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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y 15. 2024

곰국 끓이며 풀무질하는 김미옥 선생님께

<미오기전>을 읽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토요일 오후, 선생님의 책이 도착했습니다. SNS에 올렸던 글을 모아서 엮은 『미오기전』과 책을 읽고 쓰신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가 동시에 도착했어요. 이 비를 뚫고 선생님이 저를 만나러 와 주신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우선, 펀딩에 참여했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잠시 옆에 두고,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미오기전』을 펼쳤습니다.


책 속에는 SNS에서 읽었던 글도 있었고, 제가 놓친 글들도 있었어요. 읽었던 글들은 익숙한 시선으로 처음 보는 글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었습니다. 먼저, 정말 박장대소하며 읽었던 대목은 <나의 친할머니 조쪼깐씨>였어요. 할머니 이름에서 제 모습이 보였거든요. SNS친구들은 저에게 ‘요정’이라고 하지만, 그건 ‘고급화 된 이름’이고요. 고교시절에 친구들이 저를 ‘째깐’이라고 불렀어요. 조조간 할머니처럼 저도 아담한! 사이즈거든요. ‘조조간’할머니와 ‘강도귀달’ 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부모님이 그 시절에 면서기를 만났다면 나는 ‘윤조간’이 되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조간 할머니와 내적친밀감이 생겼고요. 어쩌면 조조간 할머니의 강인함이 선생님께도 깃든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을 뚫고 살아오셨으니까요.


어린시절 선생님의 놀이터는 아버지의 공장이었습니다. ‘마찌꼬바’기술자였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기계를 탐구하고, 용접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모눈종이를 꺼내놓고 금형 설계도를 그리면 연필에 침을 묻혀 따라 그렸’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아버지가 공구상에 갈 때면 따라 나섰지요. 그래서 ‘독일제 드라이버’를 손에 쥐어 오기도 했고요. 궁금한 것은 연구하고 탐구하는 습관은 아마 그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선생님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야했지요. 당시 자신의 모습을 선생님은 ‘전쟁고아 같았다’고 했습니다. 머리는 아무렇게 잘리고(?), 오빠들이 입던 스웨터를 물리고 또 물려서 입어 앙상한 어깨가 드러났다고요.


그 무렵 선생님을 ‘알아 봐 준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나의 최숙자 선생님’말이에요. 그는 선생님의 영민함을 알아보고, 계속 공부를 시키려 하셨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어머니는 선생님을 공장으로 보냅니다. 오빠들의 생계와 미래가 선생님 손에 달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두 분의 팽팽한 대결은 어머니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결국 승리한 사람은 최숙자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머니 몰래 선생님을 위한 학습계획을 세우고, 검정고시를 보게 하셨으니까요. 덕분에 우리는 계속해서 읽고 쓰고, 탐구하고, 공유하는 김미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책과 영화, 음악 등을 읽고 보고 들으며 기록을 남기시지요. 이 모든 것은 선생님의 삶 어느 부분과 맞닿아 선생님의 삶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과 문화들보다 선생님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선생님에게서 ‘한 사람’을 기억하는 김미옥을 보았고, 이름 모를 귀신들을 위해 이불보따리를 챙기고, 소반에 밥 상 하나 차려놓기를 권유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외로운 영혼’을 기억하는 김미옥을 보았거든요.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SNS에 끊임없이 소개하는 것도 선생님이 ‘사람을 향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은 <세상의 밥 한 공기>에서 이렇게 쓰셨어요.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p128)’라고요.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일전에 ‘그날오면’ 서점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스스로를 ‘풀무질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지요.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풀무여사’라고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덧붙였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살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당신도 풀무질을 한다고 말이에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글 속에서 ‘내 삶의 어떤 순간’을 포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살아온 시대와 고통의 무게는 다르지만, 저마다 힘겹고 어려운 순간들을 살아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힘겨웠던 삶이 ‘신파’로 끝나지 않고, 유머와 감동으로 다가오는 선생님의 글처럼, 각자의 삶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이 좋아요와 댓글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선생님의 글을 통해 나를 만나고, 긍정적인 마음을 풀무질 당하고 있거든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날이 무척 맑습니다. 책이 도착했을 땐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글을 쓸 때는 무척 화창하네요. 날씨마저도 ‘긍정의 마음’을 품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저도 ‘긍정’을 장착하고, 풀무질 하러 가야겠어요. 오늘은 ‘화요일의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거든요. 저도 가서 그들의 마음에 ‘잘 돼라!’ 바람 좀 불어놓고 오겠습니다. 선생님이 누군가를 향해 바람을 넣듯 그렇게요.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만 총총합니다. 안녕히계세요.


<미오기전> 김미옥 이유출판 2024


#미오기전 김미옥 이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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