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출장지는 릴에서 20km 떨어진 드브랑이다. 그곳에 전기 배터리 플랜트가 조성 중인데 직원들은 전기설계 및 생산을 하고 있다. 나는 설계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생산도 아닌데 왜 출장을 왔는지 아리송했다. 사장님은 다짜고짜 비용 절감할 방법 찾아 보라며 무턱대고 차를 사봐라, 집을 구해봐라~ 시켰지만 프랑스는 법인을 차리던지, 현지 사람이 필요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신 프랑스에서 1~3월이 직원들 혼돈의 시기였는데 그 하소연을 모두 들어줬다.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 뿐. 생산으로 파견된 일용직 아저씨들 하소연, 프랑스어를 번역해 주는 분 하소연, 파견된 직원들 하소연을 듣고 또 들었다. 귀에서 피가 나려고 한다.
릴은 친절과 차별을 극으로 가지고 있는 동네였다. 길을 잃을 때마다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던 릴 아저씨들. 젊은 릴 동생들의 짧은 영어로 시켜 먹을 수 있었던 오트 커피와 비건 버거. 하지만 가게 대부분은 영어 메뉴가 없고 설명도 불어로만 말한다. 중국인이 중국어로만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번은 직원들과 회식으로 예약한 스테이크집에선 예약이 안됐다고 내쫓으려 했다. 가게에 자리가 텅텅 비어 결국 착석할 수 있었다. 주문할 땐 영어 쓰는 직원 소개해 준다면서 메뉴 설명도 안 해주고 감자튀김을 추가로 꼭 시켜야해서 시켰더니 스테이크 세트에 기본으로 감자가 있는데 감자튀김까지 시켜서 한 사람당 감자 메뉴가 2개씩 나왔다. 릴에 난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외국인 차별이 심하다더니 내가 그걸 당했다. 장 볼 땐 항상 가방 검사를 해야 했다. (이 부분은 나한테만 한 것은 아니지만) 혹은 들고 간 가방을 마트 직원이 케이블 타이로 묶기도 했다. 장 보기도 참 살벌하다.
릴에서 먹은 메뉴 중 가장 싼 것이 라멘이었다. 14유로 정도? 햄버거 세트도 20유로가 넘고 커피는 에스프레소가 2.5유로 정도다. 라테 먹으려면 3~4.5유로를 줘야 한다. 커피 한 잔도 사치인 프랑스의 고물가와 불어 압박, 내내 내리던 비, 애매한 상태로 나를 프랑스로 보낸 회사에 대한 분노로 약간의 우울증이 왔었다. 대부분은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진짜 우울증 올 것 같아 시내도 다녀오고 미술관도 갔다 오고 나의 최대치를 끌어 명랑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