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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술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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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moon Jun 09. 2021

넌 무슨 여자애가 술을 그렇게 마시니?

가장 좋아하는 일이 나의 업이 되기까지의 시행착오

© arobj, 출처 Unsplash


 여자가 술을 좋아할 때 생기는 일은 여느 일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뿐만 아니라 술을 사고파는 관계 속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가령 칵테일 바에서 깔루아 밀크와 올드 패션드를 시켰을 때 너무 당연하게 달달한 술은 나에게, 독한 술은 남자에게 가게 된다. 나는 소위 덕업 일치한 전통주 마케터로 술에 대한 애정을 담아 다양한 광고 소재를 만들며 타게팅 하고 있다. 캠페인 결과를 살펴보면 성별과 연령에 따른 술 취향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데이터는 일종의 숫자일 뿐이고 이런 '고정된' 관념에 대해 순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서 테스트하는 게 마케터의 업이라 정의한다.


 술을 처음 좋아하게 된 나이는 22살이고 선천적으로 눈치를 많이 살피는 편이라 술자리에서 느끼게 되는 은근한 소외감이 결코 편했던 적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술과 양조장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걸 내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미각이나 후각이 섬세하지 않아서 후기를 공유하는 대화에 잘 끼지 못한 적도 많았다. 나에게 왜 술을 좋아하게 됐고, 언제 더 좋아하게 됐고, 어떤 술이 좋은 술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이제는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초창기에는 내 진심이 진짜가 아닌 것 같다는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남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은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단단한 진정성이 생겼을 때 실체 없는 대답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 술이 내 삶에 어느덧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마주하게 된 두 번째 관문은 여자의 혼술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가까운 어른인 부모님의 걱정을 인정으로 바꾸기까지 거진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술 양조 수업이나 자격증 스터디 다닐 때는 단순히 공부한다고 말 드리며 다녔고 그렇게 쌓아 올린 시간의 산물인 맥주 자격증을 보여드리며 결국엔 내 열정인정받게 되었다.


넌 왜 그렇게 술에 미쳐있니?
나도 너처럼 별 걱정 없이 술만 마시고 다니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내가 참석하는 술 모임이나 스터디에 대해 그냥 노는 모임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진정으로 술을 즐기고 좋아하는 만남이기에 굳이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술의 주종마다 특성이 다르고 제조 방법을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술을 잘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수라는 변명을 덧붙인다. 실제로 최근에 다른 주종의 특성을 결합한 술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가령 맥주의 향기 성분을 담당하는 홉을 넣은 막걸리나 와인 배럴에 위스키를 숙성한 하이브리드 제품들이 있다.


 누군가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인생의 생동감을 만들어준 매력덩어리다. 내가 좋아하는 컨텐츠가 술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는 상상도 종종 한다. 독서 모임이 생각을 살찌게 한다면 술 모임은 몸과 인생을 모두 살찌우니 여자가 술을 마시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 -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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