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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3. 2023

스무 살

때 이른 죽음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간호사, 오더리들이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오른쪽 이동 침대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선생님, 저기 저쪽으로!


당직 인턴은 거기 매달려 있고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급하다는 얼굴로 나를 이끈다. 


무슨 환자예요?


모른데요, 그냥 여기 학생인데 시험 치다가 푹 쓰러졌대요. 그걸 지금 데리고 온 거예요.


인턴은 지금 인튜베이션을 하기 위해 환자의 머리끝에 매달려있다. 내가 그 옆으로 다가서 보니 그의 머리카락이 이미 땀으로 젖었다. 라링고스코프를 쥔 왼손이 후덜 거리고 있다.


자, 손 바꿉시다. … 그래 뭐 이상한 거라도 있었어?


글쎄요... 들어올 때부터 숨도 안 쉬고 심장도 멎었어요. 그래서 지금 일단 CPR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잠깐만, 어..... 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생각보다 간단히 관은 그의 성대를 통과해 기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대개 이때 환자는 기침을 하게 된다. 이미 환자는 그 정도의 반사능력도 없어진 것이다. 하긴 뒤로 한껏 젖힌 그의 목에선 아무런 저항도 없었으니까?


발룬 넣고!


스타일렛을 뽑으며 외쳤다.


인턴선생, 빨리 앰부 배깅 시작하고, 라인은?


두 개 잡혔습니다.

 

지금 뭐 들어갑니까?


노멀 살라인요.


그럼 지금 바로 아트로핀 원 앰플 주세요.


아트로핀 원 앰플!


간호사가 복창한다.


그리고 디피브릴레이터 준비


디피브릴레이터!


아트로핀 들어갑니다!


그리고 인턴선생! 2;1 모드로 하자, 내가 두 번 누르면 너는 한번 호흡이다. 알았지?


예, 선생님!


아직 반응 없습니다!


환자의 가슴에 포터블 EKG(심전도)가 연결되었지만 아직 아무 반응이 없다.


에피네프린 하나


에피네프린 하나!


심전도는 계속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경고음을 낸다. 귀찮은 소리, 아니 제일 싫은 소리가 바로 저 소리다. 하지만 수 십 회의 CPR에도 환자는 그냥 쳐져 있다.


보호자는 연락했지?


친구들이 전화했나 봐요.


디피브릴레이터 차징 됐어요? 


차징 됐습니다!


모두를 침대에서 떨어지세요. 인턴 선생은 계속 배깅하고

 

디피브릴레이터  100쥴!


100쥴!


지금 합니다!


'왼손은 환자의 심장 끝에,  오른손은 환자의 겨드랑이에' 어느 교과였더라. 교과서에 그렇게 씌어있었지. 찡- 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의 몸이 약간 움직였다. 이건 전기에 대한 세포의 반응이다. 살아 있는 걸까?

모두의 눈이 심전도 모니터에 꽂힌다. 잠깐의 반응도 없다.


다시 200 준비


200 준비!


떨어지세요!


팟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청년의 심장으로 흘러간다.


제발 좀 살아나라, 제발…


하지만 이번에도 무반응이다.


에피 몇 개 들어갔지?


3개째입니다!


그럼 하나 더 달고 칼코즈(강심제) 투여하세요!

 

마지막 단계이다, 전기 충격은.


360줄 준비하세요!


360 차징 합니다!


360 준비되었습니다!


침대에서 떨어지세요!


나는 왜 이 말을 하는 걸까? 나를 빼면 아무도 이 말을 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이 말을 배웠지? 하긴 딴 사람이 감전되면 안 되니까 그런 거지만 왜 나만 유별나게...

 

360이라는 숫자는 청년의 심장에도, 생명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무심한 심전도계는 그냥 플랫을 보이고만 있다. 어디선가 고기 타는 냄새가 나고 있다. 어디긴, 청년의 가슴이다. 전기가 살을 태워먹는 것이다. 살이 탈 지경인데 심장도 청년도 미동조차 없다.


인텀 샘, 니 좀 도와줘. 다시 2:1 시작하자!


가슴이 어스러지도록 심장을 짜고 있지만 다 이상 심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심하다. 무엇이 스무 살 청년을 갑자기 벼랑 끝에서 밀어버린 걸까? 오늘 시험을 위해 어젯밤까지도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을 텐데. 친구들과 노는 일, 먼바다로 가는 여행, 지리산 종주, 사랑하는 여인을 만드는 것도 모두 오늘 시험 뒤에다가 미루어 놓았을 텐데. 


‘갈비뼈가 으스러지면 CPR을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문득 외과 교수님의 따끔한 충고가 생각났다. 


'갈비뼈를 누르는 것이 아니고 심장을 정확히 누르세요!'


하지만 내손은 이미 심장을 벗어나 갈비뼈까지 누르고 있다. 흥분하면 안 돼. 하지만 갈비뼈가 부서져서 청년을 살릴 수 있다면. 


간호사, 안경 좀.


조금 전의 인턴 꼴이 이제 내 꼴이 되었다.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안경알에 송송 떨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호사가 안경을 빼간다.


앞이 뿌옇다. 옆 사람 얼굴도 잘 보이지 않지만 뚜렷이 보이는 건 녹색 바탕 화면의 EKG. 빌어먹을 아직도 플랫이다. 


보호자는?


지금 오고 있다는데요.


같이 온 친구 불러와봐요.


손을 좀 떼어야 할 것 같다. 힘이 빠진다. 마침 A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항상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동료다. 내 옆에 오더니 슬쩍 쳐다보고 있다. 나 좀 도와줄 거지?


손 바꿉니다!


CPR의 손이 바뀐다. 나보다 더 힘이 세고 어깨도 좋은 A의 CPR 이 시작된다. 이제 3막 오페라의 마지막 커튼이 올라간다.

 

친구는?


여기요.


어찌 된 거죠?


시럼을 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책상 위로 푹 쓰러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자는 줄 알았어요. 근데 좀 이상해서 제가 툭툭 쳐봤어요, 감독 몰래.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깊이 잠들었나 싶어 좀 더 세게 쳤는데 그냥 풀썩 바닥으로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리로 데리고 온 거예요.


시험을 어디서 쳤는데?


B관 8층요.


맙소사. 나도 종종 시험을 치러 올라가는 B관 8층은 이 캠퍼스에서 응급실에서는 가장 먼 곳이다.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 타려면 보통 5분은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 속도도 느리다. 엘리베이터를 빨리 탔다 쳐도 내려서 그다음부터는 들쳐 매고 없고 달려도  4-5분은 걸릴 거리에 응급실이 있다. 그렇다면 최소 오는 데만 10분이 걸린 것 아닌가? 

 

보호자 오셨네요.


그래요? 내가 만나지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청년이 누운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침대 곁에는 중년의 여인이 서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의 아래쪽 절반을 감싸고 있고 눈은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놀람과 충격과 고통이 가득하다. 


저… 어머님 되십니까?


네, 선생님 어떻데 된 거예요?


시험 중에 쓰러진 것을 친구들이 업고 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응급실에 들어올 때 이미 심장이 멎어있었던 걸 지금까지 소생술을 하고 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네요. 혹시 뭐.... 짚이시는 것은 없으세요?


선생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워낙 내성적인 아이라. 학교랑 집 밖에 모르는데, 에미가 시장에서 바쁘니 뭐 대화라고나 할 시간도 없어서.. 흐흐흑 이제 어째요? 어쩜 좋아요? 아비도 없이 혼자 키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어쩌나 어째…. 


어머니의 울음보가 터졌다. 어머니는 이제 자식의 손을 부여잡고 아예 통곡을 한다. 마른하늘의 벼락같은 일이다. 보호자를 밖으로 데려 나가려 하는 것을 눈짓을 주어 말렸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소생술도 중단시켰다. 어머니의 울음이 좀 그치면 마무리해야 한다. 한참을 울던 어머니가 약간의 기운을 차렸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스무 살 청년의 낯빛은 이미 흙빛이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잇고 눈은 1/3 정도가 열려 있다. 머리카락에 이런저런 액체들이 묻어 있다. 입에는 기관의 삽관이 물려있고 면반창고와 거즈가 둘러져 이 관을 잡고 있다. 조금 튀어나온 입술에는 바이트 블록이 물려 있다. 가슴에는 멍이 들어 시퍼렇게 변했다. 손발은 힘이 하나도 없고 이미 식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손으로 아들의 손을 덥혀보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빨리 끝내야 한다. 응급실을 30분 이상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 사건을 이제 마쳐야 한다. 병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도 있지 않는가? 이미 중환자실과 병동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몇 번이나 왔다. 그 일들은 내가 바쁘다고 해서 면제시켜 줄 일들이 아니라 고스란히 나를 기다리는 일들이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30분 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벌충해야 한다. 하지만 왜 이다지도 가슴이 답답한 걸까? 왜 이 친구는 여기서 내 손에서 죽어야 하는가?  


3시 35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차마 보호자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어 시계를 보며 나는 사망을 선고했다. 이제 의학적으로도 죽은 겁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왜 죽어야 하는지 저도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그냥 미안합니다. 


응급실 뒷방에, 감추어진 듯 자리 잡은 당직실로 들어가 낡은 이층 침대에 뻗어버렸다. A는 벌서 와서 앉아 있다. 

  

뭘 그렇게 오래 끄냐?    


응, 그냥, 그냥 빨리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잖니, 이제 스물인데…


나도 스무 살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튀어나와 이제 세상에 나왔다고, 이제 어른이라고, 공작새처럼 으슥대며 길을 걷던 스무 살이 있었다. 이 청년의 스무 살이라고 뭐 그리 다를까? 하지만 청년은 지하감방 같은 응급실의 차디찬 철재 침대 위에서 인생을 마쳤다. 왜 죽어야 하는 지도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단번에 생명의 질긴 끈이 잘려나갔다.


삐삐가 울린다. 중환자실에서 찾는 전화다. 

이제 다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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