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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May 15. 2021

고양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2


루나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포스트잇 노트다. 지금까지 많은 장난감을 사다 줬지만 어떠한 장난감도 포스트잇 노트만큼 루나를 즐겁게 하지 못했다. 다른 종이도 시도해봤지만 포스트잇을 구겨 아래 사진처럼 작게 만들어서 던지면 순식간에 사냥 본능을 살려 달려간다. 아무래도 포스트잇이 작고 반응하는 게 벌레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의 예상이다. 

루나는 남자 친구와 나의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다. 잠을 자거나 평온을 얻고 싶을 때에는 내 곁에 와 살포시 눕고, 사냥 본능을 만끽 발휘하여 놀고 싶을 때는 남자 친구에게 다가간다. 

나는 놀이가 끝난 이후에 루나의 장난감을 서랍장에 넣어두는 데, 간혹 내가 발견하지 못한 포스트잇을 루나가 찾았을 때 그걸 물고 남자 친구에게 발 옆에 툭하고 떨어뜨린다. 포스트잇으로 놀아달라는 소리다. 고양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똑똑하다. 

남자 친구는 저녁 8-9시 사이, 잠들기 전에 루나와 놀아준다. 가끔 일 때문에 늦는 날에는 내가 놀아주려고 노력하는 데, 확실히 남자 친구와 놀 때보다 쉽게 흥미를 잃곤 한다. 그래서 포스트잇을 들고 처음 찾아가는 게 내가 아니라 남자 친구인가 보다.

가끔은 남자 친구가 루나와 놀다가 딴 일에 한눈 팔리면, 포스트잇을 물고 침실로 와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살포시 놓아둔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공격할 준비를 한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포스트잇을 응시한다. 나에겐 놀아달라는 표현을 자주 하지 않기에 나는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앉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포스트잇과 일심동체가 되어 벌레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 루나의 동공이 커지며 공격을 하기 위해 엉덩이가 씰룩대기 시작할 때 포스트잇을 던지면 루나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먹잇감을 잡으러 간다. 


청소하려고 소파를 옮기자 발견한 루나가 숨겨둔 포스트잇 노트들 (* 병뚜껑으로 놀아주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나는 남자 친구와 나의 신발을 애정한다. 아무래도 우리의 냄새가 진하게 베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퇴근하고 나면 루나는 "냐옹-"하고 큰 소리로 인사하고는 발라당 눕는다. 빨리 만져달라는 듯이.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누워있는 루나를 한껏 예뻐해주고 나면, 루나는 내가 벗어놓은 신발로 가 열심히 자신의 페로몬을 묻히며 영역표시를 한다. 

처음 루나와 포스트잇으로 놀아주기 시작했을 무렵,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는데 무언가 느껴졌다. 벌레인 줄 알고 기겁했는데, 신발을 뒤집어보니 포스트잇이 툭하고 떨어졌다. 

고양이가 자신이 사냥한 걸 집 안에 들고 오는 건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벌레와 동급인 포스트잇을 굳이 내 신발안에 넣어두는 건 엄청난 애정의 표현 아니겠는가. 우리가 자는 사이 포스트잇을 물고 와 신발안에 넣어뒀을 루나를 상상하면 귀여운 건 둘째 치고, 루나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격하게 느껴지며 감동이 벅차오른다.

참고로 이러한 애정표현은 요즘에도 쭉 이어지고 있다. 남자 친구와 누가 더 사랑 받고 있나 은근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높은 확률로 내 신발에서 포스트잇이 더 발견되고 있다.



본인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루나

루나가 어렸을 때부터 굳건히 유지하는 규칙 중 하나는 그곳이 어디라도 우리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자다가도 쪼르륵, 거실에 있다가 침실로 들어가면 쪼르륵 따라온다.

우리 집 거실에는 한 눈으로 거실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루나의 침대가 위치해 있다. 이 침대는 고양이용 전기장판이 아래 깔려있어서 겨울용으로 구입했는데, 루나의 애착 물건이 되어버려 사시사철 같은 곳에 놓여있다. 여름에는 전선을 뽑아 따로 보관하고 루나의 낮잠 침대용으로 사용한다.

남자 친구와 내가 거실에 있는 때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한 본인 침대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남자 친구와 내가 다른 방에 있다면 우리 둘을 볼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자리 잡는다.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고 다른 방에서 놀다 온 루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침대 옆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냐옹-"하고 자기가 왔다는 걸 알린다. 그런데도 쳐다보지 않으면, 침대 위로 폴짝(사실은 쿵!)하고 올라와서는 얼굴을 볼에 비벼대며 안 부리던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귀여워서 만지려고 하면 언제 다가왔냐는 듯 침대 가장자리로 내려가 거리를 두고 안착한다. 고양이의 마음을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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