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 마종기,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중에서 -
나는 이 시가 왜 마흔의 시기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내는 단지 국물을 우려내고 다 쓴 며루치를 건져 냈을 뿐인데, 왜 내 마음 한 켠이 짠한 걸까? 삐쩍 마른 며루치가 단물 다 빠져 퉁퉁 불고 볼썽사나워졌을 때, 나는 배 불룩 나온 히매가리 없는 마흔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변에 회사를 나오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선후배들이 늘어간다. 한창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지는 시기에 회사는 날로 어려워는 경영환경을 이유로, 고통 분담을 요구하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머리털 쥐어짜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시기가 마흔이다. 상시 구조조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빛이 되고 희망을 전해주는 이는 누구 하나 없어 보인다.
당장 회사를 나오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할까? 당장에 가족의 생계가 가장 걱정이다. 아이들 학원비에, 각종 공과금, 부모님 용돈과 당장 내야 할 아파트 관리비까지 생각하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가장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자괴감을 불러온다. 나도 한때는 은빛 바다를 누비며 반짝였을 며루치와 같은 때가 있었는데… 내 청춘은 단물 다 내어주고 속절없이 지는구나.
볼품없는 껍데기만 남아 버려지는 나이가 마흔이라면 우리의 지나온 세월이 너무도 허망하다. 우린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멀건 국물을 진하게 만들었음에도 시대는 우리를 대신할 새로운 며루치를 끊임없이 원한다. 아,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여기에 모두 쏟아부었는데, 그럼에도 내쳐질 수 있는 나이가 마흔부터다.
하지만 우리의 청춘과 열정, 꿈과 노력이 녹아든 이 국물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믿고 싶다. 우리는 이 국물로 가족을 위로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허기를 달랬으며, 일상을 버텨낼 힘을 보탰다. 비록 우리의 몸은 예전만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이 깊고 진한 맛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나와함께 이 시대를 사는 며루치들이여, 이제는 남은 열정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자. 우리의 깊은 맛이 세상에도 스밀 수 있도록, 더 이상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흔은 버려질 나이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기 정말 좋은 나이다.
끝으로 니코스 카자차키스의 위대한 말을 남긴다.
“나는 당신의 손에 쥔 활이 올시다.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힘껏 당겨주소서,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우리 한번 더 우려낸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