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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h My Life

오늘의 생각

_어머니도 없는 두번 째 어버이날

by somehow

언제나 처음은 두렵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첫발을 내딛는 일은 어쩌면 또하나의 알까기가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알을 까고 나가기.

사람마다 각자의 생의 고통을 견디는 탄력성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끝없는 자갈밭을 밤낮없이 굴러도 다음날이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또 그 길을 간다.

또 누군가는 잘 보이지도 않는 돌부리에 제풀에 넘어져 놓고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용의자를 찾느라 핏발 선 눈을 희번덕인다.


어쩌면 내가 그런가.

어디 나만 그럴까.




20240209이후로, 날마다 생각나지 않는 때가 없다.

한밤중 잠에서 깰 때면, 불현듯 생각난다.

길 위에서 허리 굽고 머리 허연 할머니가 기우뚱거리며 위태롭게 걷는 것이 보일때면 어김없이 그 뒷모습이 겹쳐진다.

올해 봄, 또 어김없이 폭발하듯 피어나던 벚꽃은 쏟아지듯 머리 위로 흩날린다.

그해 봄, 나는 팝콘처럼 눈부신 백발 파마머리 내 어머니와 벚꽃 폭발하는 거리에서 한순간의 기억을 가슴에새겼었다.

쏟아져내린 벚꽃잎들이 달리는 승용차들의 꽁무니에서 그리움처럼 나부낄 때 나는 그냥 울고싶다.

이제는 그만 천천히 희미해질까봐, 벌써 당신을 잊은 듯이 살게 될까봐 걱정이다.


6일 아침, 나는 어머니의 수목장에 다녀왔다.

어느새 1년도 더 지났다.


오늘은 어머니없이 맞이한 두번 째 어버이날.



매일매일 당신을 닮은 이들을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그 가볍고 다행한 숨 끝에 문득 고단한 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느낄 때면 당황한다.


나는 위선자인가.

나는 나쁜인간인가.

나는 벌써 지쳐가는가.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


참 고단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다행하고 기쁜 순간들이 있기에 육신의 통증따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잊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통증_어깨통증.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겨우 1년 남짓, 나자신의 쓸모를 새로이 발견한 분야에서 이토록 금세 지치다니.

지난해 가을, 폐외결핵에 의한 흉부농양 제거수술을 받으며 뼈와 가죽뿐인 나의 실체를 깨달았다. 역시나 전체적으로 살도 근육도 부족한 내가 이를 앙다물고 용을 써가며 버틸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인가.

참 부끄럽지만, 호기있게 시작한 요양보호사의 일상에서 도저히 넘어서지 못하는 육체적한계 앞에서 나는 주저하며 백기를 꺼내어든다.

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일정선을 넘지 못하는 체력은 어느새 방전되었다.

무한반복, 같은 말을 하루종일 되풀이하며 뒤따라다니는 어르신에게 마치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신체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는 어느쪽이 견인차가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요양원 요양보호사의 일이란, 육체적노동은 물론 어마어마한 정신적노동까지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몇 년씩, 십수 년씩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초인적이랄 밖에.

감히, 그저 표면적인 업무패턴만으로 일의 경중을 판단한 것은 섣부른 오류였다.


요양보호사에게 하루 8시간의 근무는 중노동에 다름아니다.

경험상 5시간정도가 근무강도에 적합한 하루 근무시간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이 업계는 다른 산업현장과 다르게 재편되어야 한다.

이상적이라면, 현장근무 5시간+휴식과 재충전 3시간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물론 급여는 8시간근무일 때와 동일하다는 전제로!

그렇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충분한 휴식이 가능할 때, 나머지 5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성심껏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요양보호사들의 근무여건 개선의 우선과제로 최저시급이 거론되는데, 급여체계는 그대로 두고 실근무시간을 줄이면 된다. 부족한 인력은 당연히 추가보충하고.

반대론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겠지, 3시간의 무노동 유임금은 말이 안된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3시간의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어떤 이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꾸준한 운동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부족한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이 될 것이며, 그도저도 아니고 가장 방심한 자세로 격렬하게 빈둥거리는 최고의 휴식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시간들이 정말 무노동이라 치부되어야 할까.

그야말로 다음날 5시간의 열정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에너지충전의 시간이 아니고 무엇인가....그렇게만 된다면, 체력의 한계 멘탈의 붕괴 따위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가장 존엄한 행위야말로, 기타 산업에서와 같은 기준으로 분류되고 평가되어서는 안되는 것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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