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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3. 2023

그녀의 바다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 선 환자들  




“소변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강사님?”


소금기가 절인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순간 비웃음 같은 것이 지나간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웃는다. 



“그냥 보면 되지요. 바다가 모두 화장실인데…”



그래도 어떻게 슈트를 입고 보나요? 하고 되물으려다 참았다. 그렇게 정황 따지기에는 방광의 사정이 너무 딱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선 자세로 아랫배에 힘을 주어 본다. 하지만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소변보기가 어려울 줄이야. 화장실 변기 앞에 서면 반사적으로 열리던 이 물길이 여기 바다 한가운데서는 도무지 안 열린다. 힘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힘을 빼야 하는 걸까? 소변볼 것을 명령하는 대뇌와 그 물길을 열어주는 척수가 실랑이를 벌이는 까닭에 방광만 끙끙 괴롭다. 옷을 내리지 않고 그냥 오줌을 눌 용기가 없는 걸까? 걸음마 이후로 시작되었던 소변 가리기 훈련의 결과는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평생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한 번은 예외로 하자. 


아랫도리가 뜨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순간 까닭 모를 포근함이 온몸으로 찡하게 퍼진다. 아~하고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린다. 어릴 때 자다가 이런 느낌이 들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이런 꿈을 꾸면 필시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던 기억이 난다. 아랫 도리에 전해 오는 따뜻함은 늘 오줌싸개의 씁쓸한 추억과 연결이 되었는데, 오늘은 한번 그 반사를 거역해 보려 한다. 안 보고 있는 것 같던 윈드 서핑 강사가 한마디 한다.


“추울 때 한 번씩 오줌을 싸면 따뜻해서 좋기도 해요.”



아침부터 외래 일이 너무 밀려 병동에서 계속 내려오는 호출을 애써 외면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병동에 올라가 보니 간 밤에 입원한 여자 환자 때문에 병동 간호사가 짜증이 난다는 얼굴이다.  


“도대체 왜 그런데?”


“꼭 화장실에 가겠다고 합니다.”


“그 몸으로 갈 수 있어? 도대체 소변줄은 왜 아직 안 꽂았어요?” 


“꽂았는데요, 꽂고 나니 계속 오줌 마렵다고 해서요…그래서 뽑아 달래요.”


“참, 성가시게 하는군, 한번 봅시다.”



뇌에 생긴 염증으로 어제 입원한 그녀, 뇌압 조절을 위해 들어가는 주사약 때문에 소변량이 펑펑 쏟아질 테다. 하지만 환자가 기력이 약해 혼자 화장실 가기가 어려워 소변줄(폴리 카테터)을 미리 꽂았는데 그것을 환자가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소변줄 다시 꽂으세요.”


“아뇨, 그걸 꽂으니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화장실에 가도 나오는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계속하고 계시면 나아져요. 첨엔 다 그래요.”


“안 하면 안 될까요? 제가 화장실에 갈게요. 선생님?”


“보호자가 곁에 계세요? 혼자 걷기도 힘드신데.”


“일 나가고, 저녁 늦게 올 텐데…”


“그럼 낮에는?”하고 물으며 병동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간호사는 애써 내 눈길을 외면했다. 속으로 ‘우리도 바빠 죽겠는데 환자 화장실 시중까지 해야 해요?’하고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요, 고집을 피우시니, 일단 원하는 데로 하세요. 그리고 정 안되면 나중에 기저귀라도 하세요.”


기저귀라는 말에 내게 애써 웃음 지으며 버티고 섰던 환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나는 환자의 고집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외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바다 생각이 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서도 소변을 보기가 그렇게 힘든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아직 젊은 여자 환자보고 기저귀에 소변을 보라고 말하다니. 병실 한가운데 누워 쉽게 소변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다면 몰라도, 의식과 의지가 멀쩡한 사람인데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뜨뜻해지는 아랫도리, 그 뒤를 따르는 미지근한 차가움,… 정말 싫은 기억이다. 바다 한가운데 보다 더 힘든 곳이 바로 병실 한가운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소변줄을 꽂을 거야, 틀림없이.

땅거미가 질 무렵, 병동에서 다시 호출이 왔다.


“선생님, 그 여자 환자말이에요. 지금 의식이 없어졌어요.”


서둘러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복도에는 병실에서 쫓겨난 환자와 가족들이 웅성거리고 서있고, 병실 안에는 간호사들이 모여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웬일인지 환자의 옷은 물론이고 침상까지 흠뻑 젖었다. 


“어떻게 된 거죠? 혈압은?”


“안 잡힙니다. 조금 전에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기저귀에 소변보기를 마음으로부터 거부하던 환자는, 참다못한 소변이 일시에 몸 밖으로 터져 나가면서 쇼크에 빠져버렸다. 나는 환자의 오줌길에만 관심을 가지고, 환자가 느낄 고통과 수치심은 아랑곳없었다. 결국 그녀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그렇게 터뜨려버렸다. 병실이라는 낯선 바다 한가운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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