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욱 Aug 23. 2023

이젠 앞치마를 두르세요

예비 아빠의 고군분투기 


“그래 인턴 너 이름 뭐야? 시건방지게”


금요일 오전 첫 정형외과 수술에 들어간 나는 몇 번을 망설였다가 방사선 차단 에이프런(앞치마)을 입었다. 오늘 수술에는 씨암(C-arm;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이 중간 촬영을 들어온다. 씨암이 들어오면 수술팀원들은 수술장 밖으로 나간다. 단 한 사람 인턴만 빼고. 인턴은 왜? 인턴은 사진에 찍힐 팔이나 다리를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에이프런을 입었다. 납으로 만든 에이프런은 굉장히 무거워 그것을 입고 몇 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 무거운 납덩이를 걸치로 했다.  


수술팀은 대개 3-4명의 의사와 1명의 간호사 그리고 이들을 도와주는 보조인력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수술에서 나의 자리는 집도의인 정형외과 교수 바로 옆자리다. 제1 조수는 집도의를 마주 보고 서있고, 그 옆에는 제2 조수가 선다. 


집도의사 바로 옆자리에 서는 인턴은 권력자의 최측근으로 서있기는 해도 조수축에도 끼지도 못하는 '잡역부'다. 인턴이 하는 일이란 것은 집도의가 시키는 허드렛일 이를 테면, 다리를 당기라면 당기고, 밀라면 밀고, 들라면 드는 것 정도다. 


이런 일에는 특별한 철학이나 지식 혹은 재능이 필요 없는 일이다. 생각 같아서는 옆에 소독된 기둥을 하나 세워두고 거기에다가 다리를 걸던지 팔을 끼우던지 하면 될 것을 괜히 힘든 인턴 하나만 세워두는 꼴이다. 


그러면서 한참 수술이 진행되면 3인의 의사들은 전날 먹은 요리나 술 이야기, 아니면 전날 있었던 프로 야구 하이라이트, 주말에 있었던 골프 이야기,… 듣고 있기에도 구역질이 날 지경의 잡스러운 음담패설이나…


수술이 초반을 약간 넘었을 무렵 교수의 팔꿈치가 움직이다가 내 에이프런에 닿았다. 그 순간 교수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 인턴이 시건방지게 에이프런을 입고 들어오나?”


이렇게 시작하여 수술 내내 나는 그 교수의 입에서 오르랑 내리랑 거렸다. 다른 이야깃거리도 없는데 잘 되었지 뭐. 환자의 몸에서 피가 나도 재수 없는 인턴 때문이라는 둥,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라는 둥,…. 수술이 끝날 때까지.….


수술이 끝나고 나는 탈의실에 불려 갔다. 치이프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수술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는 안 했다(그러면 좋을 텐데). 


그런데 내가 왜 혼나야 하지? 자기들은 사진 찍을 때 모두 기계 뒤로 피하거나 복도로 나가면서. 더구나 당신들은 이미 결혼해서 애들도 다 낳아놓고. 하지만 나는 아직 성장기(?)에 있단 말이요. 아직 결혼도 안 한 몸이요. 혹시 방사능 피해라도 입으면 어쩌라고? 그것도 여기 인턴 기간 도는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하여간 그 사건은 오랫동안 인턴 사이에서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어쩌리. 무안 당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미래의 아이들에겐 중요한 일을 한 것 같다. 벌써 훌륭한 아버지가 된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상한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