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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어느날, 요양원 일기_20

_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피곤한 당신_2

by somehow

결국, 그날밤 야간근무자가 점순어르신을 다른 방 침상으로 임시조치를 하여 잠을 잘 수 있게 해드렸다.

그밤, 춘화어르신은 밤새도록 화장실에 가겠다며 5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야간근무자들(그날은 다행히 두명이었다)은 번갈아 불침번을 서가며 밤새도록 화장실 왕복운동을 해야만 했다.

춘화어르신은 한숨도 자지 않고 하얗게 밤을 새운 것이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내가 근무시간에맞춰 출근했을 때, 혀를 내두르는 야간근무자들의 푸념을 통해 위와같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점순어르신은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울었어요...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이미, 점순어르신 또한 갑작스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밤마다 울곤 한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또한 처음 입소 당시, 점순어르신의 오른쪽 뺨 눈 아래쪽 부위의 홍반을 보고 토나와서 밥을 못먹겠다며 식사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또다른 어르신의 태도에 점순어르신은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날도 점순어르신은 울었다.

그다음날도 조용히 울었다.

팀장이 가서 달래어 드리기도 하고,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날에는 나도 다가가 괜찮으시냐고 말을 걸었다.

말을 걸기가 무섭게 어르신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후에도 점순어르신은 무척 슬프고 상심한 표정으로, 철딱서니없는 아이처럼 집에 가겠다며 온종일 무한반복적으로 떠들어대는 춘화어르신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엊그제 아침에도 점순어르신은 조심스레 밤사이 안부를 묻는 나의 말에 울먹이며 흐느꼈다.


내가, 왜...저런 바보들하고 이런 데서 살아야 되냐고...내가 배우질 못했나 뭐가 모자라나, 어휴 너무 속상하고 기가 막혀....낼모레 아들 오면 나가겠다고 할거야...흑흑흑...


어르신이 말하는 바보들이란, 집에 가겠다고 무한반복하는 춘화어르신과 또다른 중국동포 경순(가명)어르신을 가리킨다. 경순어르신은 치아가 아래에 몇 개밖에 없어서 특히 섬유질 반찬을 완전히 씹지 못한다. 또한 양치질도 스스로 하시도록 하면 온사방에 물바다를 만들기때문에 도움을 드려야 한다.

그 광경을 매 식사때 지켜보면서 점순어르신은 혀를 차곤 했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수시로 일어나는 바람에 잠을 못자고 괴로워하는 점순어르신과, 그렇게 옆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춘화어르신의 모습을 지켜본 근무자들의 평가에 따라두사람은 결코 함께 지낼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다음날, 이동조치가 취해졌다.


그나마 인지가 좋고 젊잖으신 소임어르신과 점순어르신을 함께 지내시도록 방을 바꾼 것이다. 대신 춘화어르신의 방에 와상환자인 인자어르신을 배정했다.

사실 인자어르신도 와상이기는 하지만 인지는 비교적 정상이다.

가끔 내가 왜 여기 와있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는 하지만.

그래서 인자어르신의 양해를 구하는 일이 필요했다. 간호조무사가 조심스럽게 인자어르신을 설득하여 춘화어르신과 한방을 쓰게되었다.


문제는 그다음, 다시 시작되었다.

새 인물과 방을 같이 쓰게된 춘화어르신은 휠체어에 앉은채 이리저리 다니며 집에 가겠다고 길을 알려달라고 졸라대던 레퍼토리에서 나아가, 인자어르신을 향해 이렇게 뇌까렸다.


여기는 내 전셋집인데 왜 여기 있는거에요? 우리 자식들이랑 같이 살건데 할머니는 누구에요? 왜 여기 사느냐고요? 빨리 나가요!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여기가 어딘데, 왜 나더러 그런 소리를 해요?


춘화어르신의 난데없는 소리에 인자어르신도 어리둥절 당황하여 이렇게 대꾸했다. 인자어르신의 침상에 붙어서 이런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발견한 내가 말했따.


어르신, 여기는 어르신 집이 아니에요. 모두 다같이 지내시는 곳이에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사실, 인지부조화가 심각한 상태의 춘화어르신에게 그런 말자체가 통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인자어르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게 된 다른 어르신들, 특히 신체활력이나 인지력이 비교적 좋은 편인 소임어르신이나 규민어르신, 점순어르신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정말 큰일이네...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춘화어르신을 가리킴)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사나....기가차네....


오메...참말로 환장하것네....어째서 저렇게 멍청할까.....


네.....춘화어르신 치매가 심하시네요.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러신듯 해요. 자녀분들이 낯선 곳에 어르신을 두고 가셨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집에도 자꾸 가겠다고 하시는 것이고요...


근무자들은 이렇게 다른 어르신들께 설명을 드려야했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충격과 불안감으로 춘화어르신은 혼란한 상태이다. 입소후 지금까지도 매일 여기가 어디냐, 집에 가겠다소리를 되풀이하며 휠체어를 타고 거실을 다니시면서도 자신의 생활실을 찾지 못하여 화장실에 가고싶다고 수시로 요청하면서도 정작 화장실이 어디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수시로 질문을 반복한다.


그런 한편, 점순어르신과 소임어르신은 인지수준이 비슷하여 대화도 서로 통하며 춘화어르신과는 분명히 다른 수준으로 자신들을 평가한 듯 마음이 잘 맞는듯하다. 그로써 점순어르신은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방을 옮긴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안부를 여쭈었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응, 푹 잘 잤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대답하시며 점순어르신은 더이상 울먹이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르신들은 요양원에 입소하면 불안감을 느끼신다.

내어머니도 그랬지만, 극단적으로는 자식들이 자신을 갖다버렸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로 인한 좌절감, 절망감은 얼마나 클것인가.

날마다 자식들이 보러 와도 다시는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실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르신 스스로 자포자기를 하면 적응기에 들어선다.

경험상 보통 1달정도가 걸리는 것같다.

예전에 만났던 어떤 남자어르신이 생각난다. 내가 요양보호사가 된 직후, 새로 입소하신 그 어르신은 고관절골절을 두번이나 겪으신 분으로 다리가 뻣뻣하여 제대로 걷거나 앉기도 쉽지 않았다. 몸이 뻣뻣한 만큼 마음도 빳빳한 막대기처럼 고집스럽고 억세게 느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드려도 뻣대고 버둥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짜 말을 안듣는 아이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분이 어느날 갑자기 순한 양처럼 우리의 손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한달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자신의 상황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며 화를 내고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버티는 시간이 한달여이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르신의 심리상태는 분노와 좌절감, 서글픔, 그리고 포기와 순응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렇게 순응하고 자신을 돌봐주는 요양보호사들과 잘 지내기 시작하면 그 어르신은 꽤 오래 요양원에서 적응하신다.

지금 근무하는 요양원에도 3,4~6,7년이상 계시는 어르신이 몇 분 계시다. 그분들은 완전히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신 분들인데 그중에는 완전한 와상상태이며 치매가 심각하여 돌봐드리는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몇분이 계시다. 또 의사소통이 되고 와상상태도 아니며 종종 휠체어를 타고 나오시기도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이야말로 아무런 불만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로 요양원의 생활방식에 적응순응하신 상태라고 판단된다. 이를테면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평온한 상태일 것이다.


반면, 낯선 환경에의 분노와 포기 과정까지 갔음에도 순응하지 못하고 절망하여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내 어머니가 바로 그랬다.

어머니는 입소 즈음부터 담낭염 증세가 있음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3개월을 끌다가 뒤늦게 병원에 갔고, 그로부터 중환자실과 병실을 몇달 동안 오가며 수술과 치료를 했음에도 비위관을 삽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로써 어머니는 입을 닫아버렸으며 모든 치료를 끝내고 요양원에 재입소한 뒤 결국 5개월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처럼 갑자기 바뀌 자신의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못하고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좌절감이 깊은 어르신들은 요양원에 입소뒤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실제로 확인했다면 너무나 단정적일까. 특별히 심각한 질병이 없는 상태로 입소한 경우, 그처럼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채 괴로워하다가 3~6개월이내에 돌아가신 것이다. 겉으로는 신체적으로 급성적인 변화에 따른 결과이지만, 내가 볼 때는 화가 난 어르신이 그 마음속 깊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 결국 숨이 넘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럼에도 인간의 생존본능은, 대부분 새로운 환경속에서도
적응하려는 의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노력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함께 살아야 하는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매일매일 돌봄을 제공해야하는 우리들에게도 아직은
가까이 하기엔 까마득히 멀기만 해 보이는 춘희어르신도
분노와 좌절감을 극복하고 요양원생활에 순응하여,
그동안의 고단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안도하는
나날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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