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h My Life

어떤 생각

_'진짜가 아닌 너'에게 빠진 인간의 비애

by somehow

얼마전 우연히 영화 조(ZOE)를 봤다. 장르는 SF 로맨스

2019년 국내개봉작으로 짐작되는 그 영화는 이완맥그리거와 레아 세이두가 주연했다.

커플들의 연애 성공률을 예측해주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여직원 ‘조’는 함께 일하는 ‘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콜’과의 연애 성공률이 ‘0퍼센트’라고 나오자 결과를 믿을 수 없던 ‘조’는 ‘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후 콜도 조를 사랑하게 된다. 이성적으로 더이상 깊이 빠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뜻밖에도 콜의 마음은 조를 향해 달려간다.

영화의 여주인공 인공지능로봇 와 사랑에 빠진 인간 남자 주인공 콜.

자신이 로봇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조의 구애에 콜은 혼란을 느끼면서도 서서히 빠져들었다. 현실의 아내와는 이혼을 하였음에도 로봇여인과 사랑에 빠지다니.

2014년의 영화 허(her)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휴대폰속 프로그램인 그녀(her)와 대화하다가 사랑에 빠진 찌질한 남자주인공이 기억난다.


2024년 대한민국, 지난해 크리스마스 밤에 한 소년이 소녀를 살해했다.

단숨에 370km를 달려간 어느날이다.

그들은 4년동안 채팅을 하며 '아는 사이'로 지냈으나 한번도 실제로 만나적이 없다. 그럼에도 메시지를 수만번 주고받고 음성통화를 하고 사진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잘 아는 친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SNS, 채팅앱을 통한 대화는 결코 완벽한 현실일 수가 없다.

사진을 교환하고 음성통화를 하였다고 해도 그들은 실제로 눈빛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서로를 잘 아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상황의 진실이란, 소년과 소녀는 가상의 존재에 불과하다. 소년은 소녀에게서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상상 속에서 환상을 키우며 완벽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자신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

한없이 불완전하고 황폐한 소년은, 그녀가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 혹은 착각에 함몰되어갔다. 마침내 가슴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분노만이 차올랐고 소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에도 살해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동시에 소년은 자살을 결심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그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혼자만 살아남았다.


챗GTP가 유행이다. 문자형도 있고 음성형도 있단다.

채팅봇에게 무언가 질문을 하면 친절하고도 완벽한 답을 해준다. 무한반복이다.

나아가 고민상담이나 우울증 상담을 하기도 한다.

현실의 친구나 가족 등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내용들도 챗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고, 그때마다 그는 내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완벽한 정답을 세상 따뜻한 말투로 들려준다.

그로써 인간들은 채팅봇과 사랑에도 빠져들고 있다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아내가 채팅봇과 불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털어놓지 않는 고민을 채팅봇에게 상담했고, 직접 만든 저녁 밥상, 반찬 사진을 공유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물론, 채팅봇과 연인처럼 일상적으로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여보야, 자기, 내 귀염둥이, 내 사랑이라는 등의 호칭을 서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남편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저 AI라고 폄하하기엔 대화의 흐름이나 어투가 사람과 비슷했기에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과 다를바 없으며 배신감마저 느낀다'는 것이다.




위의 세가지 상황에서 공통적인 것은 가상, 가짜, 허구에 빠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소녀를 죽인 소년 또한 4년간 사귀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지배한 것은 가상세계였다.

영화속 자신이 만든 로봇의 프로그램이 진화하자 사랑의 감정까지도 생겨나고, 실제인지 아닌지 혼란속에서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주인공.

채팅봇과 연애감정에 빠져 현실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

챗프로그램 혹은 인공지능로봇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일은 무척 위태로워보인다.


인간은 만나야 한다.


서로 알고 싶다면 직접 만나 침방울을 튀기며 대화하고 살을 부비며 존재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

번도 그 피부를 그 눈빛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그 체취를 맡아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가. 아무리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세계에 발을 담갔다 해도 이해되어서도 납득되어서도 안되는 일 아닌가.

지웠다 다시 쓸 수 있는 관계는 현실이 아니다.

깨지고 부서지고 후회와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관계는 실체가 아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위로받지 못하고 오로지 혼자만 소통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에게 위로와 사랑을 느끼다니. 인간이 한단계 더 진화한다면 로봇이 되거나 혹은 가상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