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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3. 2023

수상한 남자

어떤 순간에든, 깨어 있어라 

그는 일단 내 정면에 앉아서 몸을 자신의 우측으로 30도 정도 돌린 채 나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좌측으로 머리가 30도 정도 회전해야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머리는 필요한 각도의 절반만큼만 회전했다. 모자라는 각도 15도는 살짝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벌충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는 형상이다. 


낡은 금테안경 뒤에 숨겨진 그의 작은 눈, 하지만 사람을 왠지 불편하게 하는 그 뱁새 같은 눈은 나를 지긋이 훑어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 물을 때까지는 대답조차 하고 있지 않다. 마치 내게서 어떤 답을 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어디선가 낯익은 인물이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뭔가 어두침침한 느낌과 얽혀있다는 육감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 이 바닥에서는 좋다. 하지만 그와의 부자연스러운 대화-계속 그는 내가 뭔가 묻기를 기다렸기에-가 계속 공백이 생기자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나의 측두엽은 뭔가를 검색하려도 자꾸 시도했다. 하지만 뭔가 유쾌하지 못한 감정만이 떠오르기만 할 뿐이다. 


혹시 과거에 나에게 왔던 환자의 보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유쾌하지 못한 감정과 엮인 것으로 보아 이 남자와 나는 서로 언쟁을 벌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기 동네의 이웃으로부터 소개받고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진료실에 앉은 순간 자신도 기분이 썩 유쾌하  못해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료에 합당한 이런저런 공식적인 문답이 오고 나서 나는 환자의 처방전에 사인을 하다가 결국 그놈의 입이 참지를 못하고 나선다.


혹시 저랑 구면이신가요? 하도 낯이 익어서 그럽니다.

 

…(입을 꾹 다문다)


아니군요. 제가 착각했나 보군요.


아뇨, 구면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쵸! 어디서, 언젠가 만난 적 있죠.(그렇지, 내 기억이 보통이 아닌데!).


예,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저 같은 사람 얼굴을 기억하시다니.


그렇군요. 우리 어디서 만났습니까?     


한 달 전인가? 제가 나가는 룸살롱서 만났지요. 저는 밤에 밴드일을 하는데 그때 ‘월광’에서 뵈었지요. 제가 선생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참 인상적으로 노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료실에서 점쟎게 앉아계신걸 보니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맞아. 월광! 그날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완전히 미친 듯 놀았다. 어이구, 창피해라.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구나. 그러니 그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창피하고 부끄럽도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건 의사가 환자의 사생활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이 업계 종사자들도 고객의 사생활을 지키려 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왜 물어봤을까? 자나 깨나 입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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