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휴직' 앞에 '육아'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어쨌든 회사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휴직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미 2020년부터 재택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집사의 삶을 지향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100%를 가족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육아휴직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 아들(첫째)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 보내기.
▷ 둘째를 출산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쉼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
휴직기간 동안 첫째 아이는 에버랜드에만 10번 다녀왔다.
키즈카페, 문화센터 등 외부 시설에 놀러 다닌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며, 집 안에서 뛰어놀기, 시골집, 가드닝 등 핑크 핑크하고 말랑말랑한 ‘가족애’는 지난 4개월간 아이와 내 삶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아이와 긴 시간 꼭 붙어 지내다 보니 다툼(?)이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고, 서로에게 질려버리는(?) 상황도 많아졌다.
아이는 아빠가 자신의 그림자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게 느껴졌고,
아빠는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둘 다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엄마의 역할이 대단했다.
첫째와 나 사이의 불안정 기류가 감지될 때마다 아내는 곧바로 나를 아이와 분리시켰고, 그럴 때마다 나는 둘째를, 아내는 첫째를 돌보며 일종의 스위칭 육아를 수행했다.
잠시 아이와 거리두기를 하고 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껴안고 하하낄낄 거리며 놀 수 있었다.
휴직을 시작한 첫날, 아니 시작되는 주부터 나의 복직일은 저 멀리, 한참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130일이라는 시간이 어느덧 지나버렸다. 만 3세가 된 아이와 130일 동안 함께 한다는 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과 영상들을 보지 않으면 그 소중한 추억들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너무 많은, 너무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내 머리가 내 마음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이는 어땠을까.
아내는 어땠을까.
내가 그랬듯, 그들에게도 지난 130일이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되었으면 한다. 각자 다른 추억으로 기억하겠지만, 이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겐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했다는 걸 아주 조금이라도 기억해주면 좋겠다.
어차피 길어진 프롤로그이니.. 글을 마치기 전에 짧은 편지를 남겨 보자면,
육아휴직 기간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둘째.
너의 탄생 덕분에 우리 가족이 더 많이 사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단다.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하늬야. 사랑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개구쟁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하는 찐 개구쟁이 아들.
언젠가 네가 더 성장한 뒤, 우리가 만든 추억의 흔적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구나. 어쩌면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에 전혀 관심 없는 건조한 소년으로 자라날 수도 있겠지만, 네가 어떻게 기억하든, 아빠는 아무런 방해 없이 너에게 온전한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130일의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 사랑한다.
그리고 아내.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아내.
못난 남편 때문에 출산 후 회복하지도 못하고 바로 간병인으로 투입돼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진 아내.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라서 아직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어요. 절대 잊지 않고 꼭 보답할 테니 내 옆에서 건강하게 기다려주세요. 지금 이 힘든 시간, 우리 손 꼭 잡고 잘 버텨보아요. 당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당신은 그런 존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