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스한 다락 Mar 18. 2020

<기생충> 이미경 CJ  부회장의 소상소감과 한국관객

                                                                                                                                                                                                                                                                                                                                                                                                                                                           

뜬금없던 마지막 수상소감자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피날레를 장식한 수상소감을 말하던 키 작은 여자 분이 누구인지 궁금했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이 수상소감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이 수상소감의 내용에 대해 언급을 안 하기에 그 때 생각했던 걸 조금 나누려 한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사진출처: 연합뉴스)



이미경 씨는 CJ 그룹 부회장으로, 무려 삼성 가문의 직계 3세다. 1대 이병철 회장 작고시 부친인 이맹희 씨를 통해 삼성 계열사였던 제일제당을 겨우 받아 나와 분리 독립했는데, 미국 유학시절 한국의 대외 이미지가 형편없는 것에 충격을 받은 이미경씨는 이 제일제당으로 설탕과 밀가루만 만들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화 사업에 뜻을 두고 이미 1990년대에 CJ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오랜 동안 많은 한국영화를 지원해왔다.(이렇게 쓰니 꼭 CJ그룹 홍보부 글 같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최순실에게 콕 찍혀 사퇴종용까지 당하신,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한 분기도 하다. <기생충>과는 투자배급사로 인연을 맺었는데 봉준호 감독의 적극적 후원자이자 <기생충> 팀 해외수상을 위한 지원을 물심양면으로 아끼지 않았다고한다.


재벌 출신인 이 분이 빈부격차를 꼬집은 <기생충> 수상소감을 말하자  과연 <기생충>다운 풍자극의 결말이라거나, 기나긴 수상소감 동안 올라가는 CJ 주가를 비꼬는 언급도 눈에 띈다.  사실 <프로듀스 101> 조작으로 물의를 일으킨 그 CJ ENM도 CJ 그룹 소속이다. 

 피날레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마이크를 잡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앞서 연속으로 세 번이나 수상소감을 말해야 했던 바람에 할 말이 더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도 즐거운 걱정이 들었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도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상 소감을 양보한 것이었다니 뭐, 서로 나름의 배려로 보고 싶다.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이미경 씨의 한국관객에 대한 감사였다. 


“...한국 영화를 봐주신 모든 관객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의견 덕분에 우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감독과 창작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기생충 주요 출연진(사진: 조선일보)



현장의 미국인들은 이 답사를 신랄한 평점에 대한 블랙 유머로 받아들이고 많이들 웃었다. 블랙 유머가 맞긴 했지만 내게는 진심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기생충>이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상소감에서 한국 관객에 대한 감사를 처음 접했기에 그 점이 인상깊었다.


 <기생충>이 거둔 결실이 영화인만의 노력이 아니라, 수준 높고 열정적인 한국 관객 덕이라는 언급은 한국 영화 100주년을 갓 넘긴 올해 무척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발언이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한국관객에 대한 냉정하고 따뜻한 분석도 들어있었다.




열정적 오지랖퍼 한국인


한국인은 공연에서 열렬한 반응으로 이미 유명하다. ‘떼창’ 내한 경험을 한 팝가수나 끊이지 않는 앵콜 요청을 받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힘 빠질 때 기 받으러 한국 들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한국인들은 음식점에서도 밥 잘 먹고 계산할 때 ‘이 반찬은 조금 덜 삶으면 좋겠다’느니, ‘기름을 먼저 달구고 음식을 넣어야지’라는 시시콜콜한 조언을 꼭 남기고 나간다고 한다. 음식점에서 맘에 안 차는 음식을 먹었을 때 일본인은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는 잘 해 놓고 조용히 발길을 끊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어쩜 일회적 거래관계에도 이렇게 오지랖을 부릴까? 겉으로는 툭 던지는 말인데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염려해주는, 바로 정 깊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다. 상당수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처음에는 무례하다고 생각하다가 좀 더 알고 보면 정이 있다고 느끼는 데는 이런 따뜻한 참견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 열정적 오지랖이 한국을 빠르게 발전시킨 원동력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업계든 소비자의 빠르고 구체적인 의견이 품질 향상에 필수적인데 우리나라 만큼 그게 잘 되는 나라가 별로 없지 싶다. 그만큼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긴장되겠지만 산업과 국가 발전 전체적인 면에서는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국가 브랜드로 밀고 있는 '다이내믹 코리아'(사진출처: 해외문화홍보원)


‘빨리 빨리’ 또는 ‘빠릿빠릿하게’ 정신으로 다이내믹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재밌는 지옥’이라는 수식어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반동으로 웰빙, 슬로 라이프, 소확행 등 여러 유행이 등장하면서 속도조절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저러나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솔직담백한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미경 씨는 소비자의 이런 성향에 대해 고맙다고  반응해 준 것이다.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빠르게 변화되는 한국사회의 결과로 자살률도 높아지고 좌절하는 청년들도 늘어나지만 오늘 이미경 씨 수상소감은 <기생충>이라는 희비극에서 긍정적인 면을 더 보고 싶었다. 25년간 문화산업을 뚝심 있게 지원해온 재벌 3세에게서, 돈 많은 사람이 놀고먹지 않고 열심히 어떤 분야를 지원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예시를 봤다면 너무 긍정적인 걸까? 


현실은 <기생충>보다 더 밝을 수도, 더 어두울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시상식을 보며 느꼈다. 적어도 오늘만은 행복한 결과를 보고 기운찬 미래를 꿈꾸어도 되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