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설'을 보고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에서 제공하는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됐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연인 간에 사랑의 언어라는 게 있잖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표현 같은 거. 네 언어는 뭐야?' 그러니까 사랑해라는 말을 해준다던지, 선물을 챙겨준다던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혹은 섹스를 한다던지 등등. 어떨 때 제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냐는 것이었다. 나는 눈빛이라고 대답했고 지금도 그 대답은 유효하다.
상대방의 눈빛을 통해 감정이 읽힐 때,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을 그 눈빛을 마주할 때 가장 벅차고 확신이 든다랄까. 그런 점에서 내게 사랑의 언어는 말과 행동보다는 눈빛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사실이었는데 영국의 매건 마클 왕자비와 해리 왕자의 연애 사진을 보면서 생각났다. 그때 인터넷 상에서도 이런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식으로 화제가 됐던 사진이다.
영화 청설을 보면서도 다시 한번 친구의 질문을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보통 청설을 첫사랑의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사랑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랑에 말이 무어 그리 필요하겠어요?'라는 질문에 '그다지'라는 답에 확신을 보태주는 영화였다.
말하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부모님 식당에서 배달을 돕는 티엔커는 평소처럼 수영장으로 음식을 배달하다가 청각장애를 가진 수영선수의 샤오펑의 동생 양양을 마주친다. 수영장에서 물새처럼 통통 뛰어다니는 양양에게 첫눈에 반한 티엔커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녀의 번호를 받고 한 때 배운 수화로 그녀와 힘겹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마저도 양양은 샤오펑의 훈련 비용을 대기 위해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녀와 더 친해지고자 틈틈이 수화를 연습하고 직접 요리하며 영양 가득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티엔커는 여러모로 노력한다. 그의 계속되는 호의에 양양도 마음을 열기 시작하지만 늘 생계가 최우선인 그녀를 보며 티엔커는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루는 너무 스스로를 보살필 줄 모르는 그녀에게 '니가 널 생각 안 하니까 내가 니 생각만 하게 되잖아' 라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양양은 마냥 받을 수만은 없다며 그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한다.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공연하며 모은 동전이 가득한 주머니를 보란 듯 흔들며 둘은 어느 식당에 들어선다. 제법 맛집인지 둘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른 고객들이 앉으려고 한다. 양양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털어 계산을 하려 하는데 티엔커가 기다리는 손님과 사장님 눈치를 보아하니 민망한 마음에 지폐를 꺼내어 계산해버린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사주고 싶은 마음을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그에게 모질게 군다.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닫지만 이미 양양은 떠나버린다. 이러던 중에 집에 혼자 있던 샤오펑이 사고를 당하면서 상황이 더욱 꼬인다. 양양은 언니를 혼자 둔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며 더 이상 티엔커와 보지 않으려고 한다.
티엔커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끊임없이 사과 메시지를 남기는 건 물론, 그녀가 힘들게 벌었을 동전을 담을 수 있는 예쁜 유리 저금통도 선물하고 그녀만을 위한 길거리 공연도 펼친다. 그러나 언니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를 피하는데 이를 알아챈 샤오펑이 자신에게만 신경 쓰지 말고 이제는 너도 하고 싶은걸 해보라고 응원한다. 머뭇거리는 양양을 보며 무엇이 문제냐 묻는데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도 말을 못 해'
졸지에 오해를 받은 티엔커의 상황은 더 재밌다. 티엔커는 차가운 양양의 태도에 하루 종일 멍 때리고 기운이 없자 그의 부모님은 안절부절못해한다. 하나뿐인 아들이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는 게 뻔하다. 무슨 일인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니 티엔커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여자친구도 괜찮냐 묻는다. 다소 당혹스럽지만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용기를 낸다. 엄마 아빠가 수화를 배우면 되지 않겠냐고. 이에 용기를 입은 티엔커는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양양의 등 뒤에서 자신의 마음을 말해본다. 어차피 그녀는 듣질 못할 테니 아주 절절하고 진심을 가득 담아서.
마무리하며
이쯤 되면 다들 예상이 가능하겠지만 양양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티엔커가 앓고 있다 착각해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귀여운 오해(?)로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어설픈 풋사랑을 넘어서 정말로 순수하게 상대방을 좋아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장벽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샤오펑-양양 자매의 성장 스토리도, 티엔커 부모님이 편견 없이 사람을 보려는 모습도 감동적이었기에 앞서 말했듯이 '첫사랑'이라는 단어로만 수식하기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산뜻한 내용이지만 곱씹을수록 교훈적이고 울림이 있는 영화라는 평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