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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 올해 극장에 간 횟수는 작년에 비해 적다고 느꼈는데 생각해보니까 크고 작은 영화제를 4번이나 갔단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 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 무주 산골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영화제의 여파로 잠깐의 영태기(영화+권태기)를 겪었으나 막바지에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잔뜩 나와서 부지런히 극장을 찾아다녔다. 나의 가장 단순하고도 즐거운 취미생활. 올해도 고마웠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
올해는 라라 랜드나 콜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같은 덕질(?)을 유발하는 영화가 없었단 게 조금 아쉬웠지만 다양한 장르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는 많았다. 먼저 <어스>는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부터 완전히 사로잡혔고 러닝타임 내내 엄청 긴장하면서 봤다. 내가 생각해도 살짝 변태 같은데, 너무 긴장했단 사실이 돈 내고 극장에서 보길 잘했단 생각을 들게 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신기한 게 보고 나선 인생 영화라거나 취향 저격이란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올리비아 콜먼의 표정이 자꾸 떠올라서 이 목록에 넣기로 했다. 콜먼 이외에 레이첼 바이스나 엠마 스톤 모두 내가 좋아라 하는 배우들이기도 하고. <윤희에게>는 올해 본 국내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았고 영상미, 스토리, 캐릭터 모두 아름다웠다는 평을 남긴다. 끝끝내 밝고 섬세한 영화라서 고마웠다, 윤희에게.
입봉작 아닌 듯 입봉작 같은 <미드90> 후반부, 모리쎄이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감독 조나힐과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단 생각을 들게 한다. <결혼이야기>는 좋아하는 노래도 많이 나왔고 아담 드라이버가 부르는 Being Alive가 마음에 들었어서 꼽아봤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결혼이야기의 음악 감독이 토이스토리의 음악 감독이란다. 역시나 좋은 덴 이유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이 리치가 감독한 영화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좋다. 그중에 <알라딘>은 더 놀라웠던 게 원곡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갖고 논게(?) 꽤 좋았다.
아담 맥케이의 냉소적인 유머가 돋보였던 <바이스>의 쿠키 영상은 올해 최고로 강렬했고 한참을 낄낄거리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네이버 영화 평엔 이런 글도 있다. '이 영화는 쿠키 영상을 안 보고 나오면 본 게 아니다.' <미성년>은 내용도 좋았지만 이런 영화가 한국에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작품이다. 내로라하는 남자 배우이자 감독에게서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 그런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우먼 인 할리우드>는 좀 우울한 내용이겠단 선입견을 갖고 봤는데 그를 뒤엎는 내용이라 짜릿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도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는 할리우드의 우먼들에게 박수를!
개인적으로 <가버나움>과 <우리집>을 보는 게 참 고역이었다. 내가 유독 아동 이슈에 약한 건지 '왜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할까'란 생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인 극한에 몰려서 힘들었다. 그래도 이런 영화 덕분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진다. 아이는 '낳고 기른다'가 아닌 '어떻게' 낳고 기르는 가에 먼저 질문하고 무게에 두어야 한다는 걸. <기생충>은 말하기 입 아플 정도로 생각할 만한 내용이 많았던 작품이고. <미안해요, 리키>는 보면서 지난 한 해 시민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따뜻한 이웃이었는가 반성하게 만들었다.
<포드 vs 페라리>는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그 예상을 뒤엎고 작품성과 재미의 균형이 완벽한 영화라 놀랐다. MX관까지 찾아간 노력이 아깝지 않았고 4D를 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반대로 <나이브스 아웃>은 기대가 컸는데 그를 저버리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러닝타임이 다소 길었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어벤저스:엔드게임>은 유니버스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 꼽아봤다. 불필요한 장면도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응집력에, 이걸 기어코 해낸 할리우드의 시스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아무튼 마블, 3000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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