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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어느날, 요양원 일기_19

_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피곤한 당신_1

by somehow

한 열흘전쯤, 거의 같은날 여자어르신 두분이 4층에 입소하셨다.


한분은 올해 93세의 점순(가명)어르신, 다른 분은 대략 78세의 춘화(가명)어르신.

(기록상으로는 91세와 75세로 되어있다.)

입소동기이며 두분다 2인실을 원하시어 함께 생활하시게 되었다.


점순어르신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인지력이 거의 정상적이고 신체활력도 좋은 편이다. 다만 다리 힘이 약해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워커를 짚은 상태로는 혼자서도 화장실에 오가실 만하다.

반면, 춘화어르신은 입소당시 함께 온 딸아들 등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연변출신으로 오래전 언젠가 한국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듯하다.

중국동포로서 가깝고도 낯선나라인 한국에서 정착하기위해 춘화어르신은 젊어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는데, 갈퀴처럼 억세고 한없이 투박하고 거친 두손이 생생한 증거였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그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살린 동력은 어미로서의 책임감과 억척스러움이었음을 누구라도 인정할 법했다.

그렇기에, 이제 80세도 안 된 나이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육신과 함께 요양원 어느 침상 한구석에 처박히리라고는 어르신 자신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어요? 내 집에 가야 돼요!(조선족특유의 억양으로)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로 입소한 후, 어르신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첫날부터 춘화 어르신은 허리가 부실한 탓에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상태로도 필사적으로 남몰래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에 실려 고꾸라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것은 또한 나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에 다녀온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사고여서 모두를 당황시켰다.


어르신, 기저귀 채워드렸으니까 당분간은 기저귀에 볼일 보세요! 이렇게 혼자 다니시다 골절되면 더 힘들어지셔요!


나는 화장실 다닐 수 있어요! 내가 왜 기저귀를 찹니까?


평생 자신의 두발로 화장실을 다녀온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 갑자기 채워진 기저귀를 어르신들은 맹렬하게 거부한다.

춘화어르신은, 특히 그동안 보아온 어르신들 가운데서는 정말 TOP이라 할만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일단 기저귀를 채워드리고 실금하는 경우를 대비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적응이 안돼서 그러려니 하였는데, 어르신은 그로부터 불굴의 의지로 하루 수십 번씩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섰다.

특히 침대에 머무를 때는 근무자를 부르지도 않고 혼자 슬금슬금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데, 그때마다 한박자 늦게라도 발견을 하면 달려가서 부축하고 도움을 드리지만, 정말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할 때도 부지기수다.


어르신, 제발요....화장실가실 땐 차라리 저희를 부르셔요. 못 가게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차라리 도움을 청하면 부축하여 오가는 일을 도와드리겠다고 해도 어르신은 막무가내로 10분 혹은 20분, 아니 5분마다 몰래몰래 화장실에 가느라 애를 썼다. 나중에 소변검사결과 심한 방광염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어도 상황을 변함이 없다.


나는 원래 화장실을 자주 가요! 왜 못가게 하는 거에요!


자주 가서 그때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신다면 상관이 없으나 대여섯 번 가면 한두 번 정도만 실제로 소변이 나온다. 그외는 그냥 가서 앉아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안 나오네.....


배변도움을 드릴때 가장 허탈한게 바로 안 나오는 경우이다.

차라리 대변이든 소변이든 시원하게 쫙쫙 쏟아낸다면 뜻밖에 보람을 느끼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 않은데 심리적인 이유로, 느낌상 자꾸 마렵다,는 이유로 뻔질나게 위험을 무릅쓰고 화장실을 다니는 상황은 어떤 일보다 지치게 한다.

그러다 입소 며칠만에 또다시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와 침상으로 오르다 나동그라져 끝내 꼬리뼈 골절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르신의 화장실 왕복의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춘화어르신은 그렇게 우리 4층의 말썽꾸러기,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침상에서는 그렇게 몰래몰래 화장실을 다니는 통에, 우리는 머리를 썼다.

휠체어에 앉히고 안전띠를 매어드렸다. 그렇게하면 혼자서는 절대로 화장실변기에 앉을 수가 없기에 우리가 제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화장실 가고싶다는 요청의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상황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어르신의 기저귀사용 거부의지를 우리는 꺾지 못했고 필사적인 어르신의 뜻을 따라 도움을 드리려애쓰며 낙상사고라도 발생하지 않게하려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화장실 사용의지 못지 않게 이상증세도 시작되었다. 치매탓이다.


여기가 어디에요? 우리 애들은 어디있어요?

집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집이 금호동인데 뭐 타고 가야 돼요?


휠체어에 앉혀드리니 스스로 팔을 움직여 운전을 아주 잘하게 되어 이리저리 공용거실을 다니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집에 가야한다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날, 식사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때 춘화어르신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다른 어르신께 언니는 집에 언제가세요? 라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입소한지 1년정도 된 88세의 소임(가명)어르신이 이렇게 춘화어르신에게 일장훈계를 하셨다.


야, 너는 그냥 여기 살면 돼! 가만히 있어도 밥 주고 간식 주고 잠재워 주고 목욕시켜 주고, 이렇게 좋은 데가 어디 있냐, 시끄러운 소리 좀 고만해라!


소임어르신도 치매환자이기는 하지만 상태가 심각하지도 않고 대체로 젊잖으신 분이며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상태이다. 그러니, 이제 갓 입소한 풋내기 춘화어르신이 날마다 집에 간다며 되풀이하는 소리가 가소롭고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루어질리 만무한 집에 가고자 하는 춘화어르신의 넋두리는 밤이라고 해서 잠잠해질 리가 없다.

밤이 되면 한방을 쓰는 점순어르신을 괴롭혔다.

같이 얘기 좀 하자며 눈감고 누운 어르신을 깨우며 말을 걸었다. 점순어르신은 못 들은 체하며 이불을 뒤집어쓰며 외면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밤, 두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었다.

요지는 당연히 잠을 자려는 점순어르신과 이야기 좀 하자고 물고 늘어지는 춘화어르신의 불화였다.


춘화어르신은 결코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피곤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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