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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어느날, 요양원 일기_17

_정신과 육체의 괴리

by somehow

1월에 다시 출근했을 때, 408호 1인실에는 먹다버린 닭뼈처럼 앙상하고 퀭한 어르신 한분이 누워계셨다.

여자분인 봉주(가명)어르신이다.


목소리가 흔들리기는 하지만 또박또박 말씀하시고 자기의사표현력이 좋으며 무척 예의가 바른 분이셨다. 가끔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밤인지 낮인지 구분을 못하고 헛갈리는 일이 있으나 온종일 침상에 누워 지내다보면 그럴 수 있을 듯 했다.

기본적으로 치매와 그외 여러 신체적 질환이 있겠지만, 그분이 침상에만 누워지내야 하는 이유는 혼자 걸을 수 없기 때문인 듯했다. 당연히 기저귀를 착용중이다.

처음 기저귀를 교체하러 들어갔을 때, 봉주어르신은 특유의 떨리는 음성으로 마치 큰 잘못을 지은 사람처럼 말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해서 어떡해요...이렇게 멀쩡한데 자리에 누워서 도움을 받다니요....


근육이라곤 전혀 없어보이는 피골이 상접한 육신을 웅크리며 커다란 두눈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줄을 몰라하신다.


어머, 아니에요 어르신. 당연히 해드려야죠. 걱정말고 똑바로 누워보세요. 기저귀 확인해드릴 게요.


그러나 어르신은 침상에 바로 누운상태로도 온몸을 웅크린채 수줍은 소녀처럼 옷자락을 움켜잡고, 금방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나는 더욱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어가며 조심스레 기저귀를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 속기저귀가 젖어있는데, 먼저 소독된 물티슈로 몸을 여러번 닦아내고 속기저귀만 새것으로 교체한 뒤 다시 겉기저귀의 양옆 벨크로테이프(일명 찍찍이벨트)를 잘 채워 마무리한다. 물론 소변이 넘치거나 새는 경우 겉기저귀까지 망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겉기저귀도 새것으로 교체하기도 한다. 소변량이 많을때는 밖으로 더욱 넘쳐 옷과 침상커버까지 젖어버릴 때도 있다. 그러면 몽땅 새것으로 교체해야한다. 그러나 그런 대참사는 자주 일어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구 정말 감사합니다...제가 해야 되는데, 자꾸 도움을 받아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봉주어르신은 작업이 끝나고 내가 방을 나설 때까지 이렇게 몇번이나 고맙고 미안하며 본인이 해야할 일을 시켜서 참 난처하다는 식의 말을 반복한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나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듣게되는 저 소리가 점점 부담스럽게느껴지기도 한다.


어르신은 이처럼, 현재 자신의 신체적 상태를 아직까지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뿐더러, 무척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현재는 아예 화장실에 다니지는 못하지만, 입소 초기였던 몇달 전까지만 해도 탁 치면 우당탕소리를 내며 부스러질 듯 앙상한 두 다리로, 온힘을 다해 침상아래로 내려 곁에 있는 휠체어에 올라타고 방안 한쪽에 있는 화장실까지 혼자 밀고 가서 변기에 대변을 해결하곤 했다.

물론 그러한 거사는 아무도 몰래 혼자서 은밀하게 치러진다.


어르신 자체가 남에게 도움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데다, 아직까지도 본인의 배변문제는 스스로 처리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 입소 초기에는 그렇게 남몰래 화장실에 가서 배변을 하는 데서 나아가, 샤워기를 틀어 샤워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전, 당신의 집에서 아직 건강하게 생활할 때의 오랜 습관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요양원에 들어왔다고 해서, 완전한 와상환자가 아닌바에야 이처럼 예전의 습관, 생활방식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문제는 봉주어르신의 상태가 비교적 정상적인 인지력에 비해, 신체활력은 두발로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뒤늦게 봉주어르신의 나홀로 목욕, 나홀로 화장실오가기 신공(묘기)을 눈치챈 근무자들이 화들짝 놀란 것은 당연하다. 처음 근무자들이 대변을 기저귀에 보면 치워준다고 했을 때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식으로 펄쩍 뛴 것도 자연스럽다.


어르신, 절대로 혼자서 화장실다니지 마세요. 저희한테 말씀하시면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화장실까지도 같이 가드릴 테니까요. 말씀을 하셔요. 그런데 목욕은 절대 안됩니다!! 혼자서 서있기도 위태로운데 물뿌려가며 샤워하시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나요!


그후 절대 목욕금지를 외치며 화장실의 수도를 잠가버렸다고 한다. 도저히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배변을 위한 화장실행은 집요하게 이어졌는데, 그후 손을 닦기 위해 어르신은 놀라운 생각을 해냈다. 수도를 잠가버려서 샤워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나 변기 뒤에 있는 물통, 거기에는 항상 물이 차있다는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그 물통 위의 무거운 도기뚜껑을 열어젖히고 그곳에 찰랑거리는 물에 손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출근을 시작한 뒤, 어느날 어르신의 화장실을 열어보았던 적이 있다. 그와같은 사건의 일련의 내막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변기뚜껑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그래서 그냥 뚜껑을 닫아놓고 나왔다. 그후에 봉주어르신의 그러한 열정에 대해 듣게된 것이다. 그때 근무자들 모두는 봉주어르신의 그 열정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변기 물통뚜껑은 그냥 열어두라고요?


나의 의아함에 누군가 덧붙였다.


네. 그분 가족들도 그분이 그러시는 걸 아시는데, 샤워하는건 위험하니까 그렇게라도 손은 닦으시라고 그냥 두라고 하셨대요!


나이들어서 아무리 몸이 말을 안들어도 정신은 너무 말짱하다 보니까,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예전의 생활습관을 고수하려고 애쓰시는 것같아요...


그러게요.....정말 깔끔하신 분같아요. 그러니 매일 샤워하던 습관을 못버리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저리시는 거죠.


나는 생각했다. 늙고 병들어도 치매에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봉주어르신의 모습을 보면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육신의 변화에 걸맞게 정신적인 능력도 함께 쇠퇴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한 걸음도 혼자 걸을 수 없음에도 인지상태는 너무나 온전하여 자신의 현재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응하지도 못할 뿐더러, 생각만으로는 얼마든지 예전의 생활방식을 이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며 실제 감행한다는 것이다.


육체적 손실이 차라리 정신력에 지배되어 없던 힘도 생기고 근육도 불어나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나는 이렇게 자리에 누워 남에게 치부를 드러내놓고 도움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쏘리, 땡큐 쏘 머치!!!를 수백번 뇌까린들 무엇하리요.

육신의 활력이 그 정도까지 저하되었다면 인지상태역시 그와 비슷한 정도로 퇴화되는게 당사자로서도 다행이 아닐까 말이다.


나의 어머니도 생각난다. 어머니도 처음 요양원에 들어가, 허리의 통증때문에 꼼짝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화장실에 다니기를 원했다. 그러나 요양원측에서는 낙상의 위험을 경고하며 기저귀에 해결하도록 요구했다. 당연히 인지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던 나의 어머니도 펄쩍 뛰며 거부했었다.


인간은 어쩌면, 갓 태어나 기저귀를 쓰던 1~2년 이후로 줄곧 화장실을 사용하던 문화적 인간으로서, 80~90년만에 또다시 기저귀를 차고 누워야한다는 사실은 내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늙어가는 존재로서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가장 충격적으로 훼손되는 사건이 아닐까.


마른 나뭇가지같은, 불이라도 붙이면 한순간에 화르륵 타올라 재가 되어버릴듯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봉우어르신은 어느날도,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에서 휠체어로 옮겨앉다가 미끄러져 끝내 낙상하고 말았다. 그순간 오른손이 바닥을 짚었으나, 속이 텅빈 마른나뭇가지같은 뼈는 30킬로그램도 안될 것 같은 육신의 무게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갈수록 태산...


그럼 그후로 어르신은 화장실가기를 멈추었을까?

물론 화장실은 폐쇄되었으나, 어르신은 그후로도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로 화장실문을 붙잡고 외쳤다.


화장실 문 좀 열어주세요!!


결국, 요양원측에서 이동변기를 마련해 방안에 놓아드렸다.

의자처럼 생긴 그것은 의자시트를 제끼면 간이 변기가 드러나는 것으로, 어르신은 화장실의 변기대신 그위에 앉아 대변을 보기로 했다. 이제 한달넘게 이어지고 있다.

간혹, 무른 변을 볼 때는 몸으로 흘러 여기저기 묻어있을 때도 있다. 그와 같은 변을 보고 뒷처리를 하는 경우, 우리는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하나 쉽지 않다.


어르신, 도와드릴까요.


언제 변을 볼지 알 수 없으나 마침 변을 보는 장면을 발견하면 다가가 도와주려하는 근무자들을 어르신은 펄펄 뛰며 내쫓는다.


아, 그냥 나가시라고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제발 좀 나가주세요!!


나역시 몇번이나 배변 뒷처리 상황에서 다가갔으나, 떨리는 음성으로 절박한듯 외치는 봉주어르신의 이런 소리를 들으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그러면 다 끝나면 말씀하세요. 변기 비워드릴게요...


그렇게 여전히 이동변기까지 이동하여 변을 본 뒤에, 봉주어르신은 그것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휴지를 수없이 풀어서 그 위에 덮어놓는다. 이동변기는 화장실로 가져가서 버리고 씻어서 원위치시켜두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자신의 변을 다른 사람이 보게 하는 일, 그것을 치우게 하는 일에 어르신은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함을 짐작할 수 있다.

기저귀를 교체하러 가는 시간이면 지금도 여전히 어르신은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해야되는데 늘 이렇게 폐만 끼쳐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며 당신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을, 자신이 매우 교양있고 배운 사람이라는 뜻을, 그럼에도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워하고 있다는 뜻을, 내가 방을 나서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수없이 되풀이한다.



대부분의 다른 와상 어르신들은 기저귀에 변을 보신다. 적당한 굳기의 변은 치워드리기가 수월한 편이다. 다만 늘 누워만 있다보니 매일 변을 못보는 어르신들에게 4~5일에 한번씩 좌약을 넣거나 마그밀이라는 배변유도제를 먹게 하는데, 그걸 사용한 후에 보는 변은 대부분 설사에 가까운 무른변이다....

그것을 치우는 일은 심호흡이 필요하다.

장에 오래 머무른 변일수록 냄새가 심하고, 무른변은 기저귀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새어나가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어느때는 옷은 물론 그아래 깔아놓은 방수용 패드까지 물들이는 것은 물론, 드물게는 심지어 침상에 씌워진 시트까지 적실 때도 있다.

그 일을 직면하면, 일단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맨처음 그런 경우에 직면했을 때는 당황스러워서 허둥대기도 했으나 경험이 반복될수록 허둥대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냥, 천천히 하나하나 처리하자고 마음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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