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찾아 온 이별은 여자의 우주를 흔들었다.
이별의 순간을 맞닥뜨린 순간부터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졌다.
여자는 처음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처음으로 이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이별은 새삼스럽게 아팠다. 사무치도록 아팠다.
그 전의 이별은 어땠었더라. 내가 어떻게 헤어졌었지?
지나간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기억이란 간사하게도 미화되고 축소되어서 인생의 그 어떤 순간도 지금처럼 슬프지는 않은 것만 같다.
그 시절의 여자는 충분히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왜 이별은 학습되지 않는 걸까.
이별을 겪고 모두 털어낸 사람들이 모조리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어떻게 이 산더미같은 마음을 잊을 수 있었나.
시간이 아주 빨리 아득하게 흘러 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이십 년. 아주 터무니 없이 긴 시간을 입술 위로 올려 본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이별도 먼지처럼 작아질까. 여자는 아주 태연해질 수 있을까.
이별을 견디고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이십 년을 오려내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참 우습게도.
여자는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했다.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잃는 일이 허다했다.
너는 더 이상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자가 보고 싶지도, 여자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네가 너무나 담담해서 여자는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꿈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헤어질 리가 없는데.
여자는 숨도 쉴 수 없는데 너는 살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자에게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 말만을 한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몇 차례나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늘 너를 잡은 것은 여자였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밑바닥을 보일 수 있을까. 이만큼이나 초라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매달렸다.
그 어떤 것보다도 여자에게는 이 관계를 돌이키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너는 그런 여자를 못 이기는 척 몇 번 다시 만나주었다. 그러나 그러는 모든 순간이 사랑은 아니었다.
네가 여자에게 이별을 말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정말 끝인 것만 같다.
여자는 또 다시 매달렸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니까, 곁에만 있어달라고.
그 말을 들은 네가 울었다. 여자는 우는 너를 보며 가슴으로 느꼈다.
정말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내가 가엾고 미안해서 우는구나.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잊어달라고 한다.
너무나도 우습다. 사랑이 너무나도 가볍다.