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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Kim Feb 04. 2016

방문만 열면 엄마는 저편에 있다

다시 읽는 <엄마를 부탁해>, 다시 읽어야 할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군 입대 후부터였다.


입대 후엔 모든 것이 그리웠다. 일상의 자유가 그리웠고, 학교 생활이 그리웠다. 집이 그리웠으며, 엄마가 그리웠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데다가 엄마의 존재에 대해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 나조차 입대 후 공중전화기를 통해 몇 주 만에 듣게 된 엄마의 음성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바깥과의 단절감을 절절히 느껴야 했던 훈련병 시절, 엄마의 인터넷 편지도 반갑고 고마웠다. 신병교육대대 인터넷 카페를 매일 드나들며 아들의 사진을 찾고 글을 썼을 엄마가 떠올랐다.

이후 자대에 가서도 전화나 편지로 엄마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생각해보면 군 시절만큼 엄마와 많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점점 줄었다. 전화는 뜸해졌고 편지도 귀찮아졌다. 휴가 때 보는 엄마의 얼굴은 반가웠지만 휴가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제대 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엄마와의 대화는 다시 뜸해졌다. 오히려 입대 전보다 더 말이 없는 사이가 됐다. 어느 새 엄마를 잊게 된 것이다.


열두 살 때의 엄마, 스무 살 때의 엄마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의 이야기다. 지금껏 당연히 여겨왔던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에 대해 곱씹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평범한 남편, 딸, 아들의 이야기다. 사실 이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잃어버리기 전에도 엄마는 존재하기만 할 뿐 이미 잊힌 존재였다. 딸은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고 여자였던 엄마의 옛 모습을 잊었고, 아들은 졸업증명서를 전해주려 허겁지겁 파란 슬리퍼를 신은 채,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무작정 자신에게 왔던 엄마의 희생을 잊었다.


'그날의 엄마, 늙은 엄마가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오빠! 외치며 마루를 뛰어내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의 외삼촌에게 달려가던 그 모습이 연상될 때 (...) 당연한 일을 왜 그제야 깨달았는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 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 그때부터인 것 같다. 간혹 너는 실제로는 1936년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38년으로 기록된 엄마의 유년을, 소녀시절을, 처녀시절을, 신혼이었을 때를, 너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보곤 했다.' (36-37쪽) 


이들은 엄마가, 아직 엄마가 아니기 전의 모습도 잊고 있었다. 사실 잊었다기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엄마의 옛 모습을 상상하게 됐고 엄마의 꿈이 궁금해졌다. 



"꿈이 뭐였냐"는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우리 엄마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 들어선 조그만 음식점을 하며 살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는 1967년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69년으로 기록된 우리 엄마의 꿈은 그랬다.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해야만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262쪽)

아니다. 옛 모습을 잊었던 것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도 맞지 않다. 옛 모습도 기억하고 종종 생각도 했지만 애써 외면한 것이 맞다. 엄마를, 사람으로 그리고 여자로 대하고, 엄마의 온갖 희생을 떠올리기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애써 외면하다가 엄마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엄마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같이 엄마를 잊었다는 것을 알고 분통이 터진다. 그제야 죄스러워진다.


다시 읽기, 잊지 않기 위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읽게 된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에 대해 새삼 상기시켜준다. 또다시 엄마를 잊고 살게 된 우리에게 <엄마를 부탁해>는 누군가에게 엄마를 부탁만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일 때문에, 공간적 거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다 잊게 되고, 잊는 시간이 길어지면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내가 그랬으니 부디 당신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담담한 말투로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말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그래서 작가들은 누구나 다 아는 소리를 새삼 되풀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읽었던 것을 다시 뒤적거리면서 새삼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방문만 열면 저편에 있다. 우선 당장 해야 할 것은 방문을 여는 것이다. 그 다음 해야 할 것은 말을 걸고 엄마의 말을 듣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이 방문을 열고 말을 걸어와 주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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