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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Feb 14. 2020

일본은 '나쁜 올림픽'의 재현을 노리고 있다

일본인에게 2020년은 도쿄 올림픽의 해다. 지구촌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바다를 건너 일본을 찾을 것이며 도쿄의 각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스포츠의 향연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 200여 국가로 송신될 것이다. 일본풍의 문화와 먹거리가 소개되는가 하면 다국적 선수단은 일본의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 일본 국민들은 이를 체감하면서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가리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은 과거 1964년에도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다. 즉, 반세기 만에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다. 이에 곧 일생에서 두 번째 올림픽을 맞이하는 중·노년층 세대들도 생겨난다. 국가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2번째 올림픽을 맞는 일본. 이들에게 올림픽이란 제전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일본 전후세대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올림픽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964 올림픽. 침략전쟁을 지우다

1964년 당시 10살이던 아베 총리는 올림픽을 일본의 힘을 세계 만방에 증명하고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무대로 인식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를 통해 "일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로 특정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올림픽의 의미를 '신화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본의 중·노년층이 가지는 감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특히 현대 일본의 경제를 이끌었던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團塊世代)'라 불린다)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당시 사회 초년생(10대 후반) 정도의 나이였다. 즉,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올림픽 이후 펼쳐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직접 체험했고 그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은 세대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올림픽은 좋은 추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이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가져다준 정도의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상의 선전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그 선전의 주된 내용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 '2차대전 패전에 대한 아픔을 이겨내고 일본의 힘을 증명해낸 부활의 제전'이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그때 '패자부활 올림픽'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패전으로부터 19년. 우리들의 나라는 불탄 자리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데까지 부흥을 완수해냈다. 그래서 지금 세계 사람들이 일본에 모여, 일본인 선수가 그 앞에서 가슴이 후련해지는 활약을 보여준다. 패전의 분함과 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를 발판으로 삼아,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세대에게는 그것은 자랑스럽고, 무엇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베 신조, <새로운 나라로>(2013> 


이 같은 회상의 이면에는 일본이 2차 대전(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편향된 인식이 깔려있다. 일본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만 부각하고, 왜 폐허가 되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실책에 대한 죄책은 별로 없는 것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쟁의 실책과 오류를 덮을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서 올림픽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기 중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국기는 없지 않을까요? 올림픽에 쫙 늘어선 국기 중에서 그런 처녀나 동정 같은 깃발은 없었습니다. (중략) 그것이 이번에는 일장기는 더러워졌어도 다시 더 깨끗해졌다고 하는 내셔널리즘이 나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미시마 유키오(1964)-

*홍윤표(2008), 「미시마 유키오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인용


"다시 깨끗해진 일장기"란 불편한 과거사의 삭제 혹은 재구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많은 문학자와 사상가들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일본의 극복 스토리'처럼 묘사했다. 일본 정부의 교묘한 이미지 메이킹도 한몫 거들었다. 일본 정부는 1964 도쿄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주자로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날(1945.8.6.) 태어난 육상선수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를 지명했다. 원폭 피해자를 국제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전쟁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원폭 피해 자체는 인류사적 비극임이 분명하다. 또 올림픽 전반에 기본적인 반전 메시지가 아예 없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올림픽으로부터 2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침략전쟁이라는 과오가 있었다는 점은 인지하지 못한 걸까?


▲  1964년 도쿄올림픽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 사카이 요시노리


2020 올림픽, 일본이 지우려는 것


1964년 일본이 올림픽을 통해 지우고자 했던 것이 '침략전쟁'이라면 2020년 일본이 지우려 하는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즉 '후쿠시마 원전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방사능이 유출돼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갈 정도(사고 수준 레벨 7)의 재앙으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우려 하는 것일까? 사고로부터 불과 9년도 지나지 않았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안전한 종결이지, 조기종결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를 적극적으로 종결지으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 수습에 대한 국가적 과제가 2012년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넘어오는 "정권 교체의 원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후쿠시마를 방문, "정권교체의 원점인 후쿠시마의 재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후쿠시마를 어떻게 재생·부흥시키느냐에 아베 정권의 중요한 정체성이 걸려있다고 하겠다. 정책공약으로도 공언했듯,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해결했다는 마침표를 찍어야만 수십 차례 후쿠시마를 방문하고 해결을 약속했던 서사들이 완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침표는 어떻게 찍으며 마침표가 찍혔음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바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그 마침표가 될 수 있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과정을 꾸준히 비판해온 고이데 히로아키 전 교토대 원자력연구소 조교수는 월간지 <녹색평론> 기고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으로 후쿠시마를 지우려 하는 일본 정부의 술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http://www.kantei.go.jp/jp/98_abe/actions/201904/14fukushima.html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이며,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피폭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올림픽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부의 위기가 심하면 심할수록, 권력자는 위기로부터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후쿠시마를 잊게 하기 위해서 매스컴도 앞으로 더욱더 올림픽에 열광하고, 올림픽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이라고 부르는 날이 올 것이다.

-고이데 히로아키('19.9.1.)

*http://greenreview.co.kr/greenreview_article/2452/


진정 후쿠시마의 상황이 종결되었다면 후쿠시마 원전 문제로 인한 잡음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 국내에서도 후쿠시마 피해보상에 대한 목소리와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소송은 끊이지 않고 진행 중이다.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분명하지 않은가? 한국과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등과 관련해 첨예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문제들의 해결은 외면한 채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통해 세계사람들이 후쿠시마에 가진 재앙의 기억을 깨끗이 지우려고만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들의 박탈감만 늘어갈 것이다.


성화 봉송의 주자가 하필 '후쿠시마 J빌리지'(원전사고 수습의 전진기지)에서 출발하는 것도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원폭 소년(atomic boy)'라고 불린 히로시마 출신의 선수가 성화를 점화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결국 일본 그리고 아베 총리에게 올림픽이란, 과거의 잘못과 오류, 실책의 역사를 삭제하는 지우개와도 같아 보인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평화, 긍정의 상징을 통해 지난 과오를 마치 없었던 것처럼, 혹은 극복된 것처럼 수정하려는 것이다.

▲  2016년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피해자적 자위와 기억 지우개


다소 원론적이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의 기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그 기저가 일본 우익 특유의 역사관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일본 우익들은 자기반성적인 역사 인식을 인정하지 않고 외려 그것을 "자학적 역사관"이라 비난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외려 자랑스러운 역사라 왜곡하며 죄책감과 참회를 배제하는 것이다. 거기서 불편한 과거사를 지우고 잊으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피해, 과실이 발생했더라도 그저 남 탓으로 돌려버리게 된다. '우리야말로 피해자'라는 의식도 바로 이를 통해 생겨난다.


예컨대, 일본 우익들은 진주만과 동남아를 선제 기습하며 침략을 자행했다는 사실보다 '일본 전토가 미군의 폭격에 당했다'는 사실만을 강조한다. 제대로 된 인식이라면 어쩌다 미군의 폭격기가 일본까지 날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 비판해야 할 것인데 그런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세기에 2번씩이나 올림픽을 개최하면서도 이런 일본의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는 듯하다.


2013년 열린 IOC 총회에서도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자로서 이미지를 메이킹하며 올림픽 개최권을 가져왔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동정과 지지를 얻은 것이다. 이제 다음 순서는 지우는 일만 남아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결국 1964년 도쿄 올림픽의 나쁜 재현이 되고 말 것인가?


▲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준공식 참석한 아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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