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오늘의 딜레마
그중에서도 매주 두 번씩 이루어지는 미술 프로그램시간, 그 시간에는 자신의 손을 움직여 도안의 빈곳에 알록달록한 색을 채워넣거나 문구용 가위로 완성된 그림을 오리고 붙이는 동작들이 필요하다. 주로 손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그 활동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참여한다.
정도차이는 있을지라도 손을 쓸 수 있는 경우이다.
심지어는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어떤 섬세한 동작을 전혀 할 수 없게 팔이 굳어진 분들도 참여하기는 한다. 그것은, 돌봄원칙에 따른 형평성의 원칙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자리에 누운채, 숨쉬고 떠먹여주는 밥을 삼키고 배설을 하는 일 외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온종일 침상에만 눕혀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코에 바람이라도 쏘인다는 심정으로 온몸이 거의 굳어진 분들도 체조나 미술 노래교실 프로그램에 휠체어를 태워 참여시킨다.
시간내내 눈만 껌벅이며 망연자실하게 구경만 할지라도.
물론, 걷기가 조금 불편할 뿐 상반신의 사용에 거의 문제가 없는 분들은 프로그램시간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가 독려되는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분들은 미술시간에 도안이 그려진 종이와 색연필이 주어지면 열심히 참여하신다. 그러나, 열성적인 참여도와 그 작품의 완성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꽃병 도안이 그려진 종이를 앞에 두고도 어떤 색으로 저 흰 공간을 채워야할 지 막막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흘깃거리는 분들은 그냥 정상이라고 할 만하다. 앞에서 그날의 미술강사가 열심히 어르신들의 주의를 끌며 그날의 활동 포인트를 설명드리지만 그 말을 한번에 알아듣고 알아서 척척 해내는 분은 거의 없다.
그럴때 우리의 역할은 옆에서 도움을 드리는 것이다.
어르신, 좋아하는 색으로 칠하시면 됩니다....자, 이 색으로 해볼까요?
길다란 테이블에 마주앉은 어르신들 사이로 그날의 근무자들이 몇몇이 끼어 서거나 돌아다니며 무척 난감해하는 어르신들에게 색연필을 쥐어드리며, 자신없게 머뭇거리는 어르신들을 독려한다. 색연필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색을 칠하는게 좋을지 시범을 보여드린다. 그나마 손 움직임이 수월한 분들은 그것을 보고 천천히, 열심히 따라하신다.
문제는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그 자리에 참여하는게 목표이자 의의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아무리 의욕과 열정이 넘쳐도 앞에 놓인 종이 위에 당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보려고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보려 애쓰지만, 색연필은 엉성한 손가락관절 사이에 붙어있지 못하고 굴러나가거리거나 혹은 가까스로 부여잡고 흰 여백에 대고 아무리 문질러도 신기하리만큼 본연의 색이 칠해지지 않는다. 그만큼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때, 우리는 계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이 더욱 열심히 스스로 해내시도록 독려만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도안은 어떻게든 점점 알록달록하게 색을 드러내는데,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자기 몫의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또다른 좌절감을 안기는 것은 아닐까.
하여, 우리는 분주하게 주위를 살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어르신을 이끌어 색연필을 쥐어주며 부드럽게 달래기 시작한다. 아무리 손을 놓고 있어도 무작정 요양보호사가 일사천리로 끝내버려서는 안된다. 도움을 원하는지 조심스레 묻고 어르신이 한번이라도 더 손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르신,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한 손은 오른쪽의 어르신을, 다른 한 손은 왼편에 앉으신 어르신의 작품완성도를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서투르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보이면 새로이 즉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본의아니게도 어느 순간 그날의 미술작품은 어르신의 작품이 아닌 요양보호사의 작품이 되고 만다.
위 사진속 하얀 양이 있는 봄 들판-작품이 대표적이다.
재료를 죄다 찢어서 적당히 조물거리다 붙이면 될것이니, 언뜻 어려울게 뭔가 싶지만, 잘게 찢은 휴지조각을 뭉쳐서 양털을 표현하는 것도 하늘의 조각구름을 표현하기 위해 하늘색 종이조각을 구겨 붙이는 것도 어르신들은 손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어디에 붙여야 할지 시범을 보이지 않으면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시범을 보이느라 하나씩 하다보면 어느새 그작품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요양보호사들이 도우미가 되어 작품의 대부분을 시작하고 채색을 돕고오리고 붙이는 활동을 끝내게 된다.
얼마전 새로 바뀐 미술강사는 사기가 충만하여 어르신들의 주목을 끌기위해 찢어질 듯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의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품(위 사진)난이도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열손가락을 완벽하게 잘 사용하는 어르신도 결코 혼자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신참강사가 장황하게 이러쿵저러쿵 활동의 순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것을 귀담아듣고 이해하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 곁에서 함께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세부동작들이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침내 건너편에서 듣고 있던 2층근무자가 이렇게 한마디 외쳤다.
어...너무 어려워!
그렇다. 어르신들이 해내기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 요구되는 수업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어르신들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매는 있을지언정 손발의 활동이 원활하고 매사 적극적인 한금어르신조차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소리를 들은 미술강사는 애써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죄송해요....어르신들은 손을 많이 쓰시는게 좋아서 되도록 많이 움직이실 수 있는 작품으로 골랐는데, 무리였나봐요.헤헤....다음번에 조금더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준비할게요!
인지활동에 속하는 미술프로그램은 색을 선택하고 도안을 이해하고 채색을 하며, 혹은 가위로 그림의 모양대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여러 동작을 통해 소근육을 자극할뿐 아니라 인지력을 향상시키는 것까지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 학습목표가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시간, 그 활동을 독립적으로 스스로 완벽하게 해내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
프로그램강사들로서도, 어르신들의 신체적 인지적 상태는 비슷하면서도 또 모두 다르기에 그 모든 수준에 적절한 교안을 만들고 매번 성공적으로 끝내기는 어려운 도전일지도 모른다.
수년전,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현장실습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당시 다니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주말마다 실습을 했다. 그곳에서도 매일 오전 인지활동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가장 흔한 것이 이와같은 미술수업이다.
오리고 붙이고... 그중에서도 색칠하기가 가장 많은 수업이었다.
강아지나, 주전자, 꽃그림 등등 단순하기 그지없는 도안의 여백에 그저 색연필로 적당한 색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동작인데도 어르신들은 무척 어려워했다.
어디다 어떤 색을 칠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는 흰 종이에 그려진 도안의 의미조차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나는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쉬운걸 왜 못하시지? 이게 뭐가 어렵다고 하실까?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에도 70대이상 80-90대에 이르는 어르신들은 학교에 다닌 평균 경력도 길지 않을 뿐더러 그림그리기나 만들기 등의 활동을 어린시절에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 80~90이 넘어서야 주간보호센터에서 생전 처음으로 그런 활동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던가, 평생 스스로 접해본 적이 없는 동작은 아무리 쉬운 작업이라도 어렵게 느껴지고 두렵기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습이 거듭됨에 따라 나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르신 한사람당 주어지는 그림도안이나 만들기작품에서 실제로 어르신 본인이 직접 완성하는 정도는 대략 10~20퍼센트정도이다. 나머지는 그날의 근무자인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완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알록달록하게 그려지고 그럴듯한 모양으로 오려붙여진 작품에 당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직접 쓰게 하고, 오늘 어르신이 하신 작품이네요! 하면 어르신들은 말할 수 없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오늘의 작품을
'누가 완성했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어르신들이 길고 지루한 하루 중에서 한 시간 남짓 시간을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어수선하고도 복작이며 사람사는 기분을 느끼며,
적어도 그 시간 녹슨 심장이 살짝 더 기쁘게 뛰고
푸석한 뇌가 조금 더 활성화되고
안 쓰던, 못 쓰던 손가락 근육들조차 한 번씩이라도 더
움직여보려 애쓰는 동안
나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안도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