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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2. 2023

CT 촬영실

방사능 유해구역 


나는 사흘 째 가시지 않는 심한 두통과 구토로 이 병원엘 왔다. 일단 약을 사 먹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현재 임신 4개월째다. 그래서 그 극심한 두통의 원인을 먼저 알아보기 위해 나는 먼저 검사를 받으려 한다. 의사 말이 뇌막염 증세인 것으로 보이는데, 요즘은 유행기가 아니라 일단 뇌에 다른 병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뇌 CT촬영을 하는 것이 좋겠단다.  


검사하기로 하고 검사비까지 다 내어놓고 촬영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남편도 연락이 안 된다. 삐삐를 몇 번이나 쳤건만, 어디 시외로 나간 모양이다. 이렇게 검사까지 하고 복잡해질 줄 알았다면 친정 엄마한테라도 같이 가자고 할 것을 후회가 된다. 


CT 촬영은 방사선이 많이 나온다던데, 나는 괜찮지만 뱃속의 아가는 괜찮을까? 사진 찍지 말고 머리 아픈 것을 좀 더 참아볼까? CT 안 찍으면 안 되겠는지 한번 더 진료실에 가서 물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더 빠개질 듯이 아프다. 그때 어디선가 내 이름이 불려진다. 예~ 하고 간신히 힘을 내어 대답을 하며,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니 왠 젊은 의사가 노란색종이 하나를 들고 서서 나를 쳐다본다.  

그는 내가 앉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내 배를 보더니 흠칫 놀라는 기색이다. “4개월이에요”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미리 답을 해주었다. 틀림없이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경과 전공의라고 소개한 젊은 의사는 사진에 이상이 있는지 빨리 확인하러 왔다고 알려주고는 내 배를 보면서 좀 당혹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내 이름이 불려지고, 나는 촬영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에는 기계 소음으로 웅웅거렸다. 에어컨이 강한지 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방 한가운데는 둥근 고리 모양의 기계를 통해 혀가 날름~ 나오듯 침대가 놓여있다. 나는 침대에 올라갔다. 아직 그렇게 부른 배는 아니지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머리도 아프지만, 뱃속의 아가가 걱정돼서 말이다.  젊은 의사는 옆에 있는 조종실에 들어가 방사선 기사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웃는 것을 보니 무슨 잡담이라도 나누는 모양이다. 아픈 사람들을 두고 그런 잡담이나 하고 있다니. 의사들이란… 


촬영 준비가 다 끝나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배 위에 올려 조금이라도 배를 감싸 안아 본다. 아이의 머리가 어디쯤에 있을까? 나는 손바닥을 넓게 펴서 아랫배 쪽으로 내려가 아이의 머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감싸 본다. 지금이라도 검사를 안 한다고 말해버릴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내 마음을 읽어내듯, 스피커를 통해 아주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머리는 고정되어 있기에 나는 얼굴을 돌려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옆방에서 기사가 나를 보고 하는 소리이리라. 저들은 저렇게 안전한 공간에서 히히득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는 마치 방사선에 오염된 사막 한가운데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는 기분이다.  


머리 쪽으로 스르르 움직이던 침대가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까 그 젊은 의사가 조종실의 문을 열고 이 방으로 쑥 들어왔다. 양손에는 무언가 무거운 것을 안고 왔는지 끙끙거린다. 의사의 손에 들린 것은 아주 긴 앞치마처럼 생긴 옷이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다 가져왔습니다. 좀 무겁긴 해도 걸치고 누워있는 데는 그렇게 힘들진 안습니다. 아니 좀 숨이 찰 수 있겠네요. 그래도 그 정도는 참으실 수 있겠죠? 뱃속의 귀여운 아가를 위해서…” 


조종실에서는 시간이 바쁘다는 투의 불평이 나지막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한 20분이면 끝납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당연하죠, 잘 찍을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일단 이 방사선 차단복을 입으실까요?” 


납으로 된 이 앞치마는 방사선 촬영 시에 나오는 방사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 개도 부족해서 세 개를 껴입으니 몸놀림이 둔해졌다. 다 껴입고 차가운 침대에 드러눕고 한숨을 휴-하고 쉬자, 의사가 한 눈을 찡긋해 보인다. 이 젊은 의사의 장난스러운 얼굴을 보니 좀 마음이 놓인다. 배속의 아가를 위해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도 한 결 가벼워진다. 촬영을 알리는 붉은 신호등이 들어오면서 침대가 서서히 CT 촬영기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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