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수영이 하고 싶어 짧게 제주도에 다녀왔다. 2박은 에어비앤비로 구한 저렴한 숙소에서 묵고 하루는 신라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늦게 출발해 일요일 낮에 올라오는 짧은 일정이었다. 도착한 날은 비가 쏟아지기도 했고 시간이 늦어 동네 횟집에서 회와 별빛청하 마시며 밤을 보냈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저렴한 숙소는 별로였다. 5평짜리 민박집 방 한 칸에 침대 하나가 가득 들어간 구조로 20인치 캐리어를 펼칠만한 여유 공간도 없는 방이었다. 창문도 안 열리고, 냉장고 없고, 짐 놓을 곳도 없는데 마샬스피커 있던 숙소. 침대 스프링은 망가져 있고 베개도 없고 일본 캡슐호텔보다 작은 곳이었다. 밖으로 나가 숙소 옆에 붙어 있는 화장실 써야 했고 화장실도 그냥 최악임. 이게 세일해서 12만 원이었지 원래 가격은 18만 원이다.
제주도 + 감성 사진 에어비앤비 조심해야겠다. (세화 낙*주의자들)
숙소와 별개로 동네 자체는 좋았다. 5분 정도 걸어나가면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고 동네에 방치된 거대 로즈마리가 있어 향 맡고 산책하기 좋았다.
5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연미정에 들러 전복가마솥밥을 든든히 먹었다. 생각 없이 들른 동네 밥집인데 반찬도 깔끔하고 영양가 가득했다. 아침부터 맛있어서 눈앞에 모든 걸 다 먹었다. 김원장은 대단하게도 아침부터 전복 회도 먹었다.
후식으론 근처에 이상순 카페인 롱플레이가 있어 들렀다. 유명한 곳은 찾아가는 편은 아닌데 밥집과 가깝기도 했고 5월 말까지만 영업한다고 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러봤다. 좋은 스피커에서 적당히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맛있는 드립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갔을 땐 꽤나 한산했고 마침 자리가 비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인근에 런던 베이글 가게가 생겨서 힙쟁이들은 다 그쪽으로 간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주문한 드립 커피와 오트 라테는 맛있었다. 괜찮고 맛있는 커피숍이 문 닫는다니 아쉬웠다.
제주 힙!
부른 배를 끌고 바다 드라이브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매의 눈으로 한치를 발견한 김원장이 낼름 한치를 사러 갔다. 제주도의 한치와 오징어는 갈치 낚싯배에서 잘못 잡히는 거를 주로 먹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잡히지 않아 원양어선 타고 러시아에서 온 수입산 오징어와 한치를 사서 판매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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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온 것을 한국의 가장 남쪽에서 구워 판매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제주산 한치가 아닌데??? 아이러니.
한치까지 챙겨 먹으니 비가 수그러들었다. 저녁밥 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있어 다랑쉬 오름에 올라갔다. 프로 운동인 김원장은 샌들 신고 꽤나 깊은 언덕을 빠르게 올라간다. 바닥이 험준한 곳도 많았고 비온 땅이라 미끄러운 곳도 많았는데 폰을 보고 달인처럼 휙휙 올라간다. 수영을 2년 연속으로 한 운동화 신은 나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숨이 차고 또 차고 내 체력 짜증 난다.
다랑쉬 오름은 산길을 잘 살펴야 하는데 중간에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하면 언덕에서 뫼비우스 띠처럼 계속 돌아야 한다. 우리가 그랬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돌고 잘못됨을 감지했다. 무서웠고 겨우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는 길을 찾아냈고 힘들게 내려갔다.
(나만)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저녁은 아스론가 제주에서 먹었다. 톳오일파스타가 유명하다고 해서 들렀다. 당근스프와 봄 한정 당근뇨끼까지 함께 주문했다. 메뉴가 제주느낌나고 모두 맛있었다. 특히 입안에서 식감이 탱글 거리던 톳오일파스타가 가장 맛있었다. 물어보니 인근에 레이식당이라고 일본식 톳파스타가 마켓컬리에 밀키트로 판매될 정도로 유명해서 구좌읍 동네 양식 가게들이 따라 만들기 시작했나?
그 레이식당에 와인도 판다고 해서 갑자기 밥을 후다닥 먹고 달려갔다. 6시가 마감인 식당에 5시 45분에 도착. 나이스~ 사장님은 처음에 와인을 추천해 주려다 우리끼리 잘 고르는 거 같다며 알아서 고르라 하셨다. 식전 와인과 피노누아 와인 2병을 골랐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와인 2병을 추가로 구매했다. 와인을 잔뜩 마실 수 있어 기뻤는데 체력에 한계로 와인 반병 정도 마시고 기절을 했다. 다랑쉬 오름 때문인 듯. 등산은 나를 기절하게 한다.
5월 13일 월요일
이렇게 찍기도 힘들 듯
다음날 비온 뒤라 날씨가 매우 좋아졌다. 기절한 나도 꿀잠 덕에 컨디션이 좋았다. 거지 같은 숙소를 새벽같이 퇴실하고 세화 해변에서 아침 요깃거리로 톳김밥과 당근주스를 사서 아침 산책을 했다. 바람은 꽤 불었지만 바다를 보기엔 좋은 날씨였다.
점심에는 김원장과 같이 근무했던 제주로 이사 오신 간호사 선생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사 오신 이유가 재밌었는데 평생 일만 하고 비혼 결심하고 살았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인연을 만나 45살에 결혼해 제주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현재도 간호사 일을 시간제로 하면서 강아지도 돌보고 귤 농사도 하고 남편은 낚시 다니면서 즐겁게 산다는 안부를 전하셨다. 우왕. 김원장도 귀촌하겠다고 난리를 치길래 제주 선생님께서 물가도 비싸고 찐으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너네는 그냥 도시에서 살라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과 헤어지고 호텔 입실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왕이메오름을 들렀다. 하지만 오름은 모르겠고 주변 길이 막혀있거나 공사 중이었다. 후기로 봤던 오름은 어디 있을까? 가도 가도 돌바닥만 있다. 이곳 오고 가며 마주친 관광객들도 서로 오름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이쪽으로 가면 무슨 길 나오냐고 물어보고 모두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올레길 표식 보며 걷다가 입실시간이 다가와 숙소로 이동했다.
신라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물안경 챙겨 수영장으로 나갔다. 대부분 풀 화장하고 사진만 찍는 커플이 많았다. 나만 수영에 진심인 듯 물안경 끼고 수영을 했다. 김원장은 물안경은 부끄럽다며 킥판에 몸을 맡기고 발차기만 했다. 나는 마침 사이드 턴을 배운 뒤라 턴 연습하고 수영장에서 짧게 만난 수친과 물 튀겨가며 잠영, 접영 연습도 했다. 아직 5월이라 물 밖은 추워서 온천물에도 들어갔다 몸 녹으면 다시 수영장 들어가고 불타는 수영을 했다. 그리고 신라호텔 명물인 해물짬뽕도 시켜 먹었다. 6시 이후에 시키면 품절이라 먹을 수 없다 해서 중국인 관광객보다 빠르게 시켜 먹었다. 대게랑 새우 등 해산물에 차돌까지 가득한 1.5인분 양에 밥이 나오는 호텔 짬뽕은 왕맛이었다. 물놀이 직후 먹는 칼칼한 짬뽕이라 무조건 맛있었다. 게다가 제주도 음식 물가가 비싸서 이 양에 이 가격이면 그다지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5월 14일 화요일
다음 날도 퇴실 전까지 호캉스를 즐겨야 한다며 수영장 오픈 시간 맞춰 나갔다. 함께 간 김원장은 더 했다 8시부터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수영장에 왔다. 바쁘다 바뻐 호캉스. 해가 쨍쨍한 제주 하늘 아래 뜨뜻한 물이 나오는 호텔 수영장에서 눈뽕 맞아가며 신나게 물장구를 쳤다.
퇴실 후 가는 것이 아쉬워 호텔 커피 한잔 마시고 신라호텔 지박령처럼 산책길을 산책하고 연결된 해변에서 지중해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현생을 떠올렸다. 돌아가기 너무 싫다.
현생에 돌아온 나는 늦은 나이 불타는 물놀이로 단단히 감기가 걸렸다. 2주나 앓았지만 후회가 없다. 아픔은 지나갔고 그저 또 수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