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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2. 2023

하강 중에

승강기에서



'오늘도 무척 피곤한 하루였어'


B는 지친 몸을 끌고 빈 승강기에 올랐다. 12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11층에서 B를 태우고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승강기가 추락을 하면 어쩌지? 그러면 mgh = 1/2mv2이니까, m = 60Kg, g = 9.8, h = 20 m 이면 내가 지면에 자유낙하로 만나는 속도는 대략...' 하는 하릴없는 생각이 나자 B는 승강기 천장 구석에 붙은 볼록거울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메롱 ~'하며 비웃어주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은.


3층.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있는 층,


“딸깍”


그때 시계는 자정을 지나 내일로 다가섰다.



"문이 열립니다"하는 단조로운 합성음이 들리며 문이 스르르 열렸다.


하얀 시트로 감싸진 채 누워있던 시신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퀴침대는 흐느끼는 유족의 울음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환자용을 타지 말걸…'



B는 짧은 후회를 했다.


‘당신, 의사 맞아?’



의사생활 몇 년이지만 아직도 죽은 이를 보면 마음이 담담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호자들이 의사와 싸우려고 작정할 때 제일 먼저 던지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로 응수해 본다.



‘당신 의사면 다야?’



문이 닫힌 승강기에는 의사 B와 장의사 - 무표정하면서도 실내에서도 항상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사나이, 우리의 모든 실패를 기억하는 존재 - 와 방금 돌아가신 고인 이렇게 셋이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항상 그렇듯 승강기 안에 살아있는 두 사람은 승강기 문짝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문짝에 무슨 중요한 예언서라도 붙어있는 듯 말이다.  



정원 11


750kg


승강기 안전관리협회 검사필 


비상시에는 버턴을 누르고 기다려주세요.


무리하게 탈출 시에는 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전기를 아낍시다. 한번 누르면 15원의 손실이...



벌서 수 천 번은 더 본 글씨들,



… 재미없어…



죽은 이는 본의 아니게 승강기의 천장을 보고 누워있을 것이다.



'누워서 승강기 천정을 보는 기분은 묘할 거야.


천장에도 무슨 글씨가 있으면 좋을 텐데….’



본원은 


누워서 입원해도, 걸어서 퇴원합니다.


유토피아대학병원장올림.



‘하지만 누워서 퇴원하는 사람은 배신감이 들 테지?’


‘아냐 누워서 퇴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글씨를 볼 수 없지 않을까?’


‘맞아!’



하얀 시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젊은이인지 늙은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연사인지 병사인지 아니면 사고사인지… 그 모든 의문과 역사를 하얀 시트 한 장이 달랑 가려주고 있다.



‘아직도 시신의 몸은 따뜻할 거야’



라는 생각이 든 순간 B는 갑자기 이 좁고 밀폐된 엘리베이터 속에서 자신과 시신이 같은 공기로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이의 허파꽈리에 들어갔던 공기 방울이 나의 기관지로 다시 들어온다는 생각에 B는 숨을 참고 싶어졌다. 아니 승강기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졌다. 서늘한 땀 한줄기가 뒷등을 타고 내려가면서 B는 심한 현기증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죽은 사람과 같이 숨쉬기 싫어!’



빙빙 도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예언서대신 B의 서명이 붙은 사망 진단서들이 나풀거렸다. 그 진단서에 적혀있는 이름들은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얼마 남지 않은 공기를 빼앗아 마시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의 장의사는 ‘요즘 왜 사망진단서를 왜 안 쓰냐!’며 고함을 지르며 B의 목을 쥐고 흔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침이 나왔다. 메스꺼워 울컥 토할 것만 같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을 그냥 지나 쳐 먼 옛날에는 연못이었다는 이 병원의 끝 모를 지하로 추락하고 있다.



… mgh = 1/2mv2,


mgh = 1/2mv2,


mgh= 1/2mv2…….    



“선생님, 안 내립니꺼?"



그의 혼돈과 공포를 쫓아버린 사람은 언제나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짙은 선글라스의 장의사였다.



"아 네?, 내..내..려야죠.수고하세요 … "



엘리베이터에서 간신히 탈출한 B는 지하 주차장으로 난 긴 복도 끝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기대어 선 채 긴 숨을 쉬어본다. 그러며 또다시 어리석은 공상에 빠진 자신을 비웃는다.



‘잠이 부족해…. 엘리베이터에서 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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