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팬티실종 사건의 전말
우리 요양원에는 신체활력이 매우 정상적인 분들도 몇분 계시다.
스스로 옷을 입고벗기가 가능하고 식사는 물론, 양치질도 세수도 배변후 뒤처리도 완벽하다.
그러므로 우리 요양보호사들과 일상적인 대화도 가능하고 자연스러우며, 어르신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거리 혹은 요구사항이 있다면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신다. 다만 인지력에서는 문제가 있어서, 돌아서면 깜빡깜빡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경우는 있다.
뭐, 그런 정도쯤이야....누구나 깜빡하는 일은 있을 수 있기에 더없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이다.
올해 80세의 규민(가명)어르신이 그 예로 매우 적절하다.
어르신은 붓글씨 취미도 있어서 자신의 방에서 먹물을 이용해 붓글씨를 쓰기도 하고 주로 미술프로그램시간에 이루어지는 창작(?)활동에 흥미와 열정이 남다르시다.
또한 요양원에 있는 실내자전거를 매일 이용하여 스스로 건강관리도 하신다.
얼마전 알게된 사실인데, 규민어르신은 팬티를 입지 않고 생활하셨다.
일명, 노팬티!
왜 그러신 거죠?
몰라요..입소하실 때부턴가 몰라도 팬티를 안 입고 계시고, 소지품 의류에도 팬티는 없더라고요...
목욕전에 갈아입을 옷을 챙기러 가보면 옷장에 아예 팬티류가 없어요..
모든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 당번인 2인1조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으로 몸을 씻게 된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규민어르신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상이라도 목욕까지 혼자 하시게 두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낙상의 우려때문이다. 혼자 물과 비누를 사용하다가 자칫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나, 야한 남자야! ㅎㅎ
우리는 규민어르신의 노팬티에 대해 궁금해할 수 밖에 없었다.
팬티를 입지 않고 바지만 입고 계시니 아무래도 좀 허전하지 않을까싶어 걱정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규민어르신이 근무자에게 돈 3만원을 내밀며 팬티를 좀 사다달라고 부탁했단다.
말은 안해도 어르신 본인도 아랫도리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일까. 부탁을 받은 선생님이 4~5개의 트렁크형 팬티를 사왔다.
아유 감사합니다. 이제부턴 입어야죠, 허허...
어르신은 그것을 받아들고 당신의 생활실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근무자가 보니 그것을 세면대에서 손으로 세탁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어르신, 뭐하세요? 제가 세탁해서 잘 건조시켜서 갖다드릴게요!
그 광경을 발견한 근무자가 이렇게 말하고 회수해서 간단히 세탁하여 건조대에 널어놓았다.
어느날, 출근했을 때 그 광경을 보았고, 전후 사정을 나도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오후에 빨래가 다 말랐다.
그날 함께 근무하던 김선생님이 이름도 선명하게 이규민(가명)이라고 써서, 깨끗한 팬티들을 잘 개어 들고 서랍에 넣어드렸다.
다음날이 되었다...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규민어르신이 머뭇거리며 무척 궁금하다는 듯, 우리 곁을 맴돌며 물으셨다.
네? 어르신 옷장에 없어요? 어제 다 말라서 어르신 갖다드린다고 김선생님이 가져가셨는데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며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그리고 직접 달려가 어르신의 옷장 여기저기를 아무리 뒤져보았으나, 어디에도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어디 갔을까요?
아마도 어르신이 어디 꽁꽁 숨겨놓은 것 아닐까요?
잘 넣어놓느라고 깊이 넣어놓고 잊어버린거라면....
우리는 어르신이 기본적으로 치매가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사정을 모르는 우리끼리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답을 알 수 없기에 직접 어르신께 세탁한 팬티를 가져다드린 김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팬티실종 사전의 전말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그날, 김선생님이 어르신 방으로 세탁한 속옷을 가져 갔을 때,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게 뭐에요??
어르신 팬티에요! 어제 빨아널었던 것, 다 말라서 가져왔어요. 낼모레 목욕 후에 입으시면 되겠네요.
김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어르신이 뜻밖에 언짢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면서 직접 모조리 꺼내어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처넣더라는 것이다.
아니, 어르신 왜 그러세요? 어르신 거 맞아요!!
갑작스러운 어르신의 태도에 어리둥절한 김선생님은 황당한 심정으로 서둘러 쓰레기통에 버려진 새팬티들을 꺼내어 세탁실 바구니에 갖다 넣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쓰레기통에 한번 던져졌으니 세탁을 새로 해야만 했기에....
당일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과 나는(나는 그러한 사정은 미처 알지 못한 채 그날 퇴근하였기에) 뜻밖의 팬티실종사전의 전말을 전해듣고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머나 세상에!!
우리는 허탈한 심정을 추스른 뒤 어르신께 당신이 한 행동(세탁해 갖다준 팬티를 쓰레기통에 버린)을 이야기해드렸다. 그때의 반응도 기가 막혔다.
그렇기에, 신체적활력은 지극히 정상적임에도 자신의 집에서 살지 못하고 시설에 들어오시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그동안 어르신 본인은 물론 돌봄근로자인 우리들도 모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참....기가 막히네요....
분명히 본인이 돈까지 주면서 사다달라고 했던 건데, 그걸 까맣게 잊어버린거잖아요...
그래놓고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펄쩍 뛰고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그러니까...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치매는 치매라....그동안 너무 정상적이고 대화도 잘 통하고 해서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죠....
ㅎㅎㅎ정말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잊지 말자, 치매환자!
사실, 입소자 어르신들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치매환자이다.
와상어르신들은 특성상 대화와의사소통이 활발하지 않기에 치매인지 아닌지가 종종 헛갈리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전신상태가 특히 심해지면 망상이 심해지는 증상을 보임으로써 치매가 명백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 규민어르신처럼 정상적인 활력상태를 보이는 몇몇분들은 일상적인 대화가 통하기도 하기에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언뜻 정상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좀더 길게 대화가 이어지면 치매환자임을 깨닫게 된다.
한금어르신은 알코올성치매로 입소하셨다는데 어찌나 심한지, 한번 한 말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에 같은 말을 수십 번씩 하시기도 하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며 하루종일 근무자들을 쫒아다니며 힘들게한다.
전화걸어드리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보호자가 전화통화를 원치 않는다는데 있다.
실수로 전화를 걸어주면 즉각 사무실로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왜 자꾸 전화를 걸어주느냐고.
바로 어제의 일이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미, 입소초기에 그런 당부를 보호자에게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호자인 아들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번호차단 만이 현재로서는 방법인 듯 한데도 왜 그걸 거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자 어르신중에서는 기저귀를 훔쳐(?)가는(이 표현이 불편하게 여겨질수도 있으나, 본격적으로 큰 짐이 될 정도로 꾸준히 가져가기에 이렇게 표현해본다.) 분들도 몇분 계시다.
신체활력이 비교적 정상적인 한금어르신과 또다른 몇분의 여자어르신들이 그렇다.
복도에는 기저귀교체시 사용하는 카트가 있다. 거기에는 교체용 새기저귀들과 위생용품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남몰래 슬쩍슬쩍 가져가 자신의 방 구석구석에 숨겨두는 것이다.
엊그제 한금어르신의 방에 들어갔을 때도 나는 깜짝 놀랐다. 침대 아래 종이쇼핑백 한가득, 옷장서랍 여러 칸에 가득가득 교체용 새기저귀들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대부분 꺼내왔다.
어르신은 기저귀를 보면 그렇게 집요하게 가져가 쌓아두지만, 그사실을 잊어버린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정성껏 숨겨둔 것들을 모조리 회수해 와도,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월동준비를 위해 먹이를 모아두는 생물처럼 그저 끊임없이 숨겨놓을 뿐이다...
건망증은 흔히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지만, 지남력이나 판단력 등은 정상이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다.
또한 잊어버렸던 내용을 곧 기억해 내고, 힌트가 주어지면 금방 기억해내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치매는 기억력 감퇴뿐 아니라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인격 등 다양한 정신 능력에 장애가 발생함으로써 지적인 기능의 지속적 감퇴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그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