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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3. 2023

모닝 캄, 플리즈!

어느 1년 차 전공의의 부산한 아침 

항상 이렇다. 6시에 일어나려 했었는데 벌서 50분이나 지났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 ‘삐삐’를 본다. 여러 군데서 난리가 났다. 


큰일인데, 아휴 망했다.  


그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에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103 병동, 예, 예, 알았어요, 내려가요! 내용도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내 말만 하고 끊었다. 어차피 곧 내려갈 건데 몇 초 라도 아껴야지, 새삼스레 촌각을 다투다니, 밤새 실컷 자고는…  


옷은 입을 필요가 없다. 입은 채로 잤으니. 넥타이도 그대로 매달려 있다. 양말은 한쪽이 어디 갔나 보이질 않는다. 그냥 나서려다 저기 바닥에 떨어진 놈 중에 색이 비슷해 뵈는 것으로 얼른 주워다 신었다. 골이 띵하다. 3시경에 응급실 환자만 없었어도 오늘 하루가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시작하진 않았을 거다. 밉다. 환자가 밉고, 당직이 밉고, 응급실이 밉다. 또 이렇게 잠이 많은 나 자신도 밉다.


병동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에 들어서자 오늘 아침 반찬이 무언지 알 것 같다. 이렇게 냄새가 심하게 올라오는 걸 보면 오늘 날씨가 나쁜 모양이다. 희한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반찬 냄새는 지하 2층에서 여기 11층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비상계단 전체가 환기구 기능을 하는구나. 그런데 왜 나는 도대체 환기가 안되는 걸까? 컨디션도 안 좋은데 날씨도 저기압인 것 같아 오늘 영 재수가 없어 보인다.


병동에 들어서자 우중충한 조명이 먼저 나를 맞는다. 마무리 일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나이트번(야간 근무조)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벌써 마무리지었어야 할 일을 내가 자는 바람에 아직 해결 못한 거다. 그러니 아침부터 간호사들도 정신이 없다. 인계해주고 받으랴, 마무리 지으랴,… 본의 아니게 종일 내 생각이 나겠지, 그리고 이 인간이 얼마나 미울 것인가.  간호사들도 집에 빨리 돌아가서 자야 하는데 내가 그들의 잠을 빼앗아 잔 것이나 다름이 없구나. 



샘! 


예!


이거 빨리 해주세요, 그리고 어제 변경된 '오더 order' 다시 적어주세요. 수(首) 선생님(head neurse)이 '텔 오더(telephone order)' 받지 말랬어요.



텔 오더는 전화로 불러주는 오더다. 본의 아니게 발음곤란으로 혹은 정신착란으로 엉뚱한 오더를 불러주었다가 이상한 약이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큰 일이다. 부르는 사람은 제대로 불렀고, 받아 적는 사람도 제대로 적었는데 서로의 내용이 다른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병동에서 단속 들어간 것이다. 


전화기 잘못이지 뭐? 그러니 좀 좋은 전화기 설치해랐쟎아요, 원장님 제발…


한마디 툭 던져보지만 아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나를 미워하는 게 틀림없군.  


2호실 환자에게 먼저 가본다. 밤새 열이 났다고 했다. 아침에 일찍 가슴 촬영하러 내려보내야겠다. 열은 해열제로 좀 떨어졌지만 환자의 숨소리가 쌕쌕거린다. 보호자도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친 얼굴이다. 나를 원망하듯 쳐다보는 눈길이 따가워 애써 눈길을 피해 본다. 하지만 나를 원망하는 눈길은 그곳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밤새 간호사들이 들랑거렸을 테니 8인실을 꽉 채운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들도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인다. 


다인실에는 입원 환자 중 한 사람이라도 나빠져 중환이 되면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모두 일과성 우울증에 빠진다. 혹시 여기서 사망 환자라도 생기면 한 1주일간은 환자들이 우울해한다. 밖에서는 죽음이 남의 일 같아도 병원에서는, 더구나 같은 병실에서는 바로 내 일 같이 느끼는 것이 바로 아픈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중환자가 일반 병실에서 발생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중환자실로 내려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일반병실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데서 환자를 죽게 할 수는 없다. 환자가 죽는 일도 담당의에겐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죽음이 존중되지 못하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비참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환자도 설마?


청진을 해보니 오른 폐에서 수포음이 들린다. 입원 때부터 의식이 좀 그랬는데 중환자실에 자리도 없고 또, 보호자들이 잘 간호하겠다고 해서 일반 병실로 올린 것이다. 그러면 뭐 하나.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보호자들이 임무가 아니고 전적으로 의료진의 책임 아래에 들어오는데. 나빠졌다고 보호자를 탓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응급실에서 중환자실 빈자리 날 때까지 대기시켜 두는 것인데 내가 잘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늦었구나…. 아침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구나….. 오늘 하루는 무척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몸을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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