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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3. 2023

중심정맥 잡기

금맥보다 더 중요한 정맥을 찾아야 해

‘큰일 났다. 큰일 났어!’


머릿속으로는 자꾸 그 생각만 들었다. 


호출 당해 올라간 병실에서는 환자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선홍색의 피. 피는 어디서 나오는가? 폐에서 아니면 식도나 위장? 병실 간호사는 분명 피를 '토했다'라고 나를 불렀지만, 지금 환자는 오히려 기침을 계속하고 있다. 객혈인가? 토혈인가? 새벽 3시, 곤히 자고 있던 환자가 토혈한 피를 자신도 모르게 흡인하면 객혈할 수는 있긴 하겠다. 


‘빨리 레빈 튜브(콧줄)부터 넣어야겠다.’


라고 머리가 생각해 주었다. 그러자 입이 금방 입 밖으로 말을 내뱉어준다.


“레빈 튜브 준비.”


“선생님 그런데 환자가 의식이 나쁜데요, 혈압도 낮아요.”


귀가 들려주었다.


“그래? 그럼 빨리 루트를 잡아요.”


“근데 혈관이 너무 약해서 몇 번이나 실패하고 있습니다. 중심정맥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그것 해본 적 없어요!’


내 마음이 소리쳤다. 하지만 입이 옮겨서는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중심정맥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 선다. 새벽 3시에? 여기서? 고년차는 1시간 전에 집에 갔고 동료는 지금 응급실에서 환자 CPR을 하고 있다고 5분 전에 들었다. 나도 도와주려 내려가던 찰나에 병동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고년차를 부르던지 동료를 불러야 하는데 둘 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렇다면 다른 과인 마취과 의사를 불러야 할까?


누구도 새벽 3시의 호출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 것이다. 오늘을 위해 벌써 3번을 보아 두었고 한 번은 직접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미 나보다 어린 1년 차들은 잘하도록 병동장이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1년 차 오프이고 내가 백업을 해주는 날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조용히 지나가질 않는다. 


“준비합시다. 센트랄(중심정맥) 잡읍시다.”


벌써부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틀라스가 어디 있더라? 책을 한 번 보고 하면 좋을 텐데 하지만 지금 책 찾아다가 뒤척거릴 시간도 없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해.’


수술 방에서 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도 실패했다. 마지막 순간에 각도가 틀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쑤셔봐도 쇄골하정맥이 나오질 않았다. 그 상황에서 여기저기를 쑤시다간 기흉(폐를 찔러 외부 공기가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기 딱 좋기 때문에 옆에서 보던 마취가 전공의가 나를 비아냥 거리면서 손을 바꾸자고 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분했다. 마취과 간호사들, 수술방 간호사들, 그리고 수술할 의사들도 있고 의대 실습학생들(PK)도 있던 자리였다. 나에게 술기를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자신의 유능함과 인턴들의 무능함을 대비시켜 보는 일을 즐기던 그 전공의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 마취과에 연락하면 틀림없이 그 인간이 올라올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틀림없이 비웃을 것이다. 분명히 그 전공의는 수술장에서 다른 과 의사들에게 신경과에 정맥 잡으러 가준 일을 떠벌일 것이기 때문에 병원 전체에 금방 소문이 쫙-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과 1년 차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환자를 반듯이 눕혔다. 베개를 등과 어깨에 받히고 환자의 고개를 오른쪽으로 젖혔다. 그동안 키트가 도착했고 소독포도 도착했다. 재빨리 베타딘을 환자의 목 언저리와 쇄골 위에 바르고 약이 마르는 사이 장갑을 꼈다. '7번'이다. 병동 간호사들에게 나는 장갑 사이즈가 '6반(6.5)'이다,라고(자존심을 삭히며) 벌써 몇 번이나 말했건만, 하지만 7번이 왔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기에 그냥 꼈다. 덕분에 손가락 끝은 너덜한 여유분이 생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하지만 책에서 본 대로 하면 된다. 책에는 모든 진리가 다 있지 않은가? 책 보고 하다가 잘못되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확신을 가지지 못해 책 대로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직관만 믿고 대충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의 씨앗이 된다. 머릿속으로 아틀라스의 그림을 떠올려본다. 그림이 눈에 선해온다. 부분 부분의 그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확대된다.


국소마취는 안 해도 되겠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으니 통증을 없애기 위해 마취를 할 필요가 없다. 피부를 관통해 쇄골하정맥에 다다르기 위한 굵은 바늘이 꽂힌 3cc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가득 채웠다. 피스톤을 눌러 공기를 빼냈다. 


가슴이 뛴다. 차근차근히 하자. 하지만 너무 여유를 부리지는 말자.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서둘다간 시간이 더 들고 환자가 위태로워진다. 이미 혈압은 100/60으로 떨어졌다. 수술실에서 겪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에잇, 잊어버려야 해. 하지만 그때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래 각도야 각도! 각도를 너무 얕게 찔렀던 거다. 두려움 때문에. 혹시 바늘로 폐를 찌를까 봐. 


하지만 그날 저녁에 책을 또 보고 또 보았다. 쇄골이 꺾어지는 지점, 거기서 흉골의 꼭대기를 향해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다. 최대한 얕게 들어가면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쇄골의 뒤편으로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의 각도가 필요하다. 그림책에 그려진 총천연색의 그림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2차원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나는 3차원의 인체구조에 직면해 있다. 그래 얕으면서도 쇄골 뒤편으로, 너무 깊은 각도가 아니면 위험은 덜해. 그래 과감하게 찌르자.


막상 힘을 주어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환자의 목이 좀 굵다. 이런 경우에는 좀 어려운 경우가 될 것인가? 왼손 검지를 흉골의 제일 꼭대기에 두었다. 바늘이 나아갈 목표지점이다. 엄지는 쇄골의 꺾이는 자리에 두었다. 바늘이 들어가야 할 자리다. 심호흡을 했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린다. 잘 될까? 아니 반드시 잘 되어야 해. 


“BP 80입니다.”


간호사가 초조하다는 듯 알려주었다. 이 말에 평상심이 흔들렸다. 손끝이 파르르 떨고 있다. 숨을 가다듬고 바늘을 찔러 전진시켰다. 그런데 조금 나아가는 듯하다가 바늘 끝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환자가 꿈틀 한다. 쇄골에 닿은 것이다. 이런! 다시 바늘을 빼내야 해. 정확하게 각도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리다니.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 같다. 


다시 하자. 이번엔 좀 더 깊이 보고 찔러야지?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다행이야 쇄골에는 닿지 않았어… 전진 또 전진… 어 그런데 왜 혈관이 안 나오지? 이 정도면 나올 텐데 바늘이 이만큼 들어갔는데? 더 들어가도 될까? 아냐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폐를 찌르게 될는지도 몰라. 이러면 안 되는데? 다시 바늘을 천천히 빼내었다. 


머리를 한번 들었다. 시간은 벌서 3시 15분. 이런 보호자들을 안 내보냈군. 큰일이다. 벌써 보호자 한 사람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 전화하고 난리를 피우고 있잖아.


내가 실패하면 환자는 끝이다. 부탁할 곳도 마땅챦다. 누굴 기다릴 수도 없고 내일로 연기할 수도 없다. 환자에게도 마지막 기회고 나에게도 그렇다.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면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다. 기흉이 생기면 그때 해결하면 되지 않는가?


다시 들어간다. 바늘 끝을 정확히 흉골 상단으로 겨누고 찔러 넣었다. 하지만 없다. 아무것도. 이제 환자는 끝이다. 더불어 나도 환자에 대해 최선을 못 한 것이다. 나에게는 최선이랄 수도 있지만 그건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꼴이다. 하지만 정신을 좀 다 가다듬자. 이 부근이다 틀림없이. 그래 바늘을 조금만 뒤로 어어! 바로 그때 주사기 속으로 붉은 액체가 흘러들어온다.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이 막 환해지는 느낌이다. 잠깐 이제부터가 더 중요해. 순서에 맞게 차곡차곡 마무리해야 진짜 성공이지 자칫 놓쳐버릴 수도 있어. 피스톤을 뒤로 빼니 더 많은 피가 흘러 들어와 주사기를 가득 채웠다. 피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이제 주사기를 분리해야지. 하지만 왼손이 흔들리면 안 돼.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바늘을 눌렀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 주사기를 돌려 빼니 피가 흘러나온다. 많이. 미리 준비된 와이어를 그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살살 조심조심 목 쪽으로 올라가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목 쪽으로 올라가도 어쩔 수 없다. 


살살 밀어 넣자 어느 곳에 닿는 느낌이 온다. 조금 빼고. 이번에는 와이어를 따라 스타일릿을 밀어 넣는다. 살금살금. 카테터의 끝이 목으로는 안 보인다. 심장 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와이어를 빼고 연결된 카테터로 수액을 연결했다. 수액병을 일단 밑으로 내려본다. 정맥압으로 피가 역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검붉은 액체가 수줍다는 듯 조금 흘러내린다. 고마워. 반가워. 연결된 관을 통해 재빨리 수액이 투입된다. 


“혈압은 80, 70입니다.”


“혈액원에 혈액 신청하세요. 일단 PRC(적혈구) 2개 먼저.” 


이것으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한시름 놓는 느낌이다. 중심정맥이 잡혔으니 그곳으로 무엇이던 그 안으로 다 털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슈처(봉합) 준비.”


카테터나 피부에 남아있는 부분을 고정해야 한다. 꺾이지 않도록 잘 꿰매어야 한다. 외과 의사들이나 하는 슈처를 신경과의사인 내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경과가 이렇게 험한 과였다니.


환자의 피부를 뚫기 위해 쥐어진 낚싯바늘처럼 휘어진 바늘의 끝을 바늘집게로 잡은 두 손은 떨리고 있다. 내 혈액 속으로 분비된 아드레날린의 아직 여흥을 남기고 있나 보다. 간호원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애써 외면했다. 피부를 뚫자 그곳으로 피가 나온다. 피를 보니 겁이 덜컥 난다. 이제껏 피 때문에 그 난리를 쳤는데 피 한 방울을 보고 흥분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슈처가 끝나고 환자의 봉합부위를 소독된 거즈로 감싼 다음 이제야 휴-하는 한숨이 나왔다. 간호사들도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 보호자를 만나야 한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성공한 중심정맥 카테터 유치술. 어떻게 하다가 성공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그냥 딱 걸려든 것 같다. 책에 적힌 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뭔가 특별한 감이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 한번 성공했으니 다음번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여유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승자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없다. 환자가 혈압이 낮지 않은가? 피는 언제 올건지? 


참, 레빈 튜브는 아직도 안 꽂았어요? 


선생님이 시술 중이셨잖아요. 


뭐해요 인턴 빨리 불러서 꽂지 않고!!!! 예!. 아냐, 놔두세요. 이 시간에 인턴도 자야지. 내가 꽂을게요. 


글세 이것이 진정한 승자의 여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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