럼 일차 완성된다.
이제부터는 완성 후 다림질할 때 풀을 먹이지 않기로 한다.
풀을 먹여놓으면 당장은 좋지만, 혹시 나중에 변색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풀대신 물만 뿌려서 다려도 충분히 주름이 펴지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부터 그렇게 그냥 잘 다림질 한 상태로, 서명을 더해 액자에 넣기로 한다.
어차피 앞뒤로 유리판이 잡아주기에 구겨지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
왼쪽이 두 번째이고, 오른쪽이 세 번째 십자가 작품이다.
빛의 투과에 따라 조각 이미지들이 부각되고 컬러조각들의 농담이 달라진다.
당분간 다양한 색상들을 조합하여 당신의 십자가 시리즈를 이어가 볼 생각이다.
일단,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십자가도 선물로 보낼 마음을 먹었다.
나는 가끔 내가 정성껏 만든 어떤 것들을 그동안 마음의 빚을 안고 있던 이들에게 사소한 보답의 의미로 전하곤 한다.
나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십자가의 선입견은 종교적인 것이지만, 이미 십자가라는 사물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보편성을 띄게 된것같다.
예수님이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졌다는 종교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이겨내고 감내해야하는 삶의 무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빗대어 종종 십자가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모두 같은 무게의 같은 종류의 짐-십자가-을 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저사람은 나보다 훨씬 가벼운 짐을 지고 있으리라는 시샘을 할 것도 아니다.
한두살 나이가 들어가며 보니, 저마다의 어깨 위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담긴 무게(십자가)가 올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고
막상 벗어난다 해도 실은 기쁘지 않을 것이었고
오롯이 당신의 마지막 시간까지 내가 곁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때로 무거운 의무감으로 나를 내리눌렀으나, 끝내 어머니의 부재를 마주한 시간에야 비로소 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를 잃었음을 깨닫고 좌절했다.
어머니는 나의 십자가였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당신을 그리워한다.
뜬금없이 조각보작업을 하고 십자가 조각 이미지 작품을 만들기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는 한복기술자였다.
스스로 터득한 기술은 가족의 생계를 가능하게 한 훌륭한 수단이었을 뿐아니라 그 기술의 섬세함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틀림없이 나는 그런 어머니의 손기술을 물려받았다.
나는, 어린시절, 오로지 생계를 위하여,
단지 살기 위하여, 밤새워 한복을 지어내는 어머니를 보는 일이 속상했다.
세상 아름답고 고운 한복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그 멋진 일이, 어머니 자신의 삶을 갉아먹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은 절망적인 사실이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같은 그 일 또한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쩌면 나에게 유전되었을지도 모를 그 훌륭한 재주를 거부하고 부정하고 멀리멀리 도망쳤다.
그러나....이제 알겠다.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그 멋진 어머니의 기술을 내가 전수받고 갈고닦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이제와서 종종 생각해본다.
아무리 글을 쓰고 아무리 다른 일을 하겠다고 밖으로 싸돌아도 결국, 이렇게 손으로 미싱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자리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